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인사이트 53] ESG시대, 4.5일제를 기회로 만드는 조직 조건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주5일제가 2004년 도입됐다.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우려는 명확했다.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중소기업은 견디기 어렵다”며 걱정이 쏟아졌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 누구도 토요일 출근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 새로운 변곡점에서 4.5일제라는 또 다른 변화 앞에 서 있으며, 경기도가 시범사업으로 앞장서고 있다.

4.5일제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단순한 근무시간 단축이 아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에 걸맞은 조직 운영 철학의 전환이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삼을 수 있다.

왜냐하면 4.5일제가 조직에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 핵심 역량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대 효율을 달성하려면 불필요한 업무를 과감히 제거하고, 각 구성원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업무 배치와 협업 방식을 재설계해야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조직은 자연스럽게 고성과 조직으로 리빌딩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조직과 능동적으로 기회를 창출하는 조직 간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이다.

4.5일제 전환을 위해 조직이 갖춰야 할 4가지 조건을 살펴보겠다. △성과 중심 관리 △차별화된 접근 △기술 활용 △단계적 실행이 있어야 비로소 조직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첫 번째 조건은 성과 측정 시스템의 전면적 재설계이다. 현재 조직이 직원을 평가하는 기준이 실제 기여도와 가치 창출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각 직원 핵심 역량과 최적 업무 영역을 정확히 파악해 제한된 시간 내 최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업무 재배치가 필수적이다.

두 번째 조건인 임금체계 변화는 시간 기반 보상에서 성과 기반 보상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조직 구성원과 충분한 소통과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각 역할 가치와 기여도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 체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미래 비전과 개인의 성장 목표가 일치되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 조건으로 성공적인 도입을 위한 단계적 접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정 요일 오후 자유시간 제공이나 월 1회 금요일 조기 퇴근 등 작은 실험부터 시작하여 생산성 변화, 직원 만족도, 고객 반응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해당 조직에 최적화된 근무제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네 번째 조건은 경영진의 선제적 학습과 체험이다. AI 도구 활용, 원격 협업 플랫폼 경험, 성과 측정 시스템 구축 등을 직접 체험하고 숙달해야 한다. 경영진이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 전체의 변화를 주도할 때 비로소 근무제 혁신은 경쟁력 강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과거 스포츠 브랜드에서 마케터로 근무하며 직접 경험한 사례가 있다.

해당 브랜드는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를 ‘인텐시브 워크타임(Intensive Work Time)’으로 설정했다. 2시간 동안은 메신저, 개인 업무, 심지어 핸드폰도 터치하지 않고 오직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게다가 평일 중 업무시간 중 4시간을 브랜드와 관련된 운동 시간으로 할애했는데, 업무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오히려 업무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 2시간의 고집중 시간이 하루 전체의 업무 효율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브랜드 마케팅 캠페인 창의성과 브랜드 전략 실행력이 현저히 향상됐다.

더 중요한 것은 그룹사 내 다른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직원 충성도는 물론 실제 매출 성과와 브랜드 인지도에서도 우수한 결과를 달성했다. 타 브랜드 직원이 우리 브랜드로 이직을 희망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외부 지원자도 해당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시간의 양이 아닌 질이 성과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소모하기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100%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다만 모든 업무에 동일한 제도를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제조업 현장과 사무직, 고객 접점 업무와 기획 업무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종별 차이점이 근무시간 단축 도입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직무별, 업종별 특성에 맞는 창의적 접근을 통해 모든 구성원이 변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겠다.

지식 기반 업무에서는 창의성과 집중력이 생산성에 직결되므로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고객 접점 업무나 현장 기반 업무에서는 팀 단위 순환 근무나 교대제를 활용해 서비스 연속성은 보장하면서도 개별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혁신적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AI(인공지능)와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문서 작성, 데이터 분석, 고객 응대 등 과거 많은 시간을 요구했던 업무가 AI를 통해 자동화되거나 간소화되고 있어서다.

중소기업도 4.5일제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대기업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수준을 4.5일제라는 복리후생으로 보완해, 인재 확보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다. 핵심 업무에 집중하고 비핵심 업무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전략적 선택이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산업화 시대 시간 기반 관리 방식을 고수하는 조직은 AI와 디지털 기술이 주도하는 현재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물리적 시간의 양이 아닌 창출하는 가치의 질로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4.5일 도입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시간 관리에서 성과 관리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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