[손태규의 직설] ‘엄청난 임금 격차’…미국 남녀 프로농구 현실이 한국 프로 스포츠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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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BA 올스타 선수들이 연봉 인상을 요구하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연봉을 받는다.” 미국 프로농구에서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

결론은 뻔하다. “돈을 못 버니 당연한 일.” 한국에서는 아예 무시되는 프로 스포츠 생존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 미국. 모든 프로 스포츠가 다 그렇다. 농구라고 예외일 수 없다. 무늬만 프로, 얼치기 프로인 한국 스포츠는 반드시 보고 배워 따라가야 한다.

올해는 특이한 모습으로 그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7월 열린 여자프로눙구(WNBA) 올스타전에는 1만8,000명 이상의 관중이 몰렸다. 사상 최고 기록. 이것이 큰 뉴스가 되지 못했다.

더 큰 뉴스는 경기 전 선수들이 “우리가 받을 돈을 줘라”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와 임금 투쟁을 한 것. 세계 최고 선수들의 화려한 솜씨를 자랑하기 위한 행사장에서는 뜬금없는 행위. 과연 WNBA 선수들은 실력이나 인기에 비해 부당하게 돈을 적게 받는가? 그렇게 억울하고 절박했는가?

WNBA 올스타 선수들이 연봉 인상을 요구하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선수들은 많은 스포츠 평론가들의 뭇매를 맞았다. “리그가 적자인 현실을 모르는가?” “정치이념에 물들었는가?” 선수들이 “경제 불의”를 겪고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지적. 물론 반론도 있었으나 그다지 많은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하버드대 교수 클라우디아 골딘이 뉴욕타임스에 “남자프로농구(NBA)와 WNBA 선수 간의 이 엄청난 임금 격차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썼다:

“WNBA는 오래된 리그. 4,000만 달러 적자를 이유로 선수들에게 돈을 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창피한 일이다. 선수에게 3만 달러씩만 더 주어 연봉을 10만 달러 이상으로 올려보자. 그러면 총 460만 달러가 추가로 든다. 적자는 4,460만 달러가 되겠지만, 이 400만 달러쯤은 어디선가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녀는 “WNBA 선수 평균 연봉은 NBA 선수 평균 연봉의 25~35% 정도가 되어야 임금 ‘형평’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WNBA 시청률이 NBA의 약 3분의 1이라는 점이 근거.

단순 스포츠 전문가가 아니라 하버드 경제학자에다 노벨상 수상자란 이름값 때문인지 반향이 컸다. 그러나 그녀는 “필요한 돈은 어디선가 나올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페미니즘 학자의 관점에서 WNBA를 변호하는 탓에 현실 외면을 넘어 왜곡까지 한다는 것이다.

■ 매년 1,500만달러 NBA 지원받는 WNBA…임금 격차 투쟁 나선 선수들에 비판 쏟아진 이유는

WNBA가 최근 인기가 크게 올라간 것은 사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2030년까지 현재 12개 구단이 18개로 늘어난다.

그러나 WNBA 관중과 상품 판매 증가 등을 보여주는 숫자들은 반드시 중요한 맥락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WNBA는 최근 11년간 22억 달러의 새로운 매체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이미 체결된 다른 계약까지 포함하면 총액은 약 30억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액수. 하지만 이 숫자를 그대로 봐서는 안 된다. NBA는 최근 11년간 760억 달러 계약을 맺었다.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WNBA 계약은 상당한 성과로 보인다. 그러나 NBA 계약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너무 초라한 액수. NBA 경기 수가 WNBA보다 2배 많고 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광고 단가 역시 훨씬 높은 결과다.

골딘은 WNBA 시청률이 NBA의 30% 수준이니 임금도 30%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세계에 이름 높은 경제학자가 광고 단가를 따지는 계산 방식을 모를 리 없을 터. 그러니 여자프로농구가 소비자들에게 창출하는 경제 가치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이념 탓에 일부러 현실을 무시·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WNBA의 평균 연봉은 10만2,249달러. NBA는 1,191만649달러로 WNBA의 100배가 넘는다. WNBA 최근 연간 수익은 2억 달러 수준. NBA는 110억 달러를 넘어섰다.

게다가 NBA는 리그 수익 49~51%를 선수들에게 나눠준다. 이에 비해 WNBA는 9.3%밖에 주지 않는다. 인기가 올랐다고는 하나 지난해 4,000만 달러 적자여서 더는 줄 수 없다. 엄청난 연봉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냥 단순 계산을 하면 WNBA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처럼 수익 50%를 내놔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을 돈”이 적힌 옷을 입는 시위를 벌였다.

WNBA 선수들이 더 많은 “수익 공유”를 요구하면서 놓치는 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수익이 아니라 이익이라는 점. 만약 선수들에게 수익의 50%를 나눠주게 되면 리그의 적자는 더 크게 는다. 이익은커녕 손해를 내는 탓에 지난 28년간 해마다 NBA가 1,000만~1,500만 달러를 지원해 왔는데도 그렇다. WNBA는 NBA 덕분에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을 선수들이 무시한 것이다.

NBA가 WNBA를 재정에서 압도하는 것은 미국 프로 스포츠가 “수익자 부담원칙”을 따르기 때문. 모든 프로 스포츠는 특정 종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는 입장권 수익, 그들이 사는 상품 수익 등으로 구단을 운영한다. 전혀 스포츠에 관심이 없거나 특정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국민 세금이나 기업 지원금으로 프로 구단을 운영하는 곳은 없다. 일본도 거의 비슷하다.

올해 WNBA 올스타 평균 입장권 가격은 262달러. NBA 올스타는 3,989달러로 WNBA의 15배가량. 가장 값싼 입장권은 WNBA가 61달러인데 반해 NBA는 200배인 1,200달러. 관객들이 부담하는 만큼 프로 스포츠는 돈을 버는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학 논리로 말하자면 WNBA는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를 소모하고 있다.” 이는 1997년 창설 이래 계속 이어져 온 WNBA의 현실. “만약 WNBA가 일반 민간 기업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미국의 많은 스포츠 전문가들이 입 모아 하는 소리. 한국 프로 스포츠가 반드시 들어야 할 소리다.

“WNBA가 매년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조직이 자선단체 또는 비영리단체로 분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WNBA는 여자농구 선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선 사업일 뿐”이라고 평론가는 지적했다.

■ 이익 내지 못하면 프로 존재 이유 없다…한국 프로 스포츠, 체질 개선 ‘시급’

한국의 프로 스포츠 관계자들이나 선수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여자농구는 올림픽 금메달 11개. 세계선수권대회 11번 우승. 그런데도 적자에 허덕인다. 여자배구는 도쿄 올림픽 금메달. 올해 ‘네이션스 리그’ 8위. 그러나 변변한 프로가 없다.

올림픽 메달은커녕 출전조차 어려운 농구. 네이션스 리그 꼴찌의 여자배구. 거기에 나가지도 못하는 남자배구.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세금으로 꾸리는 시민구단이 즐비한 축구. 이들은 흑자를 내는가? 그래서 5억~10억 원의 높은 연봉을 주는가? 도저히 이해랄 수 없는 프로 스포츠 현실이 한국 스포츠를 망치고 있다.

논리는 간단하다. 많은 돈을 벌어서 많은 돈을 주는 것. 그것이 프로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프로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자선단체로 전락한 무늬만 프로, 얼치기 프로 구단들은 국민경제에 큰 부담이다. 국민의 부를 낭비한다. 하루빨리 근본 체질을 바꿔야 한다.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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