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저어새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이유

시사위크
매년 6~7월이 되면 전문가들은 저어새의 다리에 식별용 밴드를 부착하는 ‘가락지 작업’을 진행한다. ‘시사위크 취재팀’은 멸종위기종 저어새를 연구·보호하기 위한 가락지 작업 진행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사진|인천송도=박설민 기자
매년 6~7월이 되면 전문가들은 저어새의 다리에 식별용 밴드를 부착하는 ‘가락지 작업’을 진행한다. ‘시사위크 취재팀’은 멸종위기종 저어새를 연구·보호하기 위한 가락지 작업 진행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사진|인천송도=박설민 기자

시사위크|인천 송도=박설민 기자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이들의 개체수 변화와 행동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적절한 보호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과학자들이 멸종위기의 포유동물과 조류의 몸에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칩을 이식하고 표식을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 대표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연구와 보호를 위해서도 정확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매년 6~7월이 되면 전문가들은 저어새의 다리에 식별용 밴드를 부착하는 ‘가락지 작업’을 진행한다. ‘시사위크 취재팀’은 멸종위기종 저어새를 연구·보호하기 위한 가락지 작업 진행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5일 오전 9시, 인천 송도에 위치한 남동유수지에 저어새의 가락지 작업을 돕기 위해 모인 봉사자들./ 박설민 기자
5일 오전 9시, 인천 송도에 위치한 남동유수지에 저어새의 가락지 작업을 돕기 위해 모인 봉사자들./ 박설민 기자

◇ 저어새에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

지난 5일 오전 9시, 인천 송도에 위치한 저수지 앞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이들은 저어새의 가락지 작업을 돕기 위해 모인 봉사자들이다. 이들 중엔 어린이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봉사자로 참여한 어린이들은 저어새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번 활동에는 국립생태원, 한국물새네트워크, 국립공원공단 등 국내 전문 연구원들과 저어새와친구들, 저어새NGO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연구원들이 참여했다. 또한 동아시아-대양주의 이동성 물새 보전을 담당하는 국제기구 ‘EAAFP(East Asian-Australasian Flyway Partnership)’ 전문가들도 참석했다.

저어새 가락지 작업 전 매트를 소독하는 연구원의 모습./ 박설민 기자
저어새 가락지 작업 전 매트를 소독하는 연구원의 모습./ 박설민 기자

저어새 가락지 부착활동은 저어새의 개체식별과 이동경로 추적을 위한 연구활동을 목적으로 한다. 매년 인천 남동유수지를 중심으로 한 저어새 번식지에서 진행된다. 원래 6월 중순쯤 진행돼야 하지만 올해는 장마로 7월 초에 진행됐다. 때문에 작업은 장마 기간 안전 문제로 남동구처의 협조 아래 이뤄졌다.

인천시 남동유수지 내부에는 2개의 인공섬이 있다. 이 섬에 매년 저어새들이 방문해 새끼를 낳아 기른다. 연구자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섬에 접근, 새끼들을 포획해 육지로 데려온 후 가락지 작업을 진행한다.

인천시 남동유수지 내부에는 2개의 인공섬이 있다. 이 섬에 매년 저어새들이 방문해 새끼를 낳아 기른다. 연구자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섬에 접근, 새끼들을 포획해 육지로 데려온 후 가락지 작업을 진행한다./ 박설민 기자
인천시 남동유수지 내부에는 2개의 인공섬이 있다. 이 섬에 매년 저어새들이 방문해 새끼를 낳아 기른다. 연구자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섬에 접근, 새끼들을 포획해 육지로 데려온 후 가락지 작업을 진행한다./ 박설민 기자
가락지 작업을 위해 포획한 새끼 저어새의 모습./ 박설민 기자
가락지 작업을 위해 포획한 새끼 저어새의 모습./ 박설민 기자

인공섬으로 보트가 접근하자 저어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때 잘 날지 못하거나 짧게 날다 저수지 위로 내려앉는 개체가 새끼 저어새들이다. 태어난 지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제대로 날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혹여나 새끼가 물에 빠질까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어린 저어새들을 포획한 후 보트를 타고 육지로 이동했다. 포획된 새끼 저어새는 겁을 먹은 듯 숨을 헐떡였다. 어미 저어새들은 보트 머리 위를 날며 걱정스러운 듯 울었다. 저어새 보호·연구활동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지만 저어새 가족 입장에선 두렵고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는 있었다.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마친 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 이기섭 박사는 “새끼 저어새들의 정확한 추적과 연구, 보호를 위해서 가락지 작업은 필수”라면서도 “새끼들의 건강과 둥지의 안정을 위해 빠른 시간 안에 작업을 마무리 해야하기 때문에 늘 긴장이 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새끼 저어새를 포획해 육지로 데려온 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새끼 저어새의 다리가 그물에 잘못 걸릴 경우 부러질 수 있어서다. 연구원들과 봉사자들은 새끼 저어새들을 조심히 안고 이동했다./ 박설민 기자
새끼 저어새를 포획해 육지로 데려온 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새끼 저어새의 다리가 그물에 잘못 걸릴 경우 부러질 수 있어서다. 연구원들과 봉사자들은 새끼 저어새들을 조심히 안고 이동했다./ 박설민 기자

