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저항보고서㊲] 캘리포니아, 공존의 땅… 그곳 집 앞엔 해달이 산다

시사위크
미국 서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California)는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를 주축으로 미국 첨단기술산업의 상징인 장소다. 동시에 해양생물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호텔과 집 앞을 나서기만 해도 바다사자, 해달이 반겨주는 이곳이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미국 서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California)는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를 주축으로 미국 첨단기술산업의 상징인 장소다. 동시에 해양생물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호텔과 집 앞을 나서기만 해도 바다사자, 해달이 반겨주는 이곳이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시사위크|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미국 서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California)는 미국 첨단기술산업의 상징인 장소다. 산호세부터 산타클라라, 샌프란시스코까지 이어진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를 주축으로 구글, 애플, 테슬라 등 반도체·인공지능(AI)·로봇과 관련한 글로벌 첨단 IT산업 주축 기업·연구기관이 이곳에 있다. 

하지만 첨단기술만이 캘리포니아의 상징은 아니다. 1년 365일 온화한 날씨의 이곳은 다양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특히 태평양과 인접한 넓은 바다는 해양생물들의 천국이다. ‘시사위크 취재팀’은 호텔과 집 앞을 나서기만 해도 바다사자, 해달이 반겨주는 이곳에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Monterey Bay)의 모스랜딩에서 만난 야생 해달의 모습./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Monterey Bay)의 모스랜딩에서 만난 야생 해달의 모습./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 몬터레이만의 마스코트 ‘해달’의 가치

“탁탁탁.” 돌끼리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바다 위에서 울렸다. 우리에게 ‘보노보노’ 만화캐릭터로 잘 알려진 ‘해달(Sea Otter)’이 조개를 깨는 소리였다. 해초를 이불처럼 몸에 감고 잠을 자는 해달 가족들도 있었다. 그 해달 주위로 카약을 탄 관광객들과 어선들이 지나갔다. 해달들은 인간이 익숙한 존재인 듯 무던한 표정이었다.

이곳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Monterey Bay).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안에 위치한 태평양의 만이다. 해달과 바다사자, 고래, 물새 등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간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이곳에는 약 36종의 해양포유동물과 525종의 어류, 450종 이상의 해조류가 서식한다. 말 그대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자연의 땅이다.

몬터레이만은 해달뿐만 아니라 바다사자 등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몬터레이만은 해달뿐만 아니라 바다사자 등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해양포유동물뿐만 아니라 가마우지, 팰리컨 등 물새들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해양포유동물뿐만 아니라 가마우지, 팰리컨 등 물새들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동물은 단연 해달이다. 귀여운 외모와 행동으로 해달은 몬터레이만의 마스코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매년 전 세계 관광객들도 해달을 보기 위해 몬터레이만을 찾는다. 때문에 몬터레이만 근처 상점에는 해달 관련 상품들이 즐비했다. 길을 지나는 어린이들의 손에는 모두 해달 인형이 하나씩 들려있을 정도였다. ‘BBC 선정,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동물’에 해달이 1위를 차지한 것이 실감났다.-

하지만 몬터레이만이 처음부터 해달들의 천국인 것은 아니었다. ‘해달 모피 사냥’ 때문이다. 해달은 피부 표면 1cm²당 약 15만 가닥의 털을 갖는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방수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이 털가죽은 매우 부드럽고 윤기가 흘러 고급 옷감으로 인기가 높았다.

해초를 몸에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해달들의 모습./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해초를 몸에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해달들의 모습./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값비싼 해달 모피를 얻기 위해 1700년대 중반부터 1911년까지 몬터레이만 인근에선 해달 사냥 열풍이 일었다. 해달 개체 수는 급감했다.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약 15~30만 마리가 서식하던 해달은 1,000~2,000여 마리까지 감소했다.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몬터레이만에선 해달이 사실상 멸종당했다.

