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법원이 시가총액 기준 미달을 이유로 한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강화된 기준의 조기 적용과 기업의 소명 기회 부족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금융당국과 거래소가 추진해 온 상장기업 신속 퇴출 절차에 차질이 예상된다.
5일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제51민사부는 지난 2일 코스피 상장사 주연테크와 코스닥 상장사 케이엠제약이 각각 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두 회사는 이번 결정에 따라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이 정지되고, 정리매매 절차도 진행되지 않는다고 공시했다.
재판부는 시가총액 미달 기업의 상장폐지 과정에서 의견 진술이나 이의신청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총액은 기업가치뿐 아니라 경기와 시장 수급 등 외부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 만큼 부도나 완전자본잠식과 동일하게 취급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상장폐지 기준을 당초 예고한 시점보다 앞당겨 적용한 점도 주요 쟁점으로 거론됐다. 재판부는 이같은 조치가 비례의 원칙과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거래소는 올해 1월부터 코스피 200억원·코스닥 150억원의 시가총액 기준을 적용했다. 당초에는 내년 코스피 300억원·코스닥 200억원, 오는 2028년 코스피 500억원·코스닥 300억원으로 단계적으로 높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후 시행 일정을 앞당기면서 올해 7월부터 코스피 300억원·코스닥 200억원의 기준을 적용했다.
시가총액 미달로 지정된 관리종목의 해제 요건도 강화됐다. 기존 '연속 10거래일 및 누적 30거래일' 기준 충족 요건을 90거래일 동안 '연속 45거래일' 이상 기준을 웃돌아야 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재판부는 관리종목 해제 요건을 강화한 근거가 충분히 제시됐는지와 관련 기업의 절차적 권리가 보장됐는지도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의 영향은 다른 상장폐지 대상 기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거래소는 같은 사유로 상장폐지가 결정돼 정리매매가 진행 중이던 에이에프더블류와 세진티에스의 거래를 중단하고 관련 절차를 보류했다.
핀텔과 메디콕스도 지난 1일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유틸렉스·대진첨단소재·골드앤에스·제일엠앤에스·삼영이엔씨 등도 법원 판단을 구한 상태다.
다만 이번 가처분 인용으로 시가총액 미달 기업의 상장폐지가 일괄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기업들은 개별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하며, 가처분이 인용된 두 회사도 본안소송에서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을 최종적으로 다투게 된다.
상장폐지 효력이 정지됐다고 곧바로 거래가 재개되는 것도 아니다. 주연테크와 케이엠제약은 가처분 인용 이후에도 거래정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리매매가 중단된 기업의 주주 역시 거래가 재개되기 전까지 시장에서 주식을 처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래소는 법원 결정 내용을 검토하고 금융당국과 협의해 향후 대응 방향을 정한다는 계획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이라는 정책 취지와 기준 적용의 예측 가능성, 기업의 소명권을 함께 충족하는 절차가 중요해졌다"면서 "상장폐지 여부를 다투는 동안 거래정지가 길어지면 그 부담은 투자자에게도 돌아가는 만큼, 거래소는 규정 보완과 함께 거래 재개 및 정리매매 보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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