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부산=이영실 기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수많은 영화를 보여줬고, 아들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영화적 언어를 완성해갔다. 이제 부자는 서로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주고받는 창작 동료가 됐다. ‘그래비티’를 함께 써 내려간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호나스 쿠아론 감독이 부산을 찾았다.
8일 부산시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알폰소 쿠아론·호나스 쿠아론 감독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받은 영화적 영향부터 ‘그래비티’ 공동 작업 과정, 각자가 추구하는 영화에 관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로마’ 등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비티’와 ‘로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 거머쥔 그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그래비티’ 아이맥스 상영 후 스페셜 토크와 마스터 클래스까지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며 관객들과 만났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부산이 정말 좋다. 이렇게 부산에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쁘다”며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호나스 쿠아론 감독은 신작 ‘가바초 챔피언’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에 초청됐다. ‘그래비티’ 공동 각본에 참여한 뒤 ‘디시에르토’ ‘내 친구 추파카브라’ 등을 연출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초청해 줘서 감사하다”며 “한국영화의 엄청난 팬이다. 한국 관객, 부산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감독인 아버지 곁에서 자란 호나스 쿠아론 감독에게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삶의 일부였다.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영화를 보고 촬영 현장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영화인의 꿈을 키웠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아들이 세트장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며 “주변 친구들도 모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감독이 되겠다고 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감독의 길에 들어선 아들은 어느덧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구축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호나스는 나와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영화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관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다. 수사적인 것을 덜어내고 주제에 집중하면서 시각적으로 스토리텔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내 영화 언어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호나스 쿠아론 감독에게도 아버지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만든 큰 자양분이었다. 그는 “영화는 항상 내 삶에 있었다”며 “아버지가 영화를 너무나 열정적으로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흡수됐다”고 돌아봤다. 이어 “어릴 때부터 고전영화와 스릴러, 논스톱 액션영화를 보면서 자랐다”며 “그 영화들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각본을 쓸 수 있었고 그것이 ‘그래비티’로 이어졌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모든 것이 자양분이 됐다. 나의 원칙을 만든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처음부터 아들의 꿈을 응원한 것은 아니었다. 호나스 쿠아론 감독은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영화를 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래서 영문학과 시각예술을 공부했다. 그런데도 사진을 많이 찍었고 결국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내러티브와 이미지, 사운드, 음악 등 많은 예술적 영감이 한데 모여 영화로 향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아들이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랐다고 했다. 그는 “문화적으로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넓어졌으면 했다”며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영화가 레퍼런스가 돼버릴 위험이 있다. 삶을 봐야 하는데 삶에 관한 영화를 레퍼런스처럼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독으로 살아가며 자신이 먼저 겪은 창작의 고통도 이유였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데는 실패와 좌절, 꿈이 짓밟히는 느낌도 함께 간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아버지로서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호나스는 끝났다. 이쪽에 발을 들인 이상 끝났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결국 영화의 길을 택한 아들과 아버지는 ‘그래비티’의 각본을 함께 쓰며 부자를 넘어 창작 동료로도 호흡을 맞췄다. 시작은 호나스 쿠아론 감독이 쓴 한 편의 각본이었다. 호나스 쿠아론 감독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스릴러였는데 아버지가 각본을 읽고 콘셉트가 좋다고 했다”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우주로 가면 어떨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유기적으로 모든 것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굉장히 빠르게 이뤄졌다”며 “배움이 많은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작업할 때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역시 공동 작업을 할 때만큼은 부자 관계를 내려놨다고 했다. 그는 “함께 작업할 때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차치하고 연출자와 작가가 협업하는 것”이라며 “나는 정말 좋았다. 아들은 좋아했을지 모르겠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점심을 먹을 때는 다시 부자지간이 됐는데, 그 시간은 호나스에게 안 좋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호나스 쿠아론 감독은 신작 ‘가바초 챔피언’을 통해 이민자의 삶을 들여다본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멕시코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 청년 리보리오(후안 다니엘 가르시아 트레비뇨 분)가 혹독한 노동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호나스 쿠아론 감독은 “이민을 단순히 콘셉트나 숫자로 보여주는 것보다 그 안에 있는 인간, 이민자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고난과 역경이 있고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잘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과 꿈, 사랑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붙인 낙인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공동체와 함께 꿈을 이뤄가는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도 아들의 신작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모든 영화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게 된다”며 “지금 이민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고 정치적으로도 많은 쟁점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연약함이나 비극을 주로 떠올리지만 그 안에는 즐거움도 있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상상하고 꿈꾸고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가바초 챔피언’이 그런 것들을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영화를 향한 호나스 쿠아론 감독의 애정도 남달랐다. 특히 사회적인 문제를 장르 안에 녹여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사회적인 주제를 장르라는 장치를 통해 이야기하면서 유머까지 녹여내는 것에 큰 존경을 느낀다”며 ‘괴물’과 ‘기생충’ ‘호프’ ‘어쩔수가없다’ 등을 언급했다. 이어 “장르를 통해 관객과 연결되면서도 주제의식이 확고하고 유머가 있다는 점에 크게 공감한다”고 했다. 또 “둘째 아들이 한국영화를 좋아하는데 특히 ‘부산행’을 좋아한다”며 “오늘 부산으로 오는 열차를 타면서 굉장히 흥분했다”고 웃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변화하는 영화의 미래와 새로운 세대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고 새로운 세대가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경험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나는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극장에서 보는 경험과 다양한 플랫폼이 공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며 “그들이 이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예술에 적용할지, 새로운 세대의 예술을 보고 싶고 기대하고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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