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집’ 떠나는 해양생물들

시사위크
최근 들어 자신의 보금자리를 이탈하는 해양생물종이 급격히 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역 해양 생태계 파괴, 해양 생물종 간 불균형 발생 등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최근 들어 자신의 보금자리를 이탈하는 해양생물종이 급격히 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역 해양 생태계 파괴, 해양 생물종 간 불균형 발생 등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바다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환경이다. 해수온과 해수면 상승부터 생물군 변화, 종의 멸종 등 기후변화가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제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자신의 보금자리를 이탈하는 해양생물종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로 꼽힌다. 이 경우 지역 해양 생태계 파괴, 해양 생물종 간 불균형 발생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소라가 400km 떨어진 곳으로 ‘이사’간 이유

실제로 23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소라(Turbo sazae)’의 서식지가 남해안에서 동해 연안으로까지 북상한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 때문이다.

해양환경공단이 실시한 ‘국가 해양생태계 종합조사’에 따르면 남해안에 서식하던 소라가 2018년 기준 북위 37도까지 서식 범위를 확장했다. 이는 울진 인근 지역이다. 즉, 해양으로 이동 시 약 400km 떨어진 곳까지 소라가 서식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KIOST 열대·아열대연구센터 양현성 박사 연구팀은 국립수산과학원 갯벌연구센터 조영관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소라의 생리·생태·유전학적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제주와 동해안에 서식하는 소라가 동일한 유전적 특성을 지닌 종임을 확인했다.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난류와 한류 흐름도 및 소라 채집 지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난류와 한류 흐름도 및 소라 채집 지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KIOST 연구팀은 이 같은 소라의 이동이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갯녹음’ 현상에 의한 것으로 추정했다. 갯녹음 현상으로 먹이군이 사라진 저서생태계에서 버티기 힘들어진 소라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갯녹음 현상이란 ‘바다 사막화 현상’이라 불리는 갯녹음 현상은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석회가루가 석출돼 해저 바닥과 생물, 바위 등에 달라붙는 현상이다. 마치 하얀 밀가루를 덕지덕지 바른 모양으로 달라붙은 석회가루 때문에 ‘백화(白化)’ 혹은 ‘백화현상(白化現象)’이라고도 부른다.

KIOST 제주바이오연구센터 연구팀은 소라 개체군 감소의 주요 원인이 해수온 상승으로 인한 면역 기능 저하에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먹이 변화는 소라의 번식 및 체내 생리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고수온 환경이 면역 기능을 저하시킨 주요 요인이 됐다.

이희승 KIOST 원장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은 해양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해양 생물의 분포 변화 양상을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우리 바다의 생태계 관리 및 보전을 위한 기반 연구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석회조류(Corallina officinalis)를 섭식하는 소라와 KIOST 연구진의 실험에 사용된 소라의 모습./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석회조류(Corallina officinalis)를 섭식하는 소라와 KIOST 연구진의 실험에 사용된 소라의 모습./ 한국해양과학기술원

◇ 상어·물고기 등 대형생물종도 위협

아울러 기후변화로 인해 해양생물의 서식지 분포 변화는 소라, 새우 등 작은 생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물고기부터 상어, 고래에 이르기까지 대형 해양생물들의 서식지 역시 기후변화에 의한 분포가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최근 우리나라 동해안에 온대·열대성 상어들이 발견 개체수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상어종이 발견되는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집계한 동해안 발견 대형 상어류 신고 건수는 2023년 기준 총 29건이다. 2022년 기준 신고 건수 1건보다 29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상어와 같은 대형 어종은 아니지만 소형 열대어류종도 국내 바다를 찾고 있다. KIOST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울릉도·독도 해역에서 국내 미기록종 어류 2종과 기존에 울릉도·독도 해역에서 보고되지 않았던 14종의 어류를 발견했다.

