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국내 5대 시중은행장의 연말 인사를 앞두고 내부통제 관리 능력이 주요 평가 변수로 떠올랐다. 은행별로 개인정보 유출 규모와 인사 관행은 다르지만, 인공지능(AI) 해킹 사고와 반복되는 금융사고가 맞물리면서 최고경영자(CEO)의 관리 책임을 둘러싼 압박이 커지고 있다. 실적뿐 아니라 사고 예방과 대응 체계가 연임 여부를 가를 변수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16일 정치권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9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채택 사유는 ‘금융권 해킹 사고 문제 점검’이다. 국감에서는 은행별 해킹 사고 대응과 경영진의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둘러싼 질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 유출 규모는 신한이 최대…은행별 대응 책임 쟁점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서 신한은행의 유출 규모는 2만5727건으로 5대 은행 가운데 가장 컸다. KB국민은행은 153건, 하나은행은 89건의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은 AI 공격 시도가 있었지만 고객정보 유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유출 건수는 은행별 사고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지만, 그 자체만으로 관리 책임의 크기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고 원인과 공격 경로, 사전 예방 조치, 사고 인지 이후 대응을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감에서도 사고 경위와 보안 관리 체계, 경영진의 책임 범위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사고 이후 정상혁 행장의 책임론까지 불거졌다. 2023년 취임한 정 행장은 1년 임기 연임을 거쳐 재임 중이며, 사고 전 거론됐던 3연임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 행장이 1분기에 받은 성과급의 산정 사유에 ‘지속가능한 신뢰 확립을 위한 내부통제’가 포함됐다는 점도 책임론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내부통제의 최종 책임자인 은행장의 법적 책임을 묻고, 미지급 성과급 환수와 손해배상 등을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은행별 인사 관행 달라…지주 교체·임기 변수 주목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연말 인사의 공통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은행별 인사 구조와 임기 관행은 서로 다르다.
KB국민은행은 지주 회장 교체와 계열사 인사가 맞물려 있다. KB금융그룹에서는 이재근 차기 회장 후보자가 오는 11월 2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연말까지 12개 계열사 가운데 11곳의 대표 임기가 종료되면서 지주 회장 교체와 계열사 인사가 맞물리게 됐다.
통합 이후 KB국민은행장 인사는 최초 2년 임기 이후 1년 이상 연임하는 사례가 많았다. 다만 이번에는 지주 회장 교체와 계열사 대표 인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기존 관행만으로 은행장 인선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나은행은 함영주 전 행장이 연임한 이후 은행장 2년 단임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호성 행장의 연임 여부 역시 이러한 인사 관행과 경영 성과 등을 함께 살펴볼 사안이다.
우리은행은 금융사기 예방 체계 강화에 나섰다. 최근 서울 중구 본점에서 열린 ‘금융사기예방 기자간담회’에서 사전 대응체계 강화와 차세대 예방체계 구축 계획을 밝혔다. 정진완 행장은 금융사기 예방을 최우선 경영과제로 제시하며 피해 발생 전 위험을 조기에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해 말 임기가 만료되는 10개 자회사 대표의 임기를 1년 연장했다. 그룹은 당시 전략의 연속성과 조직 안정성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초 취임한 정 행장도 ‘2+1년’ 임기에 따라 내년 말까지 재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NH농협은행은 역대 행장들이 대체로 단임에 그쳤다. 이대훈 전 행장은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했지만 농협중앙회장 교체 여파로 사임한 사례가 있다. 농협은행장 인선에서는 경영 성과뿐 아니라 농협 특유의 지배구조와 인사 관행도 변수로 꼽힌다.
◇ 금융사고 203건에도 제재 전무…책무구조도 실효성 논란
은행장 책임론은 개별 해킹 사고를 넘어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의 실효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올해 7월까지 금융회사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203건으로 집계됐다. 사고 금액은 6237억원이다. 이 가운데 은행권 사고는 177건, 5009억원으로 전체 사고 건수의 87.2%, 사고 금액의 80.3%를 차지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별로 내부통제 등 관리 책임을 사전에 배분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제도다. 금감원 운영지침은 대규모 고객 피해나 건전성에 대한 중대한 저해, 관리의무 미이행, 임원의 지시·묵인·방치, 조직적·장기적·반복적 위법행위 등이 발생하면 책임 규명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기간 이 같은 절차에 따라 처리된 사례는 없었으며, 내부통제 등 관리조치 의무 위반을 이유로 제재한 사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병덕 의원은 금융사고가 200건 넘게 발생했는데도 책임을 물은 사례가 없다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I가 금융 판단과 사이버 공격 양쪽에 활용되는 만큼 임원 책임을 명확히 하는 제도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권 지배구조 전문가는 “연말 은행장 인선에서는 경영 실적과 함께 사고 예방 체계, 위험 인지·대응 능력, 재발 방지 조치가 주요 평가 변수”라면서 “AI 해킹 사고에 대한 국회의 책임 추궁과 책무구조도의 실효성 논란이 맞물리면서 은행장들의 내부통제 관리 능력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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