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학폭은 단순한 아이들 간의 다툼과 화해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상처와 오해가 얽혀 있는 복잡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고가 늘어날수록 부모는 걱정과 분노 사이를 오가고 아이들은 그 가운데서 관계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마음을 닫게 된다.
지난 26일 서울학부모지원센터의 맞춤형 배움과정에서는 학교폭력을 단지 없애야 할 문제로 보지 않고 함께 풀어야 할 관계의 과제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갈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강의의 첫머리에서 양미정 교사는 자신을 학교폭력 전문가로 소개하며 동시에 그 표현이 주는 부담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교사든 부모든 학교폭력이라는 말 앞에서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고 그 안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양 교사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 용어 자체가 때로는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이는 단순히 용어를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라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인식과 접근 방식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강의에 따르면 학교는 단지 수업을 듣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강사는 "공동체란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며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이 바로 그런 불편한 사람들 속에서 관계를 맺고, 갈등을 조율하며, 사회를 배워가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렇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며 그 갈등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아이들이 갈등을 겪는 것은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폭력이 발생하면 신고가 이뤄지고 그 순간부터 관계는 분리된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교실도 화장실도 함께 쓰지 못하고 보호자들은 죄송하다거나 억울하다는 말 앞에서 서로 벽을 쌓는다. 더 나아가 신고로 인해 아이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건에 가·피해자인 아이들뿐 아니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강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부분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정서적 연결이었다. 부모와의 애착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아이는 친구 관계에서도 불안함을 느끼고 갈등을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부모를 안식처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 상황이 생겨도 부모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응보적 정의는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는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 그 피해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이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 중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는 관계조정 전문가가 참여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말하고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말을 되짚어 말하는 연습을 통해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며 그 과정 중에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 회복이 반드시 친해지자는 의미는 아니다. 회복적 정의는 단순한 화해를 강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갈등 속에서도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양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좌절에 너무 취약하며 그 이유는 실패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놀이터의 위험 요소는 모두 제거됐고 점심시간에도 교사의 감독 아래에서만 활동해야 하며 어떤 도전도 늘 안전을 전제로 해야 한다. 강사는 이를 '안티 프레자일'의 부재라고 말했다. 안티 프레자일은 고통과 실패를 겪으면서 더 강해지는 특성을 뜻한다. 부모가 너무 많이 개입하고 아이를 너무 안전하게만 키우려 할 때 정작 아이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쓰러지는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실수했을 때나 갈등에 부딪혔을 때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뒤에서 조용히 지지해 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 지지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
강의는 가족 독서모임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책을 함께 읽으며 그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발견하고 일상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을 한 장만 읽더라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진짜 독서"라는 강사의 말은 모든 부모에게 따뜻한 조언으로 남았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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