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st BIFF] 서른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부산국제영화제, 다시 한 걸음

시사위크
부산국제영화제가 31번째 항해를 시작했다. / 뉴시스
부산국제영화제가 31번째 항해를 시작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부산=이영실 기자  “지난해 부산은 서른을 맞아 비로소 단단히 섰고, 올해 우리는 선 자리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내딛습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첫걸음을 지금 함께 떼어볼까요?”

6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개막식이 열렸다. 배우 김민하가 단독 사회자로 나선 가운데 국내외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무대에 오른 김민하는 자신이 연기했던 ‘파친코’의 선자와 ‘하나 코리아’의 혜선을 떠올렸다. 시대도 국경도 언어도 달랐지만 두 인물 모두 낯선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한 그는 “이 무대에 오르기 전 정말 무서웠다. 그런데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자와 혜선도 처음 가는 길이 무섭기는 마찬가지였겠구나. 그래도 그들은 걸었고 그래서 이야기가 남았다”고 운을 뗐다.

개막식 사회자로 나선 김민하. / 뉴시스
개막식 사회자로 나선 김민하. / 뉴시스

이어 “생각해 보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분들도 다르지 않을 거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게 늘 처음 가보는 길이니까”라며 “지난해 부산은 서른을 맞아 비로소 단단히 섰고, 올해 우리는 선 자리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딘다”고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개막식 첫 순서로는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까멜리아상’ 시상이 진행됐다. ‘까멜리아상’은 영화 산업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기여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는 홍콩영화 뉴웨이브의 주역이자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로서 홍콩영화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며 여성영화인의 영역을 넓혀온 허안화 감독이 선정됐다.

허안화 감독은 1979년 장편 데뷔작 ‘풍겁’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뒤 현재까지 장편영화 27편과 장편 다큐멘터리 2편을 연출했으며 홍콩금상장영화제 감독상을 총 여섯 차례, 금마장영화제 감독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특히 ‘여인사십’(1995), ‘심플 라이프’(2011)로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을 석권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2012 아시아필름어워즈 평생공로상, 2014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2020 베니스영화제 평생공로상(명예 황금사자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공로를 인정받으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거장으로 명성을 쌓았다.

시상자로 나선 샤넬 코리아 대표 클라우스 올데거는 “탁월한 감독이자 홍콩영화의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를 지닌 감독 중 한 명”이라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강렬한 시선뿐 아니라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에 있다”고 허안화 감독을 소개했다. 이어 “스크린 안팎에서 여성들의 위치를 꾸준히 확장시켜온 예술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화계에 보여준 탁월한 비전과 용기, 오랜 시간 이어진 헌신에 깊이 감사한다”고 존경을 표했다.

올해 까멜리아상 수상자는 허안화 감독이다. / 부산국제영화제사무국
올해 까멜리아상 수상자는 허안화 감독이다. / 부산국제영화제사무국

허안화 감독은 “예전에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공로상을 받는 것을 꺼렸다”며 “이제 정말 나이가 들고 보니 영화 만드는 일이 정말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상을 지금 받게 돼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1996년 처음 이곳에 온 이후 매번 상을 받거나 멋진 행사에 초대받았고, 세계 영화계 어디보다 안목이 높고 영화에 대한 기대가 높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며 “부산에서 이 상을 받을 수 있게 돼 기쁘다.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후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과 전재수 부산시장이 개막을 선언했다. 전 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서른한 살이 됐다. 그동안 우리 영화제를 키워주고 사랑해준 모든 분께 330만 부산시민을 대표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영화를 만끽하고 부산의 매력도 한 아름 가져가길 바란다”고 환영했다. 이어 두 사람은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을 선언합니다”라고 외치며 영화제의 힘찬 출발을 알렸다.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한국영화공로상 시상도 이어졌다. 수상자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다. 김동호 전 이사장은 한국 영화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문화공보부와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문화부 차관 등을 거쳐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의 성공적인 출범을 이끌었다.

특히 출범 초기 상영작 사전 심의 관행에 맞서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내며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에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과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영화와 문화 발전에 힘써왔으며, 최근에는 ‘영화 청년, 동호’(2024)에 이어 직접 연출한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2025)를 선보이는 등 영화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민하는 “공로상이라는 이름이 오늘은 조금 부족한 이름인 것 같다”며 “김동호 전 이사장이 만든 건 영화제 하나가 아니라 한국영화가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시상자로 나선 박광수 이사장 역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함께 준비했던 시간을 돌아봤다. 그는 “첫해 정부 기관과 협의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검열 철폐에 합의를 봤다. 검열 철폐는 부산국제영화제 발전에 커다란 디딤돌이 됐다”며 “한국 영화인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 관계자들과 끈끈한 친목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전 세계에 알렸다”고 김동호 전 이사장의 공로를 짚었다.

