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포르쉐를 좋아하려면 포르쉐가 꼭 있어야 할까. 적어도 지난 주말 서울 문화비축기지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 3~4일 이곳에서 열린 '2026 포르쉐 바이브 서울(Porsche Vibe Seoul)'에는 이틀간 1만5000여명이 찾았다. 포르쉐코리아가 국내에서 처음 연 대규모 팬 페스티벌이다. 돈을 내고 들어가는 행사였지만 얼리버드 티켓은 판매 시작 3분 만에 동났고 일반 티켓까지 모두 팔렸다.
자동차 회사 행사라고 해서 차만 늘어놓지도 않았다. 독일 포르쉐 뮤지엄에서 가져온 헤리티지 모델부터 911 전 세대, 오너 컬렉션까지 70여대가 자리를 채웠고 그 사이에서는 라이브 공연과 아트, e스포츠가 펼쳐졌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물론 차도 실컷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행사의 재미는 '어떤 차가 전시됐나'보다 '누가 왜 이곳에 왔나'에 있었다.
신차를 계약하러 온 것도 아니고 서비스센터를 찾은 것도 아니다. 오래된 포르쉐를 좋아하는 사람, 최신 모델을 타는 오너, 언젠가 포르쉐를 갖고 싶은 팬이 한 공간에 섞였다. 포르쉐코리아가 '올 포르쉐, 원 바이브(All Porsche, One Vibe)'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풍경이다.
행사장을 걷다 보면 그 모습은 꽤 자연스러웠다. 포르쉐를 타고 온 사람 옆에 아직 포르쉐가 없는 사람이 서 있었고, 오래된 911 앞에서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었다.

자동차 제조사가 고객 행사를 여는 일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유료 티켓을 산 1만5000명이 이틀 동안 한 자동차 브랜드의 축제를 찾았다는 숫자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국내에서 포르쉐가 확보한 고객층이 이제 자동차 구매자를 넘어 하나의 팬층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그 팬덤의 오랜 주인공들도 등장했다. '포르쉐 커뮤니티 밋업(Porsche Community Meetup)'에 500여명의 참가자와 300여대의 포르쉐가 모였다.
국내 포르쉐 커뮤니티의 역사는 20년에 달한다. 회사가 만들어준 모임이 없어도 오너들은 이미 자동차를 매개로 서로 만나고 자신의 차와 경험을 공유해왔다. 포르쉐코리아는 이번에 그 문화를 대규모 공식 행사 안으로 가져왔다.

마티아스 부세 포르쉐코리아 대표가 한국 포르쉐 커뮤니티의 강한 열정을 행사 기획의 출발점으로 꼽은 것도 그래서 눈길을 끈다. 목표도 국내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마티아스 부세 대표는 앞으로 전 세계 오너와 팬들이 서울을 찾는 대표적인 포르쉐 페스티벌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포르쉐가 한국의 팬들과 가까워지는 방식은 한발 더 들어간다. 함께 모여 노는 데 이어 이제는 '나만의 포르쉐'를 만드는 과정까지 고객의 취향이 깊숙이 들어간다.
올해 국내에 공식 출시한 '존더분쉬 팩토리 커미션(Sonderwunsch Factory Commission)' 얘기다. 존더분쉬는 독일어로 '특별한 요청(Special Request)'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고객이 포르쉐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장인들과 함께 자신만의 자동차를 만드는 최상위 개인화 프로그램이다.

선택지도 만만치 않다. 포르쉐는 약 300개의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 옵션과 약 240개의 페인트 투 샘플(Paint to Sample) 컬러를 제공하고 있다. 같은 모델을 계약하더라도 색상과 소재, 세부 디자인을 조합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포르쉐와는 전혀 다른 한 대가 나올 수 있다. 포르쉐가 이런 개인화 프로그램을 한국에 들여온 데는 국내 고객들의 취향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행사를 위해 방한한 알렉산더 파비그(Alexander Fabig) 포르쉐 AG 제품 및 개인화 부문 총괄 사장은 한국 고객들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차별화된 제품에 대한 열망이 높다고 평가했다. 한국 고객들이 내놓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포르쉐의 새로운 개인화 가능성을 찾는 데 영감을 준다는 설명도 내놨다.
그가 서울에서 직접 소개한 차도 평범하지 않았다. 루가노 블루 색상의 '911 터보 S 존더분쉬'. 고객의 아이디어를 컬러와 소재, 세부 디자인 전반에 반영해 세상에 한 대뿐인 포르쉐로 완성했다.

생각해보면 팬덤과 개인화는 제법 궁합이 잘 맞는다. 브랜드에 애착이 강할수록 남들과 똑같은 자동차보다 자신의 취향이 담긴 차를 갖고 싶은 욕구도 커질 수 있다. 포르쉐 입장에서도 자동차를 인도하는 순간 고객과의 관계를 끝낼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번 축제에는 과거만 있지 않았다. 포르쉐는 팬들이 모인 한가운데에 앞으로 팔 자동차도 세워 놨다.
국내 최초로 공개한 '신형 카이엔 쿠페 일렉트릭'이다. 최상위 카이엔 터보 쿠페 일렉트릭은 런치 컨트롤 작동 시 최고출력 1156마력(PS)을 발휘하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2.5초 만에 도달한다.

흥미로운 건 숫자보다 공개 장소다. 별도의 신차 발표회 대신 기존 오너와 팬 1만5000여명이 모이는 축제를 국내 첫 무대로 택했다. 독일에서 건너온 과거의 포르쉐와 고객들이 직접 타고 온 현재의 포르쉐 사이에 미래를 맡을 전기차가 자리했다.
결국 '포르쉐 바이브 서울'을 채운 건 70여대의 자동차만이 아니었다. 20년 동안 만들어진 오너 커뮤니티가 있었고 포르쉐를 갖고 있지 않아도 기꺼이 티켓을 사는 팬들이 있었다. 자신만의 포르쉐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존더분쉬가 등장했고 앞으로 만나게 될 전기차까지 같은 공간에 합류했다.
포르쉐가 없는 사람도 팬이 될 수 있고, 포르쉐를 가진 사람은 그 관계를 더 깊게 이어갈 수 있다. 팬 페스티벌부터 오너 커뮤니티, 개인화 프로그램까지 그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포르쉐코리아는 이제 이 판을 더 키우려 한다. 서울을 해외 오너와 팬까지 찾아오는 포르쉐 축제의 무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자동차는 공장에서 만들 수 있지만 팬덤까지 공장에서 찍어낼 수는 없다. 차를 팔고 난 뒤에도 사람들이 만나고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다시 포르쉐를 이야기할 이유를 만드는 일. 포르쉐가 한국에서 공들이기 시작한 건 어쩌면 자동차보다 그 다음일지도 모른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