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성장을 견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조 회장은 2019년 IATA(국제항공운송협회) 총회 당시 LCC와의 경쟁에서도 공격적인 전략을 펼칠 것을 시사했는데, 그의 발언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2019년 6월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IATA 제75차 연차총회 미디어브리핑에서 조 회장은 “한국 LCC 시장의 성장세가 대단하다. 최근 시장동향을 보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며 “지금까지 (대한항공은 LCC의 성장에 대해) 수동적으로 관찰해 왔지만, 지금부터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위협이 될 수 있는 경쟁사들의 성장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견제를 하겠다는 의미다.
조 회장의 발언은 최근 현실화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여파로 운항을 중단한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EWR·뉴왁) 재취항을 추진하고 나섰다.
뉴어크공항은 뉴욕의 존·F·케네디 국제공항(JFK), 라과디아공항(LGA)과 함께 뉴욕권을 대표하는 공항이다. 대한항공이 뉴왁 취항을 중단한 사이 2023년 5월 에어프레미아가 인천∼뉴욕(뉴어크) 노선에 취항하면서 약 22년 만에 뉴어크 직항이 다시 개설됐다. 뉴어크공항은 뉴저지 한인타운과 접근성이 높고 교민 수요가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JFK공항에 취항 중인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출혈경쟁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한항공이 25년 만에 뉴어크공항 재취항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6월에는 국토교통부에 인천∼뉴어크 노선 허가를 신청했고, 이어 지난 7월에는 관련 보완자료 제출 및 운임 신고도 진행했다.
대한항공의 뉴어크 재취항은 단순히 뉴저지 한인타운 수요 공략 일환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강범석 대한항공 미동부지점장도 지난해 10월 미주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뉴저지 한인 고객들의 뉴어크 취항 요청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에어프레미아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함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국적 항공사 중 에어프레미아가 유일하게 운항하며 수익을 올리던 알짜 노선에 대한항공이 직접 진입해 수요를 빼앗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의 뉴어크 재취항 검토는 단순한 노선 복원이나 확장을 넘어 미주 동부에서 노선을 확장하며 성장 중인 에어프레미아를 견제하고 뉴욕·뉴저지 상권의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겠다는 다목적 포석으로 평가된다.
대한항공의 이러한 행보는 일본 노선에서도 관측됐다.
대한항공은 올해 12월 23일 일본 히로시마에 신규 취항한다. 히로시마는 코로나 종식 후인 2023년 7월 제주항공이 신규 취항해 현재까지 단독으로 운항을 이어오고 있는 일본 노선이다. 3년간 제주항공이 기반을 다진 히로시마 노선에 대한항공이 올 연말부터 직접 취항하며 경쟁을 예고한 것이다.
또한 대한항공은 일본 간사이(관서) 지방 항구도시인 고베 노선에서도 제주항공을 견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천∼고베 노선은 지난해 4월 대한항공이 첫 직항 항공편을 띄우기 시작했고 올해 6월에는 제주항공이 신규 취항했다. 대한항공이 1년 이상 고베 노선을 단독으로 운항하며 수요를 독식했는데 제주항공이 들어오면서 경쟁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제주항공이 고베에 취항한 직후 한진그룹 계열 항공사인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지난달과 이번달 인천∼고베 노선에 신규 취항을 알렸다. 사실상 한진그룹 차원에서 제주항공의 고베 취항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공급을 쏟아 부어 고베에서 제주항공의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트리니티항공도 고베 노선 취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진에어·아시아나항공의 고베 노선 취항은 이를 사전에 견제하는 장치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한항공은 올해 9∼10월에 걸쳐 인천∼일본 오이타 노선 전세기 패키지 상품을 한진트래블을 통해 판매하며 가을철 오이타 여행 수요를 공략하고 나섰다. 오이타 노선도 현재 제주항공이 단독으로 취항 중인 지역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진트래블에서 판매하는 대한항공 전세기 운항 패키지 상품은 단순히 계절성 부정기편 운항일 수도 있지만, 향후 정기편 취항 전 사전 점검 단계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오이타 노선은 대한항공이 정기편을 운항한 경험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은 2019년 2월 인천∼오이타 노선의 수요 감소 및 노선 효율화 등의 이유로 운항을 중단했다. 이후 약 5년 만인 2024년 1월 20일∼3월 30일 기간 주 3회(월·목·토요일) 일정으로 약 2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인천∼오이타 노선 운항을 재개했다. 그러나 정기편 운항으로 지속되지는 않았다.
