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p의 오경제] 삼양사 '2103억 면제'로 돌아본 리니언시 잔혹사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공정거래위원회가 7년 넘게 가격을 담합해 온 국내 전분·전분당 제조사들을 적발해 역대 최대 규모인 7475억7800만원의 과징금을 산정했으나, 상당액이 감면될 것으로 보여 제재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전체 산정액 중 두 번째로 많은 2103억4000만원을 부과받은 삼양사(145990)는 이를 단 한 푼도 납부하지 않는다.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해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 1순위'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장기간 불법 담합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기업이 먼저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행정·형사 처벌을 완전히 회피하면서 리니언시가 기업의 사후 면책 수단이자 '과징금 보험'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장 점유율 86% 장악 4개사, 7년5개월간 짬짜미

공정위에 따르면 대상(001680), 삼양사, 사조CPK, CJ제일제당(097950) 등 4개사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5개월에 걸쳐 기업 간 거래(B2B)용 전분·전분당 가격을 합의해 결정했다. 이들 4개사의 시장 점유율은 합산 86.4%로 사실상 독과점 사업자들이 장기간 시장 경쟁을 원천 차단한 구조였다.

담합의 실행 방식도 체계적이었다. 원자재인 옥수수 가격이 오르면 판매가를 동반 인상했고 원가가 내릴 때는 가격 인하 폭을 축소하거나 적용 시기를 지연시켰다. 거래처 대상 가격 인상 통보 공문의 문구와 발송 일자까지 사전 조율했으며 일부 업체 관계자는 합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우체국 발송 현장에 동행하기도 했다.

공정위가 산정한 업체별 과징금은 △대상 2341억원 △삼양사 2103억원 △사조CPK 2001억원 △CJ제일제당 1030억원으로 총 7475억7800만원에 달해 역대 공정위 담합 제재 중 최대 규모다. 

그러나 1순위 자진신고자로 인정된 삼양사는 과징금 100% 면제와 검찰 고발 제외 처분을 받게 됐다. 7년 넘게 담합을 주도·가담했음에도 법적 제재를 완전히 피하게 된 셈이다.

◆'죄수의 딜레마' 노렸지만 안 먹히는 '리니언시 잔혹사'

리니언시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의 내부 고발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1순위 신고자는 과징금 전액 면제와 고발 면제, 2순위 신고자는 과징금 50% 감경 혜택을 받는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를 활용해 카르텔을 해체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적발 가능성이 가시화되면 공동 담합을 주도했던 대기업이 앞다퉈 자진신고에 나서 처벌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대기업이 리니언시를 통해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면제받은 사례는 누적돼 있다. 2009년 LPG 판매가격 담합 당시 1602억원의 과징금이 산정됐던 SK에너지는 1순위 자진신고를 통해 전액 면제받았다. 반면 다른 정유·가스사들은 수백억~수천억원의 과징금을 고스란히 부담했다. 

2011년 생명보험사 이율 담합에서도 교보생명이 1342억원을 전액 감면받았고, 2013년 변액보험 수수료 담합 때는 삼성생명(032830)이 1순위로 신고해 제재를 피했다.

불공정한 구조는 대기업과 협력사 간에도 나타났다. 2018년 유한킴벌리는 23개 대리점과 정부·공공기관 입찰을 담합했으나 본사가 선제적으로 신고해 산정된 과징금 2억1100만원을 전액 면제받았다. 반면 종속적 위치에 있던 대리점들만 총 3억9400만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했다.

◆'상습 담합' 법인 분할로 감면 제한 회피도

리니언시 제도가 담합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는 구조적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07년 설탕 가격 담합 적발 당시 리니언시로 과징금의 절반을 감경받고 고발을 피했으나 19년 만인 2026년 제당 3사 설탕 담합 사건에 다시 연루됐다.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공정위가 처리한 담합 사건 144건 중 68%에 달하는 98건에 리니언시가 적용됐다. 3년간 감면된 과징금만 총 2583억원에 달해 사건 3건 중 2건꼴로 감면 혜택이 주어졌다.

제도의 허점을 노린 편법도 확인됐다. 현행법상 일정 기간 내 재범한 사업자는 리니언시 감면을 제한받지만 일부 기업집단은 분할이나 신설 법인을 세워 이를 우회했다.

실제 감사원 조사 결과 2022년 한 대기업 집단은 분할·신설 법인을 통해 1·2순위 공동감면을 신청해 총 546억원을 감면받았다. 동일한 경제적 실체임에도 법인이 분리됐다는 이유로 감면 제한 규정을 무력화한 것이다.

공정위가 자진신고자 비밀보호를 이유로 리니언시 적용 대상과 최종 징수액을 비공개로 일관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외적으로는 수천억원대 과징금 부과를 발표해 강력한 제재 효과를 홍보하지만 실제 국고로 환수되는 금액은 대폭 축소되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분당 담합 건 역시 삼양사의 자체 공개로 2103억원의 면제 사실이 확인됐을 뿐 2순위 감면 대상자나 실제 총 부과액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법조계와 경제계에서는 밀실 담합을 적발하기 위한 리니언시의 순기능은 인정하더라도 담합 기간, 주도 여부, 시장 교란도, 과거 이력 등을 정밀하게 반영한 감면 심사가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정위는 반복 위반 사업자에 대한 혜택 축소 등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감면 내역 비공개 원칙이 유지되는 한 실효성 논란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장기간 이어진 담합으로 원가 인상 부담을 떠안은 식품·외식업계와 최종 소비자에 대한 구제 수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선착순 면책' 중심의 현행 리니언시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opyright ⓒ 프라임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마담p의 오경제] 삼양사 '2103억 면제'로 돌아본 리니언시 잔혹사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