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은 수년 전부터 숙취해소 제품에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며 표시·광고를 엄격히 규제해왔다. 한국도 숙취 문구 사용에 인체적용시험 등 실증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며 제도 정비에 나섰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판 중인 숙취제 대한 실증 조사에 나서자 해외 사례와 비교해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전개될지를 놓고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 해외 주요국은 이미 ‘데이터 기반 경쟁’ 체제로 = 일본은 2015년부터 ‘기능성 표시식품’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기업이 자체 임상 또는 문헌 근거를 소비자청에 신고하면 제품에 기능성 문구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 ‘효과’, ‘치료’ 등 의학적 효능을 암시하는 표현은 철저히 금지된다.
실제로 일본 소비자청은 2023년 일반식품 '요우료쿠 케이소(養力珪素)' 제품이 ‘숙취 없이 상쾌한 기상을 유도하는 효과(二日酔いすることなく目覚めを良くする効)’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에 대해, 과학적 근거 없이 의학적 효능을 암시했다는 이유로 2464만엔(약 2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국도 숙취해소제를 건강기능보조식품으로 분류하면서, ‘간 건강 지원’, ‘알코올 대사 보조’ 등 일반적 표현은 허용하지만 ‘숙취 예방’이나 ‘숙취 치료’처럼 의료적 뉘앙스의 문구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FDA는 2020년 ‘숙취를 막는다’는 문구를 사용한 7개 제품에 경고장을 발송한 사례가 있다.
유럽(EU) 역시 ‘숙취 해소’, ‘간 해독’, ‘알코올 분해’와 같은 기능성 또는 의학적 표현을 사용하려면 EFSA(유럽식품안전청)의 검토와 승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은 숙취해소 제품에 ‘효능’을 암시하는 순간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 마케팅 표현조차도 엄격히 규제하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보 정확성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

◇ 한국도 제도 전환… 숙취 문구엔 ‘검증 데이터’ 필수 = 한국도 올해부터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제도 정비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9일 ‘숙취해소 표시·광고’를 포함한 89개 일반식품에 대한 인체적용시험 자료를 검토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39개 업체 80개 제품이 숙취 관련 지표에서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였고, 9개 제품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광고 제한 조치를 앞두고 있다.
이번 조사는 숙취해소 문구를 사용하는 일반식품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요구한 첫 사례로, 제도 시행 이후 최초의 전수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식약처 실증을 통과한 제품에는 HK이노엔의 ‘컨디션’, 삼양사의 ‘상쾌환’, 한독의 ‘레디큐’, 동아제약의 ‘모닝케어’ 등 주요 브랜드가 포함됐다. 이들 제품은 ‘숙취해소’ 문구를 계속 사용할 수 있어 마케팅 측면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반면 오랜 기간 숙취해소 대표 제품으로 알려진 ‘여명808’은 이번 조사에서 효능 입증에 실패하며, 소비자 신뢰도와 시장 입지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는 “객관성과 타당성이 부족한 품목에 대해서는 자료 보완을 요청했으며, 오는 10월 말까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숙취해소 문구 사용을 금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숙취해소 제품은 일반식품으로 분류돼 ‘숙취에 도움’, ‘술자리 필수’, ‘가뿐한 아침’ 등 문구를 별도 인증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과학적 검증 없이도 유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소비자 혼란과 효능 논란이 지속돼왔다.
식약처는 이번 실증조사에서 시험설계의 객관적 절차와 방법을 준수하고, 숙취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설문과 혈중 알코올·아세트알데히드 농도 등의 평가 항목에서 유의미한 개선(p<0.05)이 확인되는 경우만 자료의 타당성을 인정했다. 유의미한 개선이란 시험 식품을 섭취한 그룹과 섭취하지 않은 그룹 간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효하다는 의미로, 100명 중 95명에서 효과가 있다는 확률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숙취해소제의 객관적인 데이터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숙취해소제 시장은 데이터를 내세우지 않으면 경쟁이 어려울 것”이라며 “실증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경쟁이 치열한 숙취해소제 시장에서 인체적용시험 여부가 소비자 선택에 직접 영향을 줄 것”이라며 “시험을 마친 기업들이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본지는 여명808 제조사인 그래미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담당자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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