◇ 긴장의 연속 ‘가락지 작업’… 어린이 봉사자들도 활약

새끼 저어새를 포획해 육지로 데려온 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새끼 저어새의 다리가 그물에 잘못 걸릴 경우 부러질 수 있어서다. 연구원들과 봉사자들은 새끼 저어새들을 조심히 안고 이동했다. 하얀 방역복을 입고 저어새를 안은 연구원들은 마치 산부인과에서 갓난아이를 조심히 안고 가는 간호사들처럼 보였다.

저어새가 도착하자 신속히 작업이 진행됐다. 빨간색, 저어새 가락지 작업은 새의 개체 식별과 이동 경로 추적, 생태 연구를 위해 다리에 작은 식별용 링(Leg band)를 부착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빨간색, 노란색의 각각의 가락지에는 태어난 날짜와 개체 코드, 혈액형까지 다양한 저어새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저어새 가락지 작업을 진행하는 연구원들. 빨간색, 노란색의 각각의 가락지에는 태어난 날짜와 개체 코드, 혈액형까지 다양한 저어새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박설민 기자
저어새 가락지 작업을 진행하는 연구원들. 빨간색, 노란색의 각각의 가락지에는 태어난 날짜와 개체 코드, 혈액형까지 다양한 저어새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박설민 기자
연구원들은 채혈 작업도 진행했다. 겁을 먹어 거칠게 파닥거리는 저어새를 부드럽게 붙잡기 위해 2인 1조로 작업이 이뤄졌다. 채혈 작업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저어새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데 사용된다./ 박설민 기자
연구원들은 채혈 작업도 진행했다. 겁을 먹어 거칠게 파닥거리는 저어새를 부드럽게 붙잡기 위해 2인 1조로 작업이 이뤄졌다. 채혈 작업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저어새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데 사용된다./ 박설민 기자

연구원들은 채혈 작업도 진행했다. 겁을 먹어 거칠게 파닥거리는 저어새를 부드럽게 붙잡기 위해 2인 1조로 작업이 이뤄졌다. 채혈 작업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저어새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데 사용된다. 바늘로 채혈한 부분은 즉각 알코올 솜으로 소독해 세균 감염과 추가 출혈을 막았다.

가락지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봉사자들도 쉴 틈이 없었다. 이들은 저어새들에게 쉬지 않고 부채질을 했다. 무더운 날씨에 저어새들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서다. 7월, 33도에 육박하는 기온과 뜨거운 햇빛에 노출된 새끼 저어새들을 위해 어린이 봉사자들도 고사리손으로 부채를 들고 저어새들에게 부채질을 해줬다.

땀을 흘리지 않는 저어새의 체온 조절을 위해 부채질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의 모습./ 박설민 기자
땀을 흘리지 않는 저어새의 체온 조절을 위해 부채질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의 모습./ 박설민 기자

저어새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장기간 비행을 하는 새들은 체내 수분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물을 자주 섭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땀을 흘리는 것은 수분 손실이 커 땀샘이 발달되지 않았다. 대신 ‘기호흡’, 날갯짓 등으로 열을 식힌다. 이때 무더위 속에 가락지 작업으로 붙잡힌 상태에선 열을 식히기 어렵다.

한 어린이 봉사자는 “가락지 작업에 참여해 저어새를 처음 봤는데 너무 귀엽고 신기하다”며 “날씨가 더워 힘들긴 하지만 아기 저어새들을 위해 부채질을 해주는 것이 보람 있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저어새의 전 세계 개체수는 약 6,900여마리다. 이 중 90%는 한국에 서식한다. 한국 저어새 보호활동에 전 세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유다./ 박설민 기자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저어새의 전 세계 개체수는 약 6,900여마리다. 이 중 90%는 한국에 서식한다. 한국 저어새 보호활동에 전 세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유다./ 박설민 기자

◇ “저어새 보호는 갯벌 생태계 모두를 지키는 것”

이처럼 무더운 여름, 수많은 봉사자들과 연구기관 전문가들이 모여 저어새 가락지 작업을 하는 것은 저어새 보호의 가치 때문이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저어새의 전 세계 개체수는 약 6,900여마리다. 이 중 90%는 한국에 서식한다. 한국 저어새 보호활동에 전 세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유다.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박사는 “최근 남동유수지 등 저어새 서식지에 민물가마우지 등 경쟁 유해조수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선 정확한 추적과 정보 확보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매년 가락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어새 보호 활동은 저어새 단일 개체에 대한 보호의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라며 “가장 취약한 종인 저어새를 보호함으로써 개체수가 더 많고 아직 비교적 안전한 도요새, 갈매기 등 물새와 갯벌 생태계를 동시에 보호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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