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25% 상호관세 발효를 나흘 앞두고 산업계가 협상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당장 8월부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약 한 시간 동안 회동한 뒤 유럽산 자동차를 포함한 EU 상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협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EU가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8조원) 구매와 6000억달러(약 830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 내 추가 투자, 대규모 무기 구매 등을 약속한 데 따른 결과이다.
EU에 앞서 일본도 관세 부과 직전 미국과 극적으로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은 지난 22일 일본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무역합의를 맺었다. 또 일본은 미국에 5500억 달러(약 759조825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자동차 관세 인하를 대가로 쌀 등 농산물 시장도 미국에 개방하기로 약속했다.
일본에 이어 EU까지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합의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협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당초 지난 25일 예정됐던 한미 2+2 통상 협의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긴급 일정으로 돌연 취소돼서면서다. 당시 미국 출국 예정이었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일정은 전면 중단됐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과의 협의를 계획대로 진행했다. 두 사람은 앞서 지난 22일과 23일 관세 협상을 위해 방미길에 올랐다. 김 장관의 경우 24일 워싱턴DC 미국 상무부 청사에서 협상을 벌인 뒤 다음날인 25일에도 뉴욕 러트닉 장관 자택으로 장소를 옮겨 연일 협상을 벌인 바 있다.

한국에는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업계에서는 협상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관세 직격탄이 우려되는 자동차·철강 업계가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지난 4월부터 이미 25%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이에 대한 영향은 올해 2분기 성적표에서 드러났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번 2분기에 미국 관세로 인해 각각 8282억원, 7860원의 손해를 봤다. 이 둘을 합치면 총 1조6142억원이다. 영업이익도 급감했다. 올 2분기 현대차는 3조6016억원, 기아는 2조76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8%, 24.1% 감소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관세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3분기를 포함한 하반기에 더 큰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은 “3·4분기에는 2분기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한다”며 관세 등 통상 환경의 변동 방향성에 따른 손익 영향도 등이 경영 활동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 역시 “하반기는 관세 영향을 이제 모두 받기 때문에 상반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관세로 인한 고객의 선수요 영향이 있는데 완성차업체(OEM) 가격 인상과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이 우려돼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미국의 25% 관세 부과 시 현대차는 약 6조5000억원, 기아는 6조원으로 총 12조5000억원가량의 관세 부담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추산했다. 관세가 15%로 낮아질 경우 현대차 3조9000억원, 기아 3조6000억원 등 관세 비용이 이전보다 40% 줄어든 7조5000억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는 현지 내 상황을 보며 관세 대응 방안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탄력적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한편, 차종 부품을 현지화하고, 고부가가치 차종 출시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측은 “부품 소싱 다변화를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다”며 “200개 업체로부터 부품 견적서를 받았고 국내 수출, 현지 소싱 등을 놓고 최적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아는 연초에 수립했던 미국에서 캐나다, 멕시코 일부 아중동 지역 수출하는 물량을 미국 내 우선 공급하는 원칙을 세워 진행한다. 인센티브를 축소 운영하고,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종의 부품에 대한 관세 환급을 통해 25~30% 가까운 관세를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하이브리드 생산을 전년 대비 100% 이상 늘려 7%의 판매 성장을 만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철강업계는 이미 타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지난 3월 25%였던 관세는 지난달 50%까지 치솟으며 피해가 가중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3억2700만달러)은 전년 동기 대비 16.3% 감소했다. 수출 단가(톤당 1295달러)는 9.4% 하락했다. 지난달 국내 철강 수출도 미국 관세 인상 여파로 지난해 동기보다 8% 감소한 약 24억달러로 나타났다.
관세는 국내 철강사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대제철은 2분기 매출은 4조6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75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오는 31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포스코홀딩스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64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매출도 18조526억원으로 2.5%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철강과 알루미늄 품목별 관세가 특정 국가에는 면제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별로 없다”고 답한 것을 비춰볼 때,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도 50% 관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이다보니 협상 상황을 더욱 더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 원가에서 철강 비중이 30%를 차지하고 있는 가전업계도 전망이 흐리다. LG전자는 미국 관세 부담, 수요 침체 등으로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7% 줄어든 6394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 줄어든 20조7352억원을 달성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전사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주요 시장 수요 부진에 미국 통상 정책 변화에 따른 관세 부담과 시장 경쟁심화 등 비우호적 경영 환경이 이어지며 전년 동기 대비 줄었다”며 “물류비 등 전년 대비 증가한 비용 요인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LG전자는 미국 현지 가격 인상 관련해 “관세 정책의 변화, 경쟁 동향 등 여러 관점을 충분히 고려해 유통과 협의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취재진을 만나 “미국 생산 기지 건립은 마지막 수단”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 2분기 가전·TV 등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실적이 부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 2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5.94% 줄어든 4조6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번 관세 조치가 철강과 자동차를 넘어 반도체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무역협상 타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관세를 “2주 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4월부터 반도체, 반도체 제조장비, 파생제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벌여왔다. 반도체 관련 조사 대상에는 반도체 기판과 웨이퍼, 범용 반도체, 최첨단 반도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제조장비 부품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인 관세율과 부과 품목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미 상무부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품목이 모두 반도체 관세에 포함될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뿐 아니라 반도체를 부품으로 완제품(세트)을 생산하는 전자 부품업계도 관세 영향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직접적인 대미 수출뿐 아니라, 제3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역시 공급망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인 관세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 건설을 준비허고 있다. 다만 양 사 모두 메모리 생산시설은 미국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상황이 변하고 있는 만큼, 그에 맞춰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막판 교섭에 나섰다. 구 부총리는 이번주 미국에 방문해 베선트 재무장관과 상호관세 유예 마지막 날인 31일(현지시간)에 1대 1 통상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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