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장폐지의 무게… 더 신중하고 면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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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상장사에게 있어 상장폐지는 그 무엇보다 큰 변화다. 상장사로서 누려온 여러 이점은 물론 책임과 의무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상장폐지에 나서기도 하지만 불미스런 사안에 따른 ‘사형선고’ 성격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만큼 관련 규정이 상세하게 마련돼있고, 절차 또한 복잡하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칼바람’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적극 추진된 ‘자본시장 체질개선’의 일환으로 금융당국이 ‘부실 상장사’ 퇴출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지난해 상장폐지 대상 시가총액 기준 상향 방침을 세웠던 금융당국은 올해 2월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을 내놓으며 추진력을 높였다. 이는 상장폐지 대상 시가총액 기준 상향을 조기화하고, 주가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도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 등을 골자로 했다.

주식시장의 신뢰를 저해하고 불공정거래에 악용돼 투자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부실 상장사를 더욱 엄정하고 신속하게 퇴출시켜 기존의 ‘다산소사(多産少死)’ 시장구조를 ‘다산다사(多産多死)’로 한층 건강하게 만든다는 게 금융당국의 취지였다.

이 같은 정책 추진의 여파는 곧장 나타났다. 상향된 시가총액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상장폐지되는 사례가 6월 말 처음 등장했고, 하반기 들어 보다 강화된 조치가 시행되면서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폐지 결정이 속출했다. 아울러 상장폐지를 모면하기 위한 움직임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금융당국의 부실 상장사 퇴출 강화 조치가 중대 변곡점을 맞았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강화된 조치에 따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상장폐지가 결정된 상장사들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법원은 부실 상장사 퇴출 강화 조치에 절차적 위법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상장폐지 결정에 대해서만 효력 정지를 인정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지 않은 상장사들에 대해서도 일제히 상장폐지 관련 절차를 보류하기로 했다. 유사 분쟁 확산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다. 이와 함께 향후 가처분 이의신청 등을 통해 적극 소명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법원의 제동에 앞서 금융당국은 이미 한 차례 ‘숨 고르기’에 나선 바 있다. 지난달 초 관계기관 합동 시장상황점검회의를 통해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대상 시가총액 기준 추가 상향 시점을 6개월 뒤로 미루고, 코넥스 이전 상장 길을 열어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는 이번 가처분 인용 결정 취지와 맞닿아있는 중소기업계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어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서 부실 상장사 퇴출 강화 조치는 ‘일시정지’ 상태에 놓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취해졌던 금융당국의 조치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됐다. 거래정지 상태에 놓여있거나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그리고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우려에 휩싸인 상당수 상장사들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무척 커진 상황이다. 이미 상장폐지된 상장사 및 주주들의 형평성 문제 등 후속 논란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상장폐지 절차 보류 조치가 내려진 이후 관리종목으로 지정돼있던 상장사들의 주가가 크게 출렁이고 있기도 하다.

지난 과정을 되짚어보면, 금융당국이 상장폐지 대상 시가총액 기준 단계적 상향 등의 방안을 발표한 건 지난해 1월, 실제 시행에 돌입한 건 올해 초부터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여 뒤 시가총액 기준 단계적 상향 시점을 조기화하고, 동전주도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는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됐다. 이어 두 달여 뒤엔 다시 시가총액 기준 단계적 상향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한 달여 뒤엔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제동이 걸렸다. 상장폐지가 지니는 무게를 고려했을 때, 정책 수립 및 실행이 보다 신중하고 면밀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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