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로 앞서나가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의해 ‘자사주’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도 주주가치 제고 등을 강조해온 이재명 후보가 ‘자사주 소각 의무 제도화’를 공약으로 내걸면서다. 이에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주가가 치솟는 등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한편으론, 이러한 흐름 속에 잽싸게 자사주를 오너일가에게 넘긴 KPX그룹의 행보가 눈길을 끌며 향후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 이재명 공약 발표 앞두고 자사주 처분
지난달 21일, 당시 당내 경선을 치르고 있던 이재명 후보는 SNS와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정책간담회를 통해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날 그는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며 여러 공약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이목이 집중된 건 자사주에 대한 언급이다. 이재명 후보는 “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자사주는 기업이 보유 중인 자기주식을 의미하는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고 배당에서도 제외된다. 자사주 매입은 유통주식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통상 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다만, 실질적으로 주주가치 제고가 완료되기 위해선 자사주 소각이 이뤄져야 한다. 기업가치엔 변화가 없는 가운데, 발행주식수가 줄어들어 주당 가치가 실제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 및 보유도 유통주식수 감소를 통해 주가를 상승시키는 등의 주주가치 제고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실제 주당 가치를 변화시키는 건 아니다.
이에 그동안 주식시장에선 주주가치 제고 차원의 자사주 소각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현행법상 자사주 소각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사주를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각종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가 ‘자사주 소각 의무 제도화’를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주식시장 전반엔 거센 파장이 일고 있다. 자사주 비중이 높았던 기업들의 주가가 치솟는가 하면, 자사주 소각 결정을 내린 기업이 평소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론,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등의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후보의 공약 발표에 앞서 재빠르게 자사주를 오너일가에게 넘긴 KPX그룹의 행보에도 이목이 쏠린다.
KPX그룹의 지주사이자 코스피 상장사인 KPX홀딩스는 지난달 15일 1만7,600주의 자사주를 오너일가 2세 양준영 회장에게 처분했다. 거래는 시간외매매로 이뤄졌고, 처분단가는 주당 5만6,300원이었다. 총 9억9,000만원 규모이며, 지분 기준으로는 0.42%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다. 같은 날 그룹 계열사이자 코스피 상장사인 KPX케미칼도 지분 1.75%에 해당하는 8만4,779주의 자사주를 KPX홀딩스에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처분단가는 주당 4만3,400원, 총 거래금액은 36억원이었다.
KPX홀딩스가 밝힌 자사주 처분 이유는 기업 운영자금 및 투자재원 확보다. KPX케미칼은 회사 경영상 필요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고 자사주 처분에 따른 주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KPX홀딩스에 자사주를 처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자사주 처분은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우선, KPX홀딩스가 마지막으로 자사주 취득을 실시한 건 2021년이다. 당시 5월부터 11월까지 신탁계약에 의한 자사주 취득을 실시했고, 실질적인 취득은 5월 10일부터 6월 2일까지 이뤄졌다. 이때 15만4,687주(지분 기준 3.6%)를 주당 평균 7만6,208원에 취득했다. 이번에 양준영 회장에게 처분한 금약보다 35.36% 높다.
따라서 주가가 오른 시기에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뒤 주가가 내린 시기에 오너일가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더욱이 양준영 회장의 부친이자 KPX그룹 창업주인 양규모 KPX홀딩스 이사회 의장은 2021년 KPX홀딩스의 자사주 취득이 한창이던 때 지분 2.46%에 해당하는 10만4,000주의 KPX홀딩스 주식을 장내매도한 바 있다. 전체는 아니지만, 양규모 의장은 KPX홀딩스가 자사주를 취득하던 시기에 주식을 팔고 이후 KPX홀딩스는 자사주를 그의 아들인 양준영 회장에게 취득 당시보다 더 낮은 가격에 처분한 구조인 셈이다.
무엇보다 KPX홀딩스의 자사주를 넘겨받으면서 의결권이 없던 주식을 활용해 개인적인 지배력을 소폭 강화하게 된 양준영 회장은 해당 결정을 내린 KPX홀딩스 이사회 구성원 중 하나다. KPX홀딩스 이사회 의장은 그의 부친인 양규모 의장이 맡고 있다. 이사회 구정원 총 4명 중 2명이 이해당사자인 오너일가고, 3명이 사내이사다.
KPX그룹의 이 같은 자사주 매각은 이재명 후보가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을 공식 발표하기 일주일 전에 신속하게 단행됐다. 3월 중순 공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는 자사주 처분 계획이 없다고 명시했는데, 불과 한 달여 뒤 이뤄진 결정 및 실행이었다. KPX그룹의 이러한 행보는 이재명 후보가 주식시장 선진화를 강조하고 있는 배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편으론 이재명 후보가 당선돼 새 정부가 출범할 경우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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