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바꾸는 기후변화… 더워진 날씨, ‘매운맛’ 찾는 사람들

시사위크
한국의 매운맛’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호가 됐다. 이때  최근 ‘기후변화’도 고객들의 기호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구온난화로 날씨가 변화하면서 매운맛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한국의 매운맛’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호가 됐다. 이때  최근 ‘기후변화’도 고객들의 기호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구온난화로 날씨가 변화하면서 매운맛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얼마 전 독일의 함부르크를 방문했을 때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어서자 ‘라면’ 코너가 눈에 띄었다. 일본 ‘닛신(Nissin)’, 독일 메이커 등 여러 라면이 매대를 가득 메웠다. 이때 핵심 매대를 차지한 것은 ‘삼양 불닭볶음면’이었다. 마트 매니저도 “인기가 너무 많아 저녁이면 품절이 자주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매운맛’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호가 됐다. 실제로 불닭볶음면의 원조인 ‘삼양식품’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과 매출 1조4,847억원, 3,53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7.2%, 39.1% 증가한 수치다. 이중 해외 매출이 전년 대비 42.4% 증가한 1조2,308억원으로 상반기 실적을 견인했다.

이 같은 ‘K-매운맛’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은 우연은 아니다. 온라인커뮤니티와 SNS의 활성화로 인한 세계화, 국가 간 교류 활성화가 뒷받침된 결과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도 고객들의 기호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구온난화로 날씨가 변화하면서 매운맛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한 마트 매장 내부의 모습. 핵심 매대를 차지한 것은 ‘삼양 불닭볶음면’ 등 한국 라면들이었다. 마트 매니저도 “인기가 너무 많아 저녁이면 품절이 자주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독일 함부르크의 한 마트 매장 내부의 모습. 핵심 매대를 차지한 것은 ‘삼양 불닭볶음면’ 등 한국 라면들이었다. 마트 매니저도 “인기가 너무 많아 저녁이면 품절이 자주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 기온 상승, 매운맛 선호도가 늘어나는 이유

기후변화와 날씨, 그리고 매운맛과는 사실 관련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후변화, 특히 ‘더위’와 매운맛 수요 간 상관관계는 우리 예상보다 높다. 실제로 한국을 제외, 매운 음식을 주로 소비하는 국가들은 인도, 아프리카, 멕시코, 동남아 등 대부분 기온이 높은 국가들이다. 다만 이러한 음식문화의 형성을 기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실제 기온과 매운 음식 구매 행동 사이의 연관성이 있을까. 이에 대한 연구는 서울대학교 문정훈 교수 소속 조성환 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연구를 주목할 만 하다. 연구팀은 2017~2021년 전국 1,282가구의 식품 구매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당일 평균기온이 높은 날에는 매운 음식을 구매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성환 연구원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균기온과 강수량이 증가할수록 미세먼지 농도와 일교차가 감소할수록 매운 음식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평균기온과 강수량이 높고 미세먼지 농도와 일교차가 낮은 여름철 기상조건에서 매운 음식 구매가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더위와 매운 음식 소비 증가는 체내 생리 현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매운 음식을 먹어 땀을 흘리면 체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실제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들도 여럿 찾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매운 음식과 ‘체온’ 간 상관관계다.

중국 충칭대학교 연구진은 지난해 지구온난화와 매운 음식 섭취가 더운 환경의 사람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조사는 여름과 겨울 18~30세 여성을 대상, 현장 측정 및 설문으로 진행됐다. 실험 참가자는 중국의 대표적 매운 음식인 ‘훠궈’를 자주 먹는 그룹 590명, 그렇지 않은 그룹 570명으로 나눠 진행됐다.

분석 결과, 훠궈의 섭취는 열 민감도를 감소시키고 생리적 등가 온도(PET) 범위를 넓혔다. 구체적으로는 훠궈 섭취 그룹의 PET는 14.89~24.74℃, 섭취하지 않은 그룹은 16.66~23.98℃으로 나타났다. 즉, 훠궈를 많이 먹은 그룹의 PET는 5.46℃ 범위가 더 넓었다. 여기서 PET는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열환경을 ℃ 하나로 환산한 지표다. 쉽게 말해 훠궈 등 매운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덥고 변덕스러운 기상환경에서 덜 불편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기후변화, 특히 ‘더위’와 매운맛 수요 간 상관관계는 우리 예상보다 높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기후변화, 특히 ‘더위’와 매운맛 수요 간 상관관계는 우리 예상보다 높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 더워진 날씨, ‘이열치열’ 세계화

