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수, 퐁피두·라 스칼라 대신 ‘부산 예술’에 투자···문화정책 새 길 냈다

포인트경제
전재수 부산시장이 14일 오전 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퐁피두센터 부산분관 건립 중단과 라 스칼라 개막작 초청 제외 결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윤선영) ⓒ포인트경제

[포인트경제] 지난달 30일 문화 타운홀미팅에서 “오늘 들은 말씀은 부산의 문화정책이 된다”고 약속한 전재수 부산시장이 그 첫 후속 조치로 전임 시정의 대표 문화사업인 퐁피두센터 부산분관 건립을 멈춰 세웠다. 라 스칼라 극장의 부산오페라하우스 개막작 초청도 접은 대신, 시립미술관 역량 강화와 북항 전시공간 조성, 오페라 자체 제작 시스템 구축으로 문화정책의 무게중심을 지역으로 옮겼다.

전 시장은 14일 오전 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두 현안에 대한 시의 최종 입장을 직접 설명했다. 그는 먼저 재검토를 시작하며 내세운 원칙을 되짚었다. 전임 시장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뒤집지 않되 이미 시작된 일이라고 해서 떠밀리듯 받아들이지도 않겠다는 것이었다. 전 시장은 “시민과 지역 문화예술인,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논의한 뒤 그 뜻에 따라 올바른 답을 찾겠다고 약속드렸다”며 이번 결론이 그 약속의 결과라고 말했다. 판단 잣대로는 시민 체감도와 공공성, 재정 지속가능성, 행정의 책임성 네 가지를 들었다.

◆ 세계 미술관보다 지역 전시 역량

퐁피두 사업 검토는 정책점검단이 맡았다. 점검단은 시의회·시민단체·전문기관이 추천한 18명으로 꾸렸고, 시가 추천한 위원은 한 명도 없었다. 시의원 2명이 공동단장을 맡은 점검단은 8월 세 차례 회의와 이기대 현장 확인을 거쳐 무기명 의견서를 냈다. 찬반 견해차로 단일 권고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다수는 사업의 주요 조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쪽이었다.

9월 18일 문화협력위원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조건부 찬성 위원들마저 환경 훼손 우려를 들어 이기대 입지 재검토를 요청했다. 타운홀미팅에서는 관광·경제 효과와 도시 브랜드 상승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외국 브랜드를 들여오기보다 지역 정체성을 살리고 예술인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기됐다.

전 시장은 중단 사유를 네 갈래로 짚었다. 그는 이기대가 약 8천만년의 지질 역사를 간직한 국가지질공원이자 시민의 휴식 공간이라며 “한번 훼손되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계약상 부산이 보장받을 작품과 권리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들었다. 용역이 제시한 건립비 시비 약 1100억원과 연간 운영비 약 125억원 역시 경제성 분석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역 예술계와의 공감대와 기존 미술관과의 역할 분담 계획도 미흡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안도 함께 내놨다. 전 시장은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의 전시·연구·소장 역량을 끌어올리고 해외 유수 미술관과의 교류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북항에는 지역 예술인들의 숙원인 복합문화전시공간을 전액 국비로 짓는다. 연면적 약 5000㎡에 전시공간 약 3000㎡ 규모로, 시는 2030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해양수산부·부산항만공사(BPA)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 시장은 이곳을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시민들이 북항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기업 기부와 협찬 당초 계획 미달

라 스칼라 공연은 운영자문단 회의 4차례와 8월 24일 시민토론회, 시민 1000명 여론조사를 거쳤다. 여론조사 찬성은 75%였지만, ‘비용을 줄여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38.1%)이 ‘투자가 크더라도 추진해야 한다’(36.9%)를 앞섰다. 문화협력위원회에서는 재정 부담 최소화와 지역 예술인 참여 확대를 조건으로 한 찬성이 64%로 우세했다. 타운홀미팅에서도 도시 브랜드 향상을 기대하는 찬성과 지역 예술인과의 상생을 요구하는 반대가 함께 나왔다.