해달의 멸종은 몬터레이만 지역에 ‘재앙’으로 다가왔다. 천적인 해달이 사라지면서 몬터레이만의 켈프숲(해초숲)에 성게와 홍합이 급증한 것이다. 과잉번식이 일어난 조개와 성게는 엄청난 양의 해조류를 먹어치웠고 켈프숲 전체가 초토화됐다. 켈프숲의 황폐화로 인해 몬터레이만의 해양생태계는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1700년대 중반부터 1911년까지 몬터레이만 인근에선 심각한 밀렵으로 해달이 사실상 멸종했다. 하지만 연구자들과 캘리포니아 지역의 노력으로 최근 개체수 회복에 성공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1700년대 중반부터 1911년까지 몬터레이만 인근에선 심각한 밀렵으로 해달이 사실상 멸종했다. 하지만 연구자들과 캘리포니아 지역의 노력으로 최근 개체수 회복에 성공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캘리포니아의 과학자들은 해달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11년 ‘해달 및 물개류 보호 국제조약’을 시작으로 미국, 러시아, 일본, 캐나다 4개국은 해달 남획을 금지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1977년 멸종위기종 보호법을 제정하고 멸종위기종에 해달을 등록해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해달의 개체수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몬터레이베이 아쿠아리움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23년까지 몬터레이만 인근 해달의 장기 개체군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12년까지 평균 개체수가 73~122마리였던 해달 개체수는 최근 535~626마리로 집계됐다.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관광지 ‘피어39(Pier 39)’는 수많은 바다사자를 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곳에는 특정 시기에는 1,000마리가 넘는 바다사자가 몰려들기도 한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관광지 ‘피어39(Pier 39)’는 수많은 바다사자를 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곳에는 특정 시기에는 1,000마리가 넘는 바다사자가 몰려들기도 한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 피어39 어부들이 바다사자와 함께 살아가게 된 이유

몬터레이만의 해달 취재를 마친 후, 약 2시간을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최근 공실과 집값 폭등 문제로 노숙자가 증가하는 등 옛 명성을 잃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미국 IT산업의 중심지라는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 운전자가 없는 인공지능(AI) 무인택시 ‘웨이모(Waymo)’가 도로를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첨단도시의 이미지와 다르게 샌프란시스코 역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이뤄지는 도시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관광지 ‘피어39(Pier 39)’는 수많은 바다사자를 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곳에는 특정 시기에는 1,000마리가 넘는 바다사자가 몰려들기도 한다.

피어39 부둣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바다사자들의 모습./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피어39 부둣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바다사자들의 모습./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피어39 내부로 들어가자 여러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먹이를 주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위 등 바다사자를 자극할 행동은 전면 금지돼 있었다. 관광객들의 배려 속에 바다사자들은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바다사자들은 사람들이 흥미로운 듯 가까이 헤엄쳐 와 구경하기도 했다.

피어39에 바다사자들이 살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1989년 10월 샌프란시스코 교외 로마 프리에타 지역에서 진도 6.9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때 발생한 지진에서 안전한 곳을 찾던 바다사자들은 피어39 부둣가에 나타났다. 이후 백상아리와 범고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고 먹이도 풍부한 피어39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것이다.

피어39에 바다사자들이 살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1989년 10월 샌프란시스코 교외 로마 프리에타 지역에서 진도 6.9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때 발생한 지진에서 안전한 곳을 찾던 바다사자들은 피어39 부둣가에 나타났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피어39에 바다사자들이 살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1989년 10월 샌프란시스코 교외 로마 프리에타 지역에서 진도 6.9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때 발생한 지진에서 안전한 곳을 찾던 바다사자들은 피어39 부둣가에 나타났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물론 처음부터 피어39가 처음부터 바다사자들의 천국인 것은 아니다. 과거 피어39에는 바다사자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민들도 바다사자의 등장을 반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물을 찢고 부둣가를 장악한 바다사자 때문에 어선을 정박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민들은 바다사자를 내쫓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것은 ‘공존’이었다. 피어39의 어민들은 지역 동물 전문가들과 연구기관 연구원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바다사자에게 오히려 피어39의 부둣가 한쪽을 쉼터로 마련해주고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후 바다사자는 피어39의 명물이 되어 어민들에게 막대한 관광 수익을 주는 ‘복덩이’가 됐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시청에 따르면 피어39 주변 지역인 ‘Fisherman's Wharf’에선 바다사자가 2,100마리까지 증가했던 2024년 5~6월엔 전년 동기 대비 보행자 숫자가 40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사자 등 피어39 주변 해양동물들을 보기 위해 관광시설이 활성화된 효과라는 것이 샌프란시스코 시청 측 분석이다.

