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경남교육청이 공개한 2026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표면적으로는 '선방'처럼 읽힌다. 도내 초4부터 고3까지 22만9000여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피해 응답률은 2.8%로 전국 16개 시·도 평균인 2.9%보다 0.1%포인트 낮게 집계됐다.
그러나 내부 지표를 한 겹 벗겨내면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전년도 2.5% 대비 0.3%포인트 반등했을 뿐 아니라, 학교급이 낮아질수록 폭력의 체감 빈도가 가파르게 치솟는 '학폭의 저연령화'가 뚜렷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다.실제로 초등학교의 피해 응답률은 5.6%에 달해 중학교(2.3%)의 두 배를 웃돌았고, 고등학교(0.8%)와 비교하면 일곱 배에 육박했다. 전년 대비 증가 폭 역시 초등학교가 0.6%포인트로 중·고교보다 훨씬 가팔랐다. 이는 전국 시·도 전반에서 공통으로 감지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학습과 디지털 기기 과몰입을 겪으며 또래 간 오프라인 갈등 조정 기술을 배울 기회가 부족했던 세대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진입하면서 나타난 구조적 문제"라고 분석했다.
신체적·물리적 가해 여부를 떠나, 장난과 폭력의 경계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의 '학교폭력 민감도'가 높아진 점도 지표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발생 양상과 공간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뇌관은 더 분명해진다. 피해 유형 중 압도적 1위는 38.3%를 기록한 '언어폭력'이었다. 집단 따돌림(16.8%)이나 신체폭력(15.4%)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특히 폭력이 발생하는 주된 시·공간은 어둡고 은밀한 사각지대가 아니었다. 전체 피해의 29.1%가 '교실 안'에서 일어났으며, 복도(16.8%)까지 합치면 교내 일상 공간의 비중이 절반에 육박한다.
시간대 역시 수업과 수업 사이의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30.8%)'과 '점심시간(23.3%)'에 집중됐다. 교사가 교탁을 비우거나 자리를 이동하는 찰나, 친밀함을 가장한 비하와 조롱, 멸칭이 일상적 대화의 탈을 쓰고 번져나가는 셈이다.
학교 현장 전문가들은 교실 내 언어폭력이 방치될 경우 사이버 불링이나 따돌림 등 2차 피해로 직결된다고 경고한다.
찰나의 말실수나 험담이 메신저 단체방으로 옮겨붙어 관계를 파괴하는 일이 잦은 만큼, 일상 언어 습관을 정밀하게 교정하지 않고는 물리적 신체폭력을 줄이는 것만으로 안전망을 구축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희망적인 지표도 감지됐다. 피해 학생의 72% 이상이 교사(36.3%)와 가족(36.0%) 등 보호자에게 즉각 도움을 청했고, 목격 학생의 70%가 방관하지 않고 개입하거나 알리는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폭력을 감추지 않고 공론화하려는 학생들의 신뢰가 확인된 대목이다.
경남교육청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단순 처벌과 행정적 징계 위주의 사후 처리를 탈피해, 관계의 본질적 복원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남도청과 자치경찰, 경찰청과의 합동 협의회를 가동해 최근 청소년층으로 침투하는 '야차룰' 같은 신종 격투 폭력에 강력 대응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자체 특화 모델인 마음회복숙려제 '마음결'을 본격 가동한다.
'마음결'은 갈등 사안이 학교폭력 전담기구 심의로 넘어가 법적 공방으로 비화하기 전, 공식 숙려기간을 두고 전문 지원단이 개입해 학생과 보호자가 스스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도록 돕는 제도다.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가을 학기에는 학급 단위의 실천 중심 '언어문화개선 교육주간'을 집중 운영해 일상 속 언어 감수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경남의 수치는 전국 평균보다 소폭 낮다는 안도감 뒤에, 가장 가까운 교실 안에서 어린 학생들이 언어적 상처를 주고받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경남교육청이 꺼내든 관계회복 중심의 처방이 교실 내 일상적 언어 풍토를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현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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