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정권교체와 맞물려 한국에서도 '소버린 AI'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국가 주도의 인공지능 개발을 통해 자국의 언어, 문화, 가치관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분명 의미가 크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추진 중인 언어 중심의 소버린 AI 접근법은 기술적 현실과 글로벌 AI 생태계의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 문화,언어 중심 소버린 AI의 기술적·경제적 현실
소버린 AI의 핵심을 언어와 문화적 특성에 둔 시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 성과가 제한적이다. 성공적인 AI 모델은 단지 자국어 처리를 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의 언어적·문화적 이해와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어 중심 AI 모델의 개발은 데이터 부족, 기술적 한계, 경제적 제약 등 다층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
특히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는 양적‧질적 측면 모두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국내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는 특정 도메인에 집중되어 있으며, 고도화된 전후처리 시스템 없이 이를 활용한 LLM 개발은 실효성이 낮다. 여기에 한국어 고유의 언어학적 복잡성까지 더해지면, 글로벌 수준의 AI 모델을 단기간 내 개발한다는 목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 글로벌 경쟁에서의 구조적 불리함
LLM(거대언어모델)은 사용자가 많을수록 성능이 고도화되는 네트워크 효과가 크다. 글로벌 AI 모델들은 이미 수억 명의 사용자 기반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능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LLM은 1천만 명 도 안되는 시장에서 테스트되고, 그 결과는 구조적인 성능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주요 AI 기업들의 모델은 대부분 동일한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기반이며, 큰 틀에서 보면 기존 글로벌 모델의 구조를 답습하는 수준이다. 진정한 기술 차별화는 새로운 학습 방법, 아키텍처, 또는 혁신적인 응용 서비스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 프로젝트는 '따라잡기'에 급급해 보이며, 글로벌 AI 시장에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다.
◆ 과연 '국산화'로 승부가 날 문제인가
1980년대 '국산화' 기조의 산업 정책은 오늘날의 AI 생태계와는 결이 다르다. AI는 소프트웨어이자 서비스이며, 기술의 개방성과 상호운용성 없이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 '한국적 정서'만을 강조한 AI 모델이 글로벌 사용자에게 경쟁력 있는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단지 '국산 AI'를 쓰자는 논리는 애국심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AI 개발에는 인재와 인프라라는 두 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고급 AI 인재의 규모나 슈퍼컴퓨팅 인프라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격차가 크다. 인력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GPU 클러스터나 대규모 학습 환경은 대부분 해외에 있다. 이런 조건에서 대규모 독자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실용적 대안과 전략적 제언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LLM 자체의 경쟁이 아니라 AI 응용 생태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한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산업 △게임 △K-콘텐츠 △전자상거래 △제조업 등에서 AI 기반 서비스를 혁신적으로 적용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예컨대 K-POP IP 기반의 생성형 콘텐츠 AI, 산업현장용 스마트 팩토리 AI 등은 독창성과 시장성이 모두 가능한 영역이다.이를 위한 인프라 확보와 Pool의 제공을 국가가 해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서비스 평가에 의해 인프라 사용권을 제공해 주는 것)
또한, AI 거버넌스와 윤리, 안전성 등의 기준을 선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EU가 GDPR과 AI법을 통해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있듯, 한국도 윤리적 AI 생태계를 설계하고 아시아 지역의 리더십을 확보할 여지가 충분하다.
아울러, 완전한 독자 모델 개발보다는 글로벌 오픈소스 생태계(Hugging Face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를 통해 기술력과 영향력을 키우는 전략도 필요하다.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한국 특화 기능을 개발하고 글로벌 협업을 확장하는 방향이야말로 지속 가능하면서도 현실적인 접근이다.
◆ 국가 차원의 '진짜 전문가' 히딩크의 기용 필요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활용 전문가나 공공 기획자가 아니라, 실제 글로벌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이끄는 전략적 기획이다.
언어 중심의 AI 주권이라는 모호한 개념 아래, 몇몇 집단의 아집이나 사익이 작동하게 둬서는 안 된다. 진정한 전문가 집단과 실사구시의 전략으로, 응용 중심 생태계와 글로벌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전략이다. 한국의 AI 전략은 기술 개발이 아닌 현실 인식과 방향 설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소버린'이라는 이름 아래 무모한 베팅을 하기보다는, 작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할 때다.
우리와 후손이 살아 가야할 세상은 아직 멀고도 길다. 기술의 변화가 하루가 다르게 일어나는 시대에, 내일 어떤 신기술이 무료로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의 무모한 투자는 세금 혜택을 노리는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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