김동호 전 이사장은 “이렇게 큰 상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받게 돼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31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적극적으로 찾아주고 사랑해 주고 성원해 준 부산시민과 국내외 영화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또 그는 “올해도 십여 차례 이상 해외에 다니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활동을 해나갈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양자경. / 뉴시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양자경. / 뉴시스

아시아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아시아영화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The Asian Filmmaker of the year) 시상도 진행됐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대담한 도전으로 할리우드의 장벽을 허물며 묵직한 존재감을 입증해 온 배우 양자경이 선정됐다.

양자경은 홍콩 영화의 부흥기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배우다. ‘예스마담: 황가사저’(1985)를 시작으로 ‘폴리스 스토리 3: 초급경찰’(1992), ‘영춘권’(1994) 등을 통해 남성 중심의 액션 장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했고, ‘007 네버 다이’(1997)와 ‘와호장룡’(2000)을 거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에도 동서양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그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로 아시아계 배우 최초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사의 새 역사를 썼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아시아 여성 최초로 명예 황금곰상을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서 쌓아온 업적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양자경은 “이곳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게 돼 큰 영광”이라며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향해서도 “아시아 영화를 기념하던 작은 축제에서 진정한 세계적인 장으로 성장했다. 아시아 영화의 목소리를 세계 무대에 들려주고 아름답게 이어주며 연결해 준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의 영화 여정을 함께한 이들을 향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양자경은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분명한 한 가지는 혼자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라며 “믿어주고 도전하게 하고 곁을 지키며 가장 힘든 날에도 웃음을 선사해 준 사람들이 모든 영화 뒤에 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그는 “영화는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만 누군가 어둠 속에 앉아 시간과 상상력, 마음의 한 조각을 내어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계속 배우고 호기심을 잃지 않으며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맡겨준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약속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이모우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사무국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이모우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사무국

이어 경쟁부문 심사위원이 소개됐다. 경쟁부문은 아시아 영화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소개하는 한편 세계 영화계에서 아시아 영화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데 기여하기 위해 지난해 새롭게 마련됐다. 올해는 한층 높아진 경쟁부문의 위상을 이어갈 심사위원 7인이 함께한다.

심사위원장으로는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까지 세계 3대 영화제 주요상을 모두 석권하며 세계 영화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온 장이모우 감독을 위촉했다. 장이모우 감독은 경쟁부문에 선정된 아시아 주요 작품 13편의 심사를 이끈다.

여기에 ‘카일리 블루스’ ‘지구 최후의 밤’을 연출하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예술공헌상을 받은 중국 감독 비간을 비롯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카자흐스탄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한 남자’로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 등을 휩쓴 일본 감독 이시카와 케이, ‘도희야’ ‘다음 소희’ ‘도라’까지 세 편의 연출작 모두 칸영화제에 초청된 정주리 감독, 베트남 프로듀서 쩐 티 빅 응옥, 배우이자 감독·프로듀서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최희서가 함께한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많은 변화를 시도했고 그 변화는 영화제가 관성을 깨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전환점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며 “두 번째 경쟁부문을 준비하면서 다시 붙든 질문은 하나였다. ‘부산은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부를 것인가’였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 질문 끝에 동시대 아시아의 얼굴을 가장 정직하게 담은 경쟁부문 13편을 골랐다”고 경쟁작 선정 배경을 전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이모우 감독은 아시아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더 넓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가 대단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고 배울 점이 정말 많다”며 “우리 아시아 영화는 무대가 아시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계적으로 넓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훌륭한 작품을 볼 수 있길 바라고 마음속의 좋은 영화를 선정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심사에 임하는 각오를 내비쳤다.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 주역들. / 시사위크 DB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 주역들. / 시사위크 DB

개막작은 김종관 감독의 신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하나의 계절이 흐르는 동안 한 카페에 머물다 간 낮과 밤의 대화를 담은 영화다.

김종관 감독은 “우리 영화는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이라며 “그렇지만 그렇게 작은 노력이 들지는 않았다. 많은 노력과 스태프, 배우들의 의지와 격려 덕에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세계적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작고 사소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깊이 봐준 것 같아 마음 깊이 감사하다”고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작품에 대해서는 “우리 영화에는 네 가지 대화가 나온다. 그 대화는 어떤 생략도 없이 관객들이 옆에서 듣는 기분이 들 것”이라며 “찰나의 단면만 가지고도 삶의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고, 관객들이 이야기를 다 듣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하나의 영화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끝으로 김민하는 영화제의 주인공인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는 “열흘 동안 우리는 어두운 극장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 곁에 앉게 될 거다. 같은 곳에서 숨을 멈추고 같은 순간 웃고 울 거다. 그리고 불이 켜지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라며 “이번 열흘 여러분도 누군가의 영화에 마음 한 조각을 건네달라.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될 테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 우리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거리에서, 극장에서, 바닷가에서 세계가 부산에서 만난다”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지금 시작합니다”라고 힘차게 외치며 개막식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과 영화진흥위원회 시사실 등 부산 내 7개 극장에서 진행된다. 상영작은 59개국 공식 초청작 246편을 비롯해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69편 등 총 315편이다. 공식 초청작 가운데 월드 프리미어는 95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는 10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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