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에도 반복된 죽음… 친밀관계폭력, 가해자 차단 입법 요구

시사위크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여성·시민단체들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혼인·가족관계 밖으로 법의 보호 범위를 넓히고, 고립·감시·경제적 통제도 폭력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사진=김두완 기자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여성·시민단체들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혼인·가족관계 밖으로 법의 보호 범위를 넓히고, 고립·감시·경제적 통제도 폭력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사진=김두완 기자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위험을 알리고 보호를 요청했지만 여성과 가족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접근금지 조치를 내려도 가해자의 범행은 이어졌다. 반복되는 친밀관계폭력에 대응하려면 피해자에게 신고 수단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가해자를 분리하고 감시할 법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혼인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보호 범위를 넓히고 고립과 감시·경제적 통제도 폭력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스마트워치, 접근 차단 수단 아냐… 피해자 보호 강화 필요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시민단체는 19일 오전 10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밀관계폭력 처벌법·방지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기존 가정폭력 관련 법률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가해자 분리·감시와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보호를 요청한 이후에도 범행을 막지 못한 문제가 제기됐다. 지난 3월 남양주부터 이달 송파·제주·전주·아산에 이르기까지 위험을 알리고 보호를 요청했던 여성과 가족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기자회견에서 제시된 수치에 따르면, 스마트워치를 지급 받은 피해자가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사건 27건 가운데 17건은 접근금지 등 법원의 보호조치가 내려진 상태에서 발생했다. 보호조치가 내려졌는지를 넘어 가해자의 접근과 범행을 실제로 차단했는지 따져야 하는 대목이다.

스마트워치는 피해자가 위험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가해자의 접근 자체를 막는 수단은 아니다. 접근금지 역시 명령을 내린 뒤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즉시 제지할 수 있어야 피해자의 안전으로 이어진다. 이번 입법 요구가 피해자 보호와 함께 가해자 분리·감시에 무게를 둔 이유다.

이에 긴급임시조치부터 피해자보호명령까지 각 단계에서 가해자를 분리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피해자에게 버티라고 할 것이 아니라, 범행 이전에 가해자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경찰이 법원에 직접 임시조치를 청구하고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한 가해자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제시됐다. 가정폭력·교제폭력 가해자에 대한 모니터링과 전자장치 부착, 접근금지 범위와 기간 확대도 요구 사항에 포함됐다.

보호 대상 확대도 쟁점으로 다뤄졌다. 송파 사건에서 피해자의 어머니가 희생된 것처럼 가해자의 폭력이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접근금지 대상을 피해자의 가족과 동거인까지 넓히고 경찰의 신변보호조치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또 반려동물을 이용한 위협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보호 대상에 반려동물을 포함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전담재판부를 도입해 피해자 보호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이주희 의원과 여성·시민단체들은 “법이 있어야 무엇이 폭력인지 분명해지고 경찰이 개입할 근거와 의무가 생기며 예산과 인력도 확보된다”며 “사과와 대책 발표만 되풀이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 뉴시스
이주희 의원과 여성·시민단체들은 “법이 있어야 무엇이 폭력인지 분명해지고 경찰이 개입할 근거와 의무가 생기며 예산과 인력도 확보된다”며 “사과와 대책 발표만 되풀이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 뉴시스

◇ 폭력의 범위 넓히고 처벌 공백 없애야… 국가 개입 근거 마련 필요

법이 다룰 폭력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고립과 감시, 경제적 통제 등 ‘강압적 통제’를 폭력으로 규정해 상대방의 인간관계와 일상생활,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행위에도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반복되는 통제 행위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법의 적용 범위와 목적을 바꾸는 방안도 제시됐다.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이 30년 가까이 ‘가정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다. 혼인·가족관계 밖의 친밀관계까지 포괄하고, 법의 목적을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는 혼인 여부보다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기준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와 연결된다. 교제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도 가해자를 분리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따르면, 이 의원은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을 친밀관계폭력 처벌법·방지법으로 전면 개정하는 초안을 마련했다. 현장 의견을 반영해 신속히 발의할 계획이다.

또한 처벌과 사건 처리 절차의 공백을 없애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반의사불벌 조항을 배제하고 피의자가 사망하더라도 수사를 이어가 결과를 피해자와 유족에게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건 기록을 축적·분석해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이번 입법 요구는 가해자 분리·감시, 친밀관계 전반의 폭력 규율, 피해자와 주변인 보호, 처벌·사건 처리 공백 해소 등 네 방향으로 제시됐다. 신고 이후 보호조치를 내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한편, 폭력의 범위와 국가의 개입 근거를 법에 구체적으로 담자는 것이다.

이 의원과 단체들은 “법이 있어야 무엇이 폭력인지 분명해지고 경찰이 개입할 근거와 의무가 생기며 예산과 인력도 확보된다”며 “사과와 대책 발표만 되풀이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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