오이타는 규슈지역 아소산 동쪽에 위치한 화산지대 도시다. 벳부와 유후인 등 온천마을이 유명한 겨울철 인기 관광지다.
지난해 인천∼오이타 노선 연간 탑승객 수는 약 7만2,900명으로 집계됐다. 운항 항공편은 492편이다. 제주항공의 보잉 B737 계열 기재가 189석 위주임을 감안하면 항공기 1편당 평균 148명 정도가 탑승한 것이며, 평균 탑승률은 78.4% 안팎이다. 올해 들어서는 탑승률으 더 늘었다. 1∼7월 누적 실적 기준으로 인천∼오이타 노선의 운항 횟수는 280편, 탑승객은 4만5,700여명이다. 1편당 평균 163명의 여객이 탑승한 것으로, 189석 기종 기준으로 평균 탑승률은 86.4%에 달한다.
인천∼오이타 노선의 수요가 성장세를 기록 중인 점에서 대한항공이 오이타 노선에 재취항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목이다.
한진그룹 항공사의 ‘LCC 견제’ 행보는 유럽에서도 나타났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대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서는 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바르셀로나 4개 노선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했고, 대체항공사로 트리니티항공(티웨이항공)을 선정해 노선 이관 절차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 아시아나항공은 프랑크푸르트 노선 운항 횟수가 주 7회(매일 1회) 운항에서 주 4회로 줄었다.
문제는 트리니티항공이 운항 중인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에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8월부터 400석 이상 규모의 대형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495석) 기종을 투입하고 나선 것이다. 당초 A350-900(311석) 기종 대비 좌석 공급을 60%나 늘리며 트리니티항공을 견제한 모습이다. 결국 트리니티항공은 올해 하계스케줄까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 노선을 운항하고, 올해 동계스케줄부터는 운항 중단을 선언했다. 유럽 경쟁당국의 최소 운항 기간도 만료된 시점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 항공사들의 최근 행보는 2019년 조 회장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다. 조 회장이 경쟁 LCC들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LCC들의 노선 확장이나 단독 취항 노선을 집중 공략하면서 성장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계열 LCC 3사가 통합을 완료하게 되면 이러한 행보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보유 중인 여객기 대수가 각각 143대, 67대로 합병 후 통합 대한항공의 기단 규모는 200대 이상에 달한다. 통합 진에어도 에어부산·에어서울을 흡수해 합병하면 기단 규모는 60대로 국내 LCC 최대다.
한진그룹은 통합 항공사의 항공기 운용 과정에 효율을 극대화하고 신규 노선 확장에 힘을 쏟으며 타 LCC 견제 행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항공과 트리니티항공,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파라타항공 6개 LCC는 통합 대한항공과 통합 진에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항공사들이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방법으로는 ‘운수권’을 확보하는 게 가장 대표적이다. 중국을 비롯해 유럽 노선들은 운항 권리를 확보해야 취항이 가능한 만큼 공급 상한이 제한된다. 이러한 점에서는 시장 변화에 대해 예측을 하고 대응책을 사전에 마련할 수 있다.
국토부에서는 2026년 국제항공운수권 추가 배분을 이번달 내에 진행하는데, 추가 배분될 운수권 규모는 67개국, 113개 노선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LCC에서는 이번 중국 노선 운수권 확보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배분 예정인 중국 노선은 △인천∼베이징·상하이·광저우·다롄·청두·하얼빈 6개다. 인천∼베이징은 주 14회, 다른 5개 노선은 주 7회 운항 권리가 배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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