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숙 변호사의 친절한 ‘Law Talk’] ‘제소전화해 조서’는 소송을 생략하지, 집행을 생략하지 않는다

시사위크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제소전화해 조서를 받아 둔 임대인이 차임 연체가 시작되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 온다.

“변호사님, 조서가 있으니 이번 주 안에 내보낼 수 있는 거죠.”

계약할 때 조서를 만들어 두라는 조언을 따랐고, 그 조서가 판결과 같은 힘을 가진다는 말도 들었으니 당연한 기대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은 맞다. 조서가 있으면 명도소송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조서는 소송을 생략해 줄 뿐 집행을 생략해 주지는 않는다. 임차인을 실제로 내보내는 일은 조서가 아니라 조서 위에 붙는 집행문과 집행관의 절차가 하고, 그 절차는 조서의 문장이 어떻게 쓰였느냐에 따라 빠르게도 느리게도 흘러간다.

왜 그럴까. 제소전화해 조서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 집행권원이다. 임차인이 조서에 적힌 약속을 어기면 임대인은 소송 없이 곧바로 강제집행에 들어갈 수 있다. 여기까지가 조서의 위력이다.

그런데 강제집행의 출발점은 조서 자체가 아니라 법원에서 받는 집행문이다. 집행문은 “이 조서로 집행해도 좋다”는 법원의 확인서인데, 조서에 적힌 인도 조항 대부분은 조건이 붙어 있다. “차임을 2회 이상 연체하면 건물을 인도한다”는 식이다. 조건이 붙은 집행권원은 채권자가 그 조건이 성취됐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집행문이 나온다. 임차인이 두 달 치 차임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임대인이 서류로 보여 줘야 한다는 뜻이다. 조서는 집행의 자격을 주지만, 집행의 사유가 생겼다는 증명은 임대인의 몫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증명이 생각보다 자주 막힌다. 첫 번째 지점은 조서의 문장이다. “차임을 연체하면”이라고만 적힌 조서는 몇 회를 연체해야 하는지, 일부만 낸 경우는 어떻게 보는지가 불분명해 집행문 단계에서 다툼이 생긴다. “2기분 이상의 차임을 연체한 때”처럼 횟수와 기준을 숫자로 못 박은 조서와, 그렇지 않은 조서는 같은 집행권원이라도 집행문이 나오는 속도가 다르다.

두 번째 지점은 임대인의 기록이다. 차임이 계좌로 들어왔다 말았다 하고, 일부는 현금으로 받았고, 어떤 달은 관리비와 섞여 들어왔다면 연체 사실을 서류로 증명하는 일부터 어려워진다.

세 번째 지점은 사람이다. 조서의 상대방은 계약 당시의 임차인인데 현장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조서의 효력을 바로 쓸 수 없다. 점유를 넘겨받은 사람을 상대로 승계집행문을 받아야 하고, 그 승계 사실 역시 임대인이 증명해야 한다. 소송 전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받아 두라는 조언이 조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유다. 조서는 잘 만든 열쇠이지만, 열쇠는 자물쇠가 바뀌면 소용이 없다.

여기에 더해 임차인 쪽에서 쓸 수 있는 방어 수단도 있다. 집행문이 부여됐더라도 임차인은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다거나 그 뒤에 밀린 차임을 갚았다는 사유로 이의를 제기하고 집행 정지를 신청할 수 있다. 정지가 받아들여지면 집행은 그 다툼이 끝날 때까지 멈춘다. 조서가 있다고 해서 임차인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은 아니며, 조서의 위력은 임차인이 다툴 여지를 조서의 문장이 얼마나 좁혀 놓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조서가 기대만큼 곧바로 작동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인도 사유가 숫자와 날짜로 명확히 적혀 있고, 임대인이 차임 청구와 입금 기록을 처음부터 한 계좌에서 일관되게 관리했으며, 현장의 점유자가 조서의 임차인과 같은 사람일 때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진 사안에서는 집행문 부여부터 집행관의 집행까지가 소송을 거치는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이 짧다. 조서의 위력은 실재하지만, 그 위력은 준비된 임대인에게만 온전히 돌아간다.

임대인이 챙길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조서를 만들 때 인도 사유를 “2기분 이상 연체”처럼 횟수와 기준으로 특정하고, 인도 시기와 원상회복 범위까지 조항으로 넣는다. 조서에 없는 약속은 집행할 수 없다. 둘째, 계약 기간 내내 차임은 지정 계좌로만 받고 청구와 입금 기록을 같은 형식으로 보관해 조건 성취를 언제든 서류로 보여 줄 수 있게 한다. 셋째, 연체가 시작되면 임차인과의 대화와 별개로 집행문 부여 신청을 바로 준비하고, 점유자가 바뀔 조짐이 보이면 가처분을 먼저 신청한다.

결국 제소전화해 조서의 위력은 조서를 받아 두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약속이 깨진 날 임대인이 그 사실을 얼마나 빨리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느냐에서 나온다. 조서는 법원이 임대인에게 건네준 칼이지만, 그 칼을 뽑을 수 있는 손잡이는 임대인이 계약 기간 내내 스스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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