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물가안정을 강도 높게 주문하며 ‘라면 2,000원’을 언급한 것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요 식품업체 주가가 출렁일 정도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식품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지지부진한 프리미엄 전략… ‘사면초가’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에요?”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물가 상승 문제를 거론하며 언급한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어 “물가 문제가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현황과 가능한 대책이 뭐가 있을지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에서 비롯된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 2,000원’ 언급은 이후 큰 화제를 모으며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 라면업계 1위 농심의 주가가 이날 4.63% 하락했을 정도다. 또한 대선을 앞두고 앞 다퉈 가격 인상에 나서 눈총을 받았던 식품업계는 정부 차원의 물가 관리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고되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런 가운데, 누구보다 곤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 건 다름 아닌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다.
하림그룹은 2021년 하림산업이 프리미엄 가정간편식(HMR) 브랜드 ‘더 미식’을 야심차게 선보인 바 있다. 당시 행사에서 김홍국 회장이 직접 요리복을 입고 라면을 끓이기까지 했다. 또한 ‘더 미식’ 브랜드는 김홍국 회장의 장녀인 김주영 하림지주 상무가 주도한 것이기도 했다. 오너일가가 적극 발 벗고 나선 야심작인 만큼, 그룹 차원에서 홍보와 마케팅 등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프리미엄’을 앞세운 ‘더 미식’ 브랜드의 전략은 출발부터 커다란 물음표가 붙었다.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라면은 오랜 세월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더 미식’에 앞서 등장했던 고가 제품들도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일정 수준의 입지만 간신히 다지는데 그쳤다. 그런데 ‘더 미식’ 브랜드가 선보인 라면 제품은 기존의 고가 제품을 크게 뛰어넘는 가격을 내걸었다. 이후 후속으로 선보인 제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높은 가격에 따른 논란과 우려에도 하림그룹은 줄곧 강한 자신감을 피력해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는데 애를 먹고 있다. ‘더 미식’ 브랜드는 출범 5년차인 현재 시장 입지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장점유율 등의 지표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재고 떨이’ 판매가 이뤄지는 등 프리미엄 전략 자체도 흔들리고 있다.
실적 측면에서도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하림산업은 ‘더 미식’ 브랜드 론칭 첫해인 2021년 216억원이었던 연간 매출액 규모가 지난해 802억원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수익성인데, 적자가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규모 또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다. 2021년 588억원이었던 영업손실이 2022년 867억원, 2023년 1,095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1,276억원까지 증가했다. 특히 매출원가가 매출액을 크게 뛰어넘는 현상이 지속되며 매출총손실이 지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물가 상승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라면 가격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하림그룹은 물가 상승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 하림그룹의 ‘더 미식’ 라면은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라면 2,000원’에 해당하는 것을 넘어 가장 높은 가격대의 라면으로 꼽힌다. 물론 프리미엄 전략으로 인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업계 전반의 가격 상승을 유발시켰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지부진한 ‘더 미식’ 브랜드를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사업 전개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물가 안정을 강력 촉구한 시기에, 고가의 라면 제품 마케팅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만큼, 프리미엄 전략이 효과를 내기 힘든 여건이기도 하다. 애초에 제품 특성에 맞지 않는 전략에 ‘올인’한 것이 커다란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처럼 가뜩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온 사업이 ‘사면초가’에 내몰리면서 이를 주도해온 김홍국 회장 등 오너일가는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