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지난 ‘7번방의 선물’… 여전한 발달장애인 사법 사각지대

시사위크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개봉한 지 12년이 지났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발달장애인이 마주하는 현실은 이때에 비해 나아졌을까. 사진은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 NEW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개봉한 지 12년이 지났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발달장애인이 마주하는 현실은 이때에 비해 나아졌을까. 사진은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 NEW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6세 지능을 가진 발달장애인이자 한 아이의 아빠인 용구 씨. 그는 비 오는 날 길가에 쓰러진 한 아이를 발견하고 구해주다 경찰들에 의해 아동 성범죄자로 오해를 받게 된다. 결국 용구 씨는 발달장애인에 이해도 낮은 사법 체계로 인해 강력범죄자로 오명을 쓴 채 교도소에 수감되게 된다.

어딘가 익숙한 이 이야기는 지난 2013년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이다. ‘7번방의 선물’은 개봉 당시 발달장애인이 사법절차에서 어떤 처우를 받게 되는지를 담아내 이들의 사법 사각지대를 대중이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 형사사법 절차에서 발달장애인은 적합한 제도를 통해 보호를 받고 있을까.

◇ 무용지물인 발달장애인 사법 지원 체계

국내 발달장애인의 수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시‧도 장애인 등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발달장애인 수는 28만여명으로, 2015년 21만1,000명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 그래프=이주희 디자이너
국내 발달장애인의 수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시‧도 장애인 등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발달장애인 수는 28만여명으로, 2015년 21만1,000명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 그래프=이주희 디자이너

국내 발달장애인의 수는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시‧도 장애인 등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발달장애인 수는 28만여명에 달한다. 이는 2015년 21만1,000명에 비해 6만9,000명 증가한 수치다. 

해가 다르게 발달장애인의 수는 늘고 있지만,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예기치 못하는 사건들로부터 본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체계는 빈틈 투성이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방어권은 인간의 존엄과 법 앞에 평등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 요소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의사표현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법절차에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수사 초기 단계에서 적절한 조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에 이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조력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23일 서울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발달장애인의 형사사법 과정에서의 차별시정' 주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지영 연구위원이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23일 서울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발달장애인의 형사사법 과정에서의 차별시정' 주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지영 연구위원이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23일 서울 이룸센터 누리홀에서는 ‘발달장애인의 형사사법 과정에서의 차별시정’을 주제로 2025년 장애인 인권증진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지영 연구위원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피고인이 발달장애인인 사건의 판결문은 1,273건이다. 이 가운데 성추행 등의 성범죄가 35.6%, 소액절도 등의 절도가 23.6%를 차지한다”며 “이 사건들 가운데 변호인 없이 판결이 내려진 사건이 6.8%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죄 사건이 1.7%인데, 판결문을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내용을 볼 수 있다”며 “얼마나 성의 있는 변호인을 만나느냐, 그 다음으로 주변에 가족 등의 인적 지원체계가 얼마나 사건을 성의 있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무죄인지 아닌지가 갈리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피의자 혹은 피해자가 된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체계가 없진 않다. 현재 이들을 위해 △신뢰관계인제도 △보조인제도 △진술조력인제도 △전담조사관제도 등의 지원체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체계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지영 연구위원은 “신뢰관계인 제도 경우 1차 조사를 받기 전에 신뢰관계인이 동석해 발달장애인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신뢰관계인 제도는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는 의사를 결정‧전달한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의자의 연령‧성별‧국적 등의 사정을 고려해 심리적 안정의 도모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신뢰관계인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발달장애인 여부를 수사기관에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장애인을 강제 연행하거나 형식적으로 ‘경찰서 같이 가시죠’라고 했을 때 발달장애인의 경우 그냥 따라가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특히 지구대나 파출소에 발달장애인 피의자가 먼저 도착했을 때 1차 조사가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뢰관계인이 도착 했을 때 글을 읽지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데 지장 다 찍고 끝나 있는 상태가 많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 1과 최은숙 조사관 또한 “신뢰관계인 미제공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문제”라며 “올해 실시한 발달장애인 수용자 면담 조사 결과 127명 중 27명 정도가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을 전혀 읽고 쓸 줄 모르거나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등의 경우에도 혼자서 조사를 받은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보조인 제도 역시 잘 작동되지 않고 있긴 마찬가지다. 김 연구위원은 “경찰이 진술에 끼어들고 싶으면 보조인을 선임하라고 보통 말한다. 하지만 보조인 제도는 거의 사문화됐다고 볼 수 있다”며 “보조인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면 보조인을 신청할 시간이 없다. 또 법원에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의 번거로움, 신뢰관계인과 변호인의 역할이 중첩되는 등의 이유로 실제 현장에서 잘 안 쓰인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장애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약한 장애를 지닌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일상생활 속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반면 심한 장애를 지닌 발달장애인은 간단한 소통조차 어렵다. 이에 진술조력인의 경우 장애수준에 맞춘 의사소통 능력을 가져야 한다. 김지영 연구위원은 “진술조력인 자격증을 법무부에서 부여하고 있는데, 자격증이 있다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충분한 스킬을 가지고 계신 분이 진술조력인이 돼야 하지만 현재 교육시스템에서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전담조사관 제도에 관해서는 “발달장애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전담조사관을 맡은 경찰관이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맡은 사건이 있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을 데리고 갔을 때 전담조사관을 만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며 “수사를 하다가 발달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전담조사관에게 넘겨야 하는데, 이미 증거 다 수집하고 증인들을 만났기 때문에 다른 수사관에게 넘기는 게 잘 안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 1과 최은숙 조사관은 "전담 경찰이나 전담 검사에 대해 알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조사 결과 존재하지 않았다"며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전담 경찰이나 전담 검사제도를 ㅇ 말했다. / 사진=이민지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 1과 최은숙 조사관은 "전담 경찰이나 전담 검사에 대해 알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조사 결과 존재하지 않았다"며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전담 경찰이나 전담 검사제도를 이해하고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진=이민지 기자

최은숙 조사관은 “이번 조사에서 전담 경찰이나 전담 검사에 대해 알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물론 당사자가 알지 못하다고 해서 전담 경찰이나 전담 검사가 담당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당사자가 전담 경찰이나 전담 검사제도를 이해하고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발달장애인이 범죄를 지었다면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벌을 안 받고도 넘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절차로 인해 우리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에 말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조력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경찰서 내 공적 조력인이 있어 꾸준히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또 장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복지카드나 신분증을 확인하는데, 조금 더 신중히 대해 줬으면 한다”고 용기 있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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