전 시장은 걸림돌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재원이다. 시는 사업비 100억원 가운데 40~50%를 기업 기부·협찬으로 채울 계획이었지만, 예산 편성을 본격화해야 할 시점까지 목표에 닿지 못했다. 전 시장은 “재원 조달이 계속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연을 확정하는 것은 책임 있는 행정의 자세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예술인의 참여·교육과 인재 양성으로 이어질 협력 방안이 현 계획에 충분히 담기지 않은 점도 문제로 들었다. 개관 준비 기간도 변수였다. 운영자문단 회의 등에서는 공사 안전과 촉박한 개관 일정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오페라극장 가운데 전국 최대 규모로, 국내에 운영 전례가 없다. 전 시장은 공연장과 운영체계의 완성도부터 갖춘 뒤 첫 무대를 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오페라하우스는 올해 말 준공 뒤 2027년 상반기 시설 안전성·성능 점검과 하반기 시범공연을 거쳐 2028년 정식 개관한다. 개관 페스티벌은 지역 예술인과 함께 부산의 역사와 삶,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 꾸린다. 전 시장은 기획부터 제작·연습·공연까지 이어지는 제작시스템을 갖춰 예술인과 무대기술 인력이 전문성을 쌓도록 돕겠다고 전했다. 시는 자체 제작과 해외 작품 초청, 국제교류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제작극장’을 키운 뒤, 운영이 본궤도에 오르면 라 스칼라를 포함한 세계적 오페라 초청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전 시장은 브리핑을 마무리하며 “의견은 달랐지만 좋은 문화를 가까이에서 누리고 부산의 예술인들이 부산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예술인들께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것이 기회가 되고, 시민들께는 부산에 사는 것이 문화적 자부심이 되도록 만들어가겠다”며 “시민의 일상에 ‘문화가 기본’이 되는 부산을 함께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개관 연기 배경과 재원 확약 한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조유장 부산시 문화국장이 답변에 나섰다. 북항 전시공간의 위치를 묻는 질에 조 국장은 북항 1단계 재개발 협약에 따라 BPA가 지어 시에 기부채납하는 구조이며, 부산역 뒤편 보행데크가 내려오는 길목의 문화공원 입구에 들어선다고 답했다. 개막작 변경을 정명훈 클래식부산 예술감독과 협의했느냐는 물음에는 향후 세계적 공연 초청을 정 감독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이야기를 담은 창작 오페라와 국립오페라단 공동 기획은 그대로 진행되며, 해외 초청 몫이던 라 스칼라만 빠진다는 설명이다.

개막 무대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조 국장은 당초 시와 기부·협찬이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였고, 시 몫도 공연진 체류비처럼 부산에서 다시 쓰이는 비용이 중심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개막작을 먼저 확정했다가 협찬이 무산되면 공연을 내려야 하는 위험이 크다며, 공연장이 안착한 뒤 초청해야 협찬을 이끌어내기도 수월하다고 답했다. 그동안 투입된 비용을 묻는 질의에는 라 스칼라 초청에 쓴 돈은 없고 퐁피두 분관 법률 검토비 약 2500만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연말 준공 뒤 정식 개관까지 1년 가까운 공백을 어떻게 채울지 묻는 질문도 나왔다. 조 국장은 전쟁 장기화로 대리석 등 내장재 수급이 늦어져 주말에도 공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준공은 12월 30일로 맞춘다고 답했다. 당초 2027년 9월로 잡았던 개관을 2028년으로 미루고, 그 기간에 설비 보강과 하자 보수, 발레·클래식 시범공연을 거쳐 완성도를 다지겠다는 설명이다.

퐁피두와 연계된 이기대 예술공원의 향방을 묻자 조 국장은 목조 전망대만 기존대로 추진하고 나머지는 소관 부서인 푸른도시국이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개관 페스티벌은 당초 해외 초청과 창작 오페라, 지역 역량 결집 공연으로 5~6개월간 열 계획이었으나 해외 부문을 다시 짠다. 창작 오페라는 올해 11~12월 선보임 공연을 거쳐 개관 무대에 오른다. 시는 2027년 상반기 중 페스티벌 전체 구성을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기부·협찬 확보 수준을 묻자 조 국장은 시의회 예산 심의를 받으려면 구두 표명이 아닌 서류상 확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역 기업들이 세운 클래식 문화재단이 10억원을 확약했지만, 대기업 접촉과 예술감독 개인 네트워크를 통한 유치는 확약에 이르지 못했다. 법령상 시가 적극적으로 기부를 모집할 수 없는 한계도 있었다. 다만 그는 콘서트홀 ‘월드클래스 시즌’처럼 연중 예산을 편성하는 해외 초청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으로 시는 국가지질공원 이기대의 해안을 지키고, 1000억원대 건립비와 해마다 100억원이 넘는 운영비라는 장기 부담을 덜었다. 북항 국비 전시공간과 창작 오페라 제작 시스템이 계획대로 자리 잡으면 지역 예술인의 무대도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북항 공간은 해수부·BPA와의 협의를 매듭지어야 하고, 늦춰진 오페라하우스 개관은 시범운영으로 완성도를 증명해야 한다. 세계적 미술관과 공연을 기대했던 시민과 관광업계의 아쉬움을 채울 해외 교류 성과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문화기본도시’를 향한 이번 방향 전환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Copyright ⓒ 포인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전재수, 퐁피두·라 스칼라 대신 ‘부산 예술’에 투자···문화정책 새 길 냈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