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미국이 예고한 25% 관세 폭탄이 일단 15%로 조정되면서, 한국 자동차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같은 수준의 안도감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 현지 생산 체계를 빠르게 갖춘 현대자동차그룹은 숨통이 트인 반면,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GM은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한·미 양국은 7월30일(현지시간) 관세 협상을 타결하며,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 예정이던 25% 관세를 한시적으로 15%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8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전략적 협상을 통해 최악의 충돌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12.5% 인하안을 끝까지 고수했으나, 미국이 "모든 FTA 대상국에 15%를 동일 적용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탓에 협상은 15% 선에서 마무리됐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관세가 0%에서 15%로 인상된 점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당초 예고됐던 25%보다는 나은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미 FTA 이후 유지돼온 무관세 체제가 이번 협상으로 사실상 무력화되며 자유무역 질서 전반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국은 FTA 체결국으로서 0% 유지가 원칙임을 끝까지 강조하면서 12.5%를 주장했지만 미국은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며 "이를 거부할 경우 전체 협상 구조가 흔들릴 수 있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협상을 포함한 미국의 최근 무역정책은 WTO나 FTA 체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고, 기존 자유무역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부연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 약속 △1000억달러 이상 미국산 에너지·원자재 구매 확대 △조선·방산 분야 협력 강화를 협상 카드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양보가 아닌, 미국 경제에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방식의 '패키지 딜'이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와 별도로 업계에서는 자동차에 적용된 15% 관세 외에 기존 철강(25%)·반도체 등 부품에 부과된 고율 관세가 중복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완성차에 포함된 핵심 소재에 이중 관세가 부과될 경우 기업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성혁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은 "철강·알루미늄 등 무역확장법 232조 대상 품목은 이번 협상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며 "해당 소재가 포함된 완성 제품에는 부가가치만큼 추가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각에서는 '이미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우리 기업들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왔는데, 이번 협상에서 그것이 얼마나 레버리지로 작용했는가'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윤성혁 비서관은 "기존 투자도 협상 패키지에 일부 반영됐으며, 상당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집권기에 실제 집행될 예정인 만큼 이번 협상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이번 관세 유예는 현대차그룹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 주에서 전기차 생산을 위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yundai Motor Group Metaplant America, 이하 HMGMA)를 가동 중이며,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 배터리 공장도 현지 조달 비율을 높이고 있다.
특히 정의선 회장이 직접 방미해 실무 협상에 나선 사실까지 전해지며, 이번 타결은 민관 합동 산업외교의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수혜를 겨냥해 배터리·광물 공급망 재편, 현지 고용 확대, 탄소중립 투자까지 연계된 전략을 실행해왔다. 관세 유예로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유리한 구조가 강화되며 △현대모비스 △만도 △한온시스템 등 주요 부품사들도 북미 OEM 대응에서 수혜가 예상된다.
반면, 한국GM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군산공장 폐쇄 이후 부평·창원공장을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GM은 전체 생산의 80% 이상을 북미로 수출하고 있다. 현지 생산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관세가 단기 유예에 그친다면, 국내 공장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모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이 물량 배정을 재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GM은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중심으로 수출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내 판매는 전체의 10%에도 못 미친다. 고율 관세가 다시 거론될 경우 생산지 이전이나 수출국 다변화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이번 관세 조정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이 '전략적 파트너'로 다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에너지·안보를 아우르는 산업 동맹 구상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한국은 여기에 부합하는 수준의 경제적 기여를 제시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은 단기적으로 숨통을 틔워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에서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고용하느냐'가 평가 기준이 되는 시대의 서막을 알린 셈이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단순한 관세 회피 전략을 넘어 '현지 생산–현지 고용–친환경 투자'의 삼각 방정식을 지속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전기차 전환, 공급망 재편, 기술 규제 강화 등 겹겹의 도전에 직면한 한국 자동차산업에 있어 관세 협상은 단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구조적 전환기 속에서 산업 전체가 미래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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