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기자님,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드신 사진만 교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글로벌 환경보호기관 홍보 담당자와의 통화였다. 멸종위기종 보전과 관련된 기획기사를 준비하던 중 사용한 이미지에 대해 기관 측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보통 기사의 수정이나 사진은 언론사에서 결정하는 일이다. 때문에 처음엔 다소 당황스러웠다.
해당 기관 측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대량의 이산화탄소 배출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AI’로 만든 사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 환경보전 비영리기구의 신념이라고 했다. 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AI의 활용이 당연시 되는 현재,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현재의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있어선 이들의 ‘착한 척’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매년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지구 환경에 있어 우리는 너무 쉽게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듯하다. 편리함, 비용, 무관심 때문이다.
이 같은 ‘타협’은 결국 훨씬 큰 대가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발생한 네팔 빙하호 붕괴 홍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재난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최소 1,259명으로 추정된다. 실종자도 5,624명에 달한다. 시간이 갈수록 집계되는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이 재난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재난 발생 2개월 반 전인 6월 8일, 이번 참사가 발생한 랑탕 유역 빙하 소멸에 대한 연구는 국제학술지 온라인판으로 발표됐다. 영국 뉴캐슬대 지리·정치·사회학과 연구진의 연구로, 랑탕 유역 빙하 면적은 소빙하기 이후 41.5% 감소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수치는 단순한 학술적 경고에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같은 경고가 반복돼도 우리의 일상과 정책, 산업의 선택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정하면서도 당장의 편리함과 비용 앞에서는 쉽게 예외를 허용한다. 그렇게 쌓인 작은 예외들은 결국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를 무디게 만든다.
물론 이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4차 산업시대, AI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각종 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도 당장 완전히 절감하는 것도 어렵다. 도로 위의 수많은 자동차들을 멈추고 전기차나 수소차로 대체할 수도 없다. 몇몇 강경한 사람들은 경제적 가치, 편의성을 포기할 수 있냐며 기후변화문제를 조명하면 위선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능한 한 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새로운 타협점을 찾는, 가벼운 ‘위선’이 필요하다. 그것이 에어컨을 틀고 작업하며서 생성형 AI사진을 조금 덜 사용하는 것 혹은 가솔린 자동차를 타고 마트에 가 친환경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 낫다.
“위선은 악이 미덕에게 바치는 경의의 표현이다.(Hypocrisy is the homage that vice pays to virtue.)”.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의 말이다. 위선자는 적어도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고, 사회적으로 옳은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는 시대착오적으로까지 느껴졌던 그들의 선택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환경을 위한 우리의 ‘착한 척’이 당장 기후변화를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위기 앞에서 필요한 것은 완전무결한 선의가 아닌, 원칙을 향한 자발적 실천이든 사회적 시선에 따른 타의적 행동이든 조금씩 변해가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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