기온 상승으로 인한 매운 식품 선호 증가는 실제 시장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24년 ‘BGF리테일’의 발표에 따르면 편의점 ‘CU’ 내 매운맛 상품의 매출 신장률은 5월 8.3%, 6월 10.1%, 7월 14.6%로 기온이 높아질수록 증가했다. 특히 2024년 최대 폭염이 시작됐던 8월 1~20일 사이 매출은 19.7%로 급증했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실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은 글로벌 식품 시장에서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일본’이다. 일본 맛집 검색·음식점 예약 플랫폼 기업 ‘구루나비(ぐるなび, Gurunavi)’ 리서치부가 6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 내 매운 음식을 먹고 싶다고 느끼는 계절은 여름이 34%로 겨울과 함께 가장 높았다.

일본 소비자들이 매운 음식을 먹고 싶다고 느끼는 평균 기온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구루나비 조사에 따르면 일본 소비자들이 매운 음식을 먹고 싶다고 느끼는 평균 기온은 최근 3년간 28~29℃ 수준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온도는 30℃였다. 

구루나비는 “설문자들이 매운 음식을 여름에 먹고 싶은 이유로는 ‘시원하게 땀을 흘리고 싶다’, ‘식욕이 떨어져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다’라고 답변했다”며 “먹고 싶은 매운 수준은 ‘8단계’로 이는 ‘상당히 매운 수준’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에서도 매운맛은 계절성을 띤다. 특히 여름철 자극적인 맛 조합의 선호가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시장조사업체 ‘다타센셜(Datassential)’에 따르면 최근 따르면 미국 외식 메뉴의 71%, 음료 메뉴의 11%에서 매운맛 요소가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계절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매운맛 트렌드’는 계절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름철에는 ‘매운 마늘’과 ‘매운 바베큐’ 등 자극적 맛의 조합 선호도가 증가했다. 또한 최근 미국 내 기온이 급상승하기 시작한 4년간 매운 음식 메뉴의 비중은 9.4% 늘었다. 2015년 39%였던 소비자 선호도 역시 2025년 기준 50% 이상 상승했다.

매운맛 식품 시장 규모는 오히려 감소할 위기에 처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이 고추, 향신료 등 재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매운맛 식품 시장 규모는 오히려 감소할 위기에 처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이 고추, 향신료 등 재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 수요는 느는데… 기후변화가 위협하는 ‘매운맛’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매운맛 선호도는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매운맛 식품 시장 규모는 오히려 감소할 위기에 처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이 고추, 향신료 등 재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단국대·동국대 연구팀이 지난해 한국 주요 고추 산지를 대상으로 기온 상승을 시뮬레이션했다. 대상 품종은 ‘PHR18’과 고온 내성이 있는 ‘PHR23’로 분류했다. 두 품종 모두 ‘매운 고추(Capsicum annuum L.)’의 일종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기준보다 기온이 3~5℃ 높아질 경우 고추 계통의 수확량이 지역에 따라 약 31~53% 감소했다. 특히 PHR18 품종은 당진에서 기온이 3℃만 올라도 수확량이 53% 감소했다. PHR23 품종은 해남에서 5℃ 상승 조건에서 45% 감소했다 .즉, 내열성이 있는 품종조차 고온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셈이다.

연구팀은 “두 대조군에서 고추는 10월까지 계속 자랐지만 고온 스트레스 조건인 8월에 성장이 멈췄다”며 “고온 스트레스는 식물의 생장과 발달에 악영향을 미쳐 이러한 조건에서 식물의 잠재 생장률(WA)을 감소시켰고 이는 수확량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고추 이외의 매운 향신료들도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구이저우대 연구팀은 화석연료 사용이 지속되고 온실가스 감축이 없는 ‘SSP5-8.5’ 시나리오가 유지될 경우, 2090년 화자오·산초 계열 향신료의 적합 서식지가 최대 97.6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화자오와 산초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라탕’, ‘마파두부’ 등의 핵심 재료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사랑하는 매운 향신료 ‘와사비’도 마찬가지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5년 4,600톤이었던 와사비 생산량은 2023년 1,384톤으로 70% 줄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배난, 농가 감소가 주 원인이었다. 여기에 남은 농가들도 폭염·태풍의 피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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