미기록종은 ‘(가칭)등점복기망둑(가칭)’과 ‘큰금줄얼게비늘(가칭)’이다. 또한 기존 해역에서 보고되지 않은 14종은 금강바리, 가라지속, 가막청황문절, 호박돔, 녹색물결놀래기, 주걱치, 파랑비늘돔, 황안어, 호박돔 등이다. 해당 종들 중 8종은 그동안 한국 바다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열대성 어류다.

향후 기후변화가 심해질 경우 이 같은 해양생물의 서식지 이동이 심화될 것이란 연구도 있다. 미국 연방해양대기청(NOAA) 남서부 어업과학센터 연구팀은 상어, 참치 등 북태평양 지역 내 최상위 포식자 23종에 대해 4,300개의 전자 태그를 부착했다. 그 다음 2100년까지 글로벌 기후 변화 모델을 적용, 이들의 서식지 분포 변화에 대한 예측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일부 종의 핵심 서식지가 최대 35%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태평양 전역에서 생물다양성이 북쪽으로 상당히 이동할 가능성이 높음을 확인했다. 즉, 바다가 뜨거워짐에 따라 조금 더 차가운 지역인 북극해 인근으로 생물들이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NOAA 연구팀은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종의 경우 이동 시간 증가와 원양 서식지 손실은 개체수 감소를 심화시키거나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며 “기후 변화의 임박한 영향은 여러 위협에 직면한 생태계를 적응적으로 관리해야 할 시급성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역, ‘남극’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남극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크릴새우’와 ‘옆새우’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사진은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극지 저서생물 연구를 진행한 ‘하계연구대 저서팀’. 인하대 해양동물학연구실과 한국해양대 해양생태학실험실 연구원들로 구성된 하계대 연구팀의 모습./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역, ‘남극’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남극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크릴새우’와 ‘옆새우’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사진은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극지 저서생물 연구를 진행한 ‘하계연구대 저서팀’. 인하대 해양동물학연구실과 한국해양대 해양생태학실험실 연구원들로 구성된 하계대 연구팀의 모습./ 사진=남극특별취재팀

◇ 기후변화, 남극 바다 생물도 위험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물의 서식지 변화는 일반적인 바다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역, ‘남극’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남극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크릴새우’와 ‘옆새우’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실제로 ‘시사위크 특별취재팀’은 지난 1월 남극세종과학기지를 방문, ‘하계연구대 저서팀’. 인하대 해양동물학연구실과 한국해양대 해양생태학실험실 연구원들로 구성된 하계대 연구팀의 연구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그 결과, 최근 남극 기온 상승으로 크릴새우와 옆새우를 포함한 저서생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극의 온도가 높아지면 주변의 빙하가 녹는다. 이 경우 담수 유입으로 인해 인근 바다의 염분 농도가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삼투조절로 체내 염분 균형을 맞추는 저서생물들의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 염분이 감소하면 과도한 수분 흡수로 세포 파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하대 소속 임지빈 연구원은 “일반적인 해안에 서식하는 저서생물에는 게, 새우 등이 많지만 남극에서는 그 생태계 위치를 옆새우들이 차지하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옆새우들의 개체군, 군집에 변화가 생길 경우 남극 해양 생태계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된 국제 연구 결과도 있다. 호주 기후변화·에너지·환경·수자원부 산하 연구기관인 ‘호주 남극부(AAD)’가 지난달 3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남극 지역 내 기후변화가 해빙 주기와 바다 환경, 식물성 플랑크톤 생산성 등을 바꿔 남극 크릴새우 서식지와 밀도, 분포에 큰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AAD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해빙이 빨리 녹거나 늦게 형성되면 크릴이 서식하고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 줄어들게 된다”며 “식물성 플랑크톤의 대량 증식 시기가 변하면 크릴새우의 먹이가 바뀌어 개체군 성장에 영향을 받으며 위성데이터 모델로 이런 서식지 파괴와 재분포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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