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제가 사는 곳에 제발 오지마세요. 부탁합니다. 제 집은 '요즘 것들'에 올라와 있잖아요. 그거 봐주세요. 제발."
그룹 하이라이트의 멤버 양요섭이 지난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뼈아픈 호소문을 올렸다. 유튜브 웹예능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고 있으니 제발 사적인 거주지 방문만큼은 멈춰달라는 애원이었다. 과거 비스트 시절부터 숙소 앞을 지키던 극성팬들에게 시달렸던 그는, 지난해 11월 자택 층수까지 알아내 한밤중에 침입하려던 스토커에게 충격을 받은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공포를 겪어야 했다.
1996년 H.O.T.가 데뷔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건재하던 시절, 연희동 숙소 담을 넘어 들어와 라면을 끓여 먹던 이들로부터 시작된 30년의 악몽이 2026년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강산이 수없이 바뀌고 K-팝은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에 섰지만, 스타의 사생활을 짓밟고 영혼을 갉아먹는 이른바 '사생'의 폭력성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사생의 존재는 뒤틀린 방식으로 소비됐다. 당시에는 기획사들조차 사생을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과시용 아이콘'으로 묵인했다. 심지어 피해를 호소하는 연예인에게 "인기 있으면 감수해야 할 배부른 소리", "그릇이 작다"는 비아냥이 쏟아지던 야만의 시대였다. 1998년 가수 김창완이 11년간 이어진 스토킹 피해를 고발하며 사법 처벌을 요구한 뒤에야 비로소 법적 규제의 첫 삽을 떴을 정도다.
2026년 현재의 '사생'은 팬심의 일탈이나 낭만적 해프닝으로 포장할 수 없는 '지능화된 스토킹 범죄'로 진화했다. 최근 그룹 코르티스는 프랑스 파리 스케줄 도중 차량 하부에 몰래 부착된 소형 위치추적기(GPS)를 발견해 충격을 안겼다. 실시간으로 동선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것은 물론, 숙소 주차장 무단 침입과 불법 거래된 항공편 정보를 이용한 기내 밀착 접촉까지 벌어졌다.
방탄소년단(BTS) 정국의 자택을 수십 차례 침입한 외국인 스토커가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강제 추방형을 선고받고, 엔하이픈의 숙소를 무단 침입해 불법 촬영한 피의자가 검찰로 넘겨지는 등 사법 단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범죄의 대담함은 꺾이지 않는다.
처벌 수위가 강화되고 스토킹처벌법이 자리 잡았음에도 왜 이 악순환은 끊기지 않는가. 일단 사생 범죄의 연료가 되는 '개인정보 유출 카르텔'이 공공연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나 여행사 직원이 직무상 취득한 연예인의 여권 번호, 출입국 편명, 좌석 번호가 텔레그램과 X(옛 트위터) 등 SNS 암시장에서 버젓이 거래된다. 기획사들이 법적 고소에 나서고 있지만,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다.
또 멤버 대다수가 미성년자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의 경우, 반복적인 주거 침입과 미행은 단순 사생활 침해를 넘어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에 준하는 중대 범죄다. 그럼에도 사법 당국은 여전히 "과열된 애정 표현"이라는 낡은 시선에 갇혀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을 남발하고 있다.
스토킹은 칼을 들이밀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곳에 오지 마라"는 명백한 거절을 무시하고 타인의 주거와 일상을 침탈하는 그 순간 이미 폭력이다. 개인정보 유출 창구를 발본색원하는 항공·운송업계의 시스템 구축, 미성년 아티스트 대상 스토킹에 대한 가중 처벌, 고위험 스토커에 대한 즉각적인 전자장치 부착 및 사회적 격리 조치 등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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