‘해양포유동물센터(The Marine Mammal Center, TMMC)’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해양포유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핵심 기관이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해양포유동물센터(The Marine Mammal Center, TMMC)’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해양포유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핵심 기관이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 캘리포니아 바다를 지키는 ‘TMMC’ 연구자들

몬터레이만의 해달, 피어39의 바다사자와 같이 해양포유동물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했던 것은 주요 연구기관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해양포유동물센터(The Marine Mammal Center, TMMC)’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해양포유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핵심 기관이다.

TMMC는 지난 1975년 설립된 민간 비영리기관이다. 캘리포니아 지역 소살리토(Sausalito)에 위치했다. 부상당하거나 버려진 해양포유류를 구조와 재활, 방생을 목표로 운영된다. TMMC는 지난 50년간 약 2만4,000여마리의 해양포유류를 구조했다. 그 종류는 해달과 바다사자부터 바다코끼리, 고래 등 다양하다. 1990년 피어39에서 바다사자들과의 공존을 제안했던 기관도 TMMC다.

TMMC 내부의 동물 재활 시설 모습. 상처를 입은 바다사자들은 이곳 연구원들과 수의사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또한 질병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한 방역이 이뤄진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TMMC 내부의 동물 재활 시설 모습. 상처를 입은 바다사자들은 이곳 연구원들과 수의사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또한 질병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한 방역이 이뤄진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TMMC의 연구 및 동물보호활동을 살펴보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 태양광 패널과 철창으로 이뤄진 센터 내부에는 다친 바다사자들이 가득했다. 이들은 TMMC 소속 전문 연구원들과 수의사들에게 치료와 재활을 받고 있었다. 세균·바이러스 감염 위험때문에 전문가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접근 철저히 차단됐다.

TMMC의 시민 봉사원인 마크 브로커링은 “소살리토 해안에는 바다사자를 비롯한 수많은 해양포유동물이 살고 있다”며 “이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노력하고 있고 저처럼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TMMC에서 회복이 끝난 동물들은 야생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TMMC에서 회복이 끝난 동물들은 야생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동물 구조뿐만 아니라 TMMC에서 최근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은 ‘기후변화’다. 특히 최근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은 ‘유해조류 대번식(Toxic algal bloom) 현상’이다. 수온 상승으로 독소를 생성하는 조류(Harmful Algal Blooms, HABs)의 대규모 번식으로 유독한 신경독소가 해양생물들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2월 캘리포니아 마리부 해안가에선 대량의 유해조류 번식에 바다사자들이 대량으로 폐사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캘리포니아 야생동물관리국에 이 바다사자들이 중독된 독은 ‘도모산(Domoic-acid)’이다. 도모산은 유해조류의 한 종류인 ‘수도니치아’가 만들어내는 신경독소다. 이 독소에 중독된 포유류는 발작, 뇌 손상이 발생한다.

크리스탈 크루식 TMMC 공공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사진)는 “TMMC에선 해양포유동물을 위협하는 요소로 기후변화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유해조류의 번식은 강력한 신경독소를 유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최근 바다사자와 해달, 고래 등이 중독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크리스탈 크루식 TMMC 공공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사진)는 “TMMC에선 해양포유동물을 위협하는 요소로 기후변화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유해조류의 번식은 강력한 신경독소를 유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최근 바다사자와 해달, 고래 등이 중독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캘리포니아=박설민 기자

크리스탈 크루식 TMMC 공공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TMMC에선 해양포유동물을 위협하는 요소로 기후변화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유해조류의 번식은 강력한 신경독소를 유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최근 바다사자와 해달, 고래 등이 중독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유해조류문제는 TMMC와 같은 연구기관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미국 정부, 더 나아가 전 세계 정부가 함께 힘을 모아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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