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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다산북스] |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2007년 출간됐던 전경린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의 집'이 18년 만에 '자기만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소설 속 문구가 SNS를 통해 여전히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삶을 꿰뚫어내는 작가 전경린의 문장은 감각적이고 오래 남는다.
소설의 화자는 대학생 딸 호은이다. 호은은 돈 버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는 운동권 출신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싫어 집을 떠난 어머니의 이혼으로 한동안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다시 엄마의 집으로 돌아오게 됐고 현재는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는 중년의 남자와 연애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호은의 앞에 아빠가 나타난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아빠는 재혼해 생긴 딸 승지를 엄마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호은은 중학생인 승지와 승지가 키우는 토끼 '제비꽃'을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당황한 엄마는 다음날 승지를 다시 아빠에게 데려다주러 길을 나서지만 결국 아빠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쩔 수 없이 한 집에 살게 된 엄마 윤선과 호은, 승지, 그리고 토끼 제비꽃은 점차 가족이 되어 간다.
이혼한 전 남편이 키우던 딸 승지를 돌보게 된 기묘한 상황, 그렇지만 승지를 품으며 모성을 느끼는 윤선을 보면서 독자들은 가족의 경계와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족이 된 부부도 이혼하면 더 이상 가족이 아니게 된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 사이도 인연을 끊고 산다면 가족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윤선과 승지는 가족이 되어 간다. 실제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기와 관계를 맺는 타자에 대한 책임감이 가족의 기반 정신 또는 기반 감정인 것 같다. 책임감이 있으면 결혼도 가능하고 반려동물, 반려식물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스 엔'이라고 불리는 호은의 엄마 윤선은 엄마의 정체성을 획득하고도 결혼하기 전의 처녀 의식을 간직하고 사는 새로운 엄마들의 모습을 대표한다. 거듭되는 남편의 실패로 인해 표류하는 삶에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만의 집을 일궈 정착했고 딸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넘치면서도 자신의 연애에는 더없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윤선은 오히려 요즘 시대에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작가는 "한 여자가 집을 갖는다는 것은, 경제적이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자신이 전적으로 통제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엄마를 둔 딸 호은의 삶은 어떨까. 호은의 마음은 부모의 이혼, 엄마의 연애, 성 정체성의 혼란, 연인 K와의 이별, 아빠의 친딸일지도 모르는 동생 승지에 대한 생각 등으로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소설 속에서 호은은 "어른들은 정말 너무했다. 엄마의 애인인 아저씨에다, 엄마의 전 남편인 아빠, 내 양육권을 포기한 아빠가 키우는 아빠의 새로운 딸 승지... 도대체 관계 정립이 안돼 어색하게 방황하는 내 정신세계는 안중에도 없이 제멋대로들이다"라고 심경을 고백한다.
또 호은은 이따위 세상에 자신을 왜 태어나게 했냐는 듯 엄마에게 "엄마, 사람들은 애를 왜 낳는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호은은 부유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자기만의 집을 조금씩 그려나간다.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라고 당차게 다짐한다.
이 소설은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여성들의 의지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떻게 자라게 될지 모르고 태어난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면서 각자의 마음속에 자기만의 집을 짓는 것이 인생 아닐까.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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