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아이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는 이유로 학교의 곳곳을 비추던 불빛마저 끌 수는 없다. 정부가 50년 넘게 유지돼 온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산정 구조를 손질해 예산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자, 교육계가 전면적인 집단 대응에 돌입했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단순한 인구 통계학적 수치 뒤에 가려진 농산어촌의 교육 인프라 붕괴와 지역소멸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권순기 경상남도교육감을 포함한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들은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교부금 축소 개편안을 즉각 백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수장들은 현행 내국세의 20.79%로 법제화된 교부금 연동 비율을 흔들림 없이 수호해야 한다고 천명하는 한편, 교육 주체인 시·도교육청이 배제된 채 재정 당국의 경제 논리로만 진행되는 개편 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번 갈등의 핵심 쟁점은 정부가 내세우는 '학생 1인당 투자액 착시'에 있다. 기획재정부 등 재정 당국은 출생아 수 급감으로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내국세 수입에 비례해 교육교부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시각을 고수해 왔다. 남아도는 재정을 고등·평생교육이나 일반 국정 과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과 교육재정 전문가들의 진단은 정반대다. 학교 현장의 지출 구조는 학생 수가 아닌 '학급'과 '학교 건물'이라는 기본 단위로 움직이는 고정비가 8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30명이 앉던 교실에 15명이 앉게 됐다고 해서 교사의 월급이 반으로 줄거나, 냉·난방비와 학교 시설 유지비가 절반으로 깎이지 않는다.
여기에 최근 수년간 누적된 가파른 인건비 상승과 공공요금 급등까지 맞물리면서, 장부상 학생 1인당 배정액이 늘어난 것처럼 보일 뿐 학교가 실제 집행할 수 있는 가용 예산은 오히려 고갈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개편안의 위험성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극단적인 양극화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일부 신도시 지역은 과밀학급 해소와 신설 학교 수요를 감당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반면, 경남과 강원·전남·경북 등 도농복합 지역은 학생 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광범위한 농산어촌 학교망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경남의 현실은 이러한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남 지역 전체 학교 가운데 전교생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 비율은 무려 26.8%에 달한다.
만약 정부의 구상대로 학생 수 중심의 재정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곳은 바로 농어촌 작은 학교들이다.
아이들의 발이 돼주는 통학버스 운행이 중단되고, 양질의 친환경 무상급식 단가가 깎이며, 방과후 돌봄 프로그램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기초 교육 여건이 무너진 농어촌 마을에서는 젊은 학부모들의 연쇄 탈출이 이어질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지역 소멸'의 악순환을 재촉하게 된다.
모순적이게도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과제들은 오히려 막대한 교육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초등 늘봄학교의 전국적 확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하나로 묶는 유보통합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학생 마음건강 지원 체계 구축 등 국가가 주도하는 메가톤급 교육 복지 사업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교육계는 정부가 새로운 국가 책무는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정작 이를 뒷받침할 재정의 젖줄은 죄려 한다고 꼬집는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 수 감소기를 교육예산 삭감의 기회로 볼 것이 아니라, OECD 상위권 수준의 질 높은 개별 맞춤 교육으로 공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결정적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재정학회 관계자는 "단순 산술 논리로 지방 교육의 돈줄을 조이는 것은 지역균형 발전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과 같다"며 "헌법이 보장한 균등한 교육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교육청이 직접 참여하는 공식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원점 재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순기 경남교육감은 "파급효과에 대한 치밀한 현장 시뮬레이션도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개편안은 돌이킬 수 없는 지역 교육 격차와 국가적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지방교육재정은 무너져가는 지역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인 만큼 물러섬 없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국회 및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총력 저지에 나설 것을 예고하면서, 교육재정을 둘러싼 정부와 교육계의 정면충돌은 장기전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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