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 현장의 변화는 '대체냐 아니냐'보다 복잡하다.
기업들은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업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를 조직에 투입하고 있다. 실제 40개 기업에서 3개월 동안 발생한 약 1만8000건의 업무 계획과 14만7000건 이상의 AI 에이전트 행동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AI가 전체 IT 작업의 3분의 1 이상을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보조 도구를 넘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AI가 많은 일을 한다고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AI가 제안한 행동과 인간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은 비율은 약 23%였고, 신원·접근관리처럼 위험도가 높은 업무에서는 실패 가능성이 다른 업무보다 3~9배 높았다. 전체 업무 과정을 AI가 독자적으로 처리한 비율도 1.1%에 불과했다.
AI는 반복적인 실행과 정보처리에는 강하지만 맥락과 예외, 위험을 판단하는 순간에는 여전히 인간이 필요하다. 결국 AI 시대의 변화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보다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에 가깝다.
기업의 인재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좋은 직원은 주어진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AI가 보고서를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고객 문의에 답하고 코드까지 작성한다면 단순한 업무 수행 능력의 가치는 낮아진다.
대신 AI가 제시한 결과를 검증하고 여러 대안 가운데 무엇이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사람의 역할이 '실행자'에서 '판단자'로 이동하는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사람은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언제 틀렸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채용과 교육의 기준도 바껴야 한다. 특정 기술이나 직무 경험뿐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질문하며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AI 교육 역시 새로운 도구와 프롬프트 작성법을 배우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가 만든 결과에서 오류와 편향을 찾아내고 다른 정보와 비교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업이 AI 리터러시와 함께 '판단 리터러시'를 키워야 하는 이유다.
조직설계의 질문도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어떤 업무를 자동화할 것인가"를 물었다면 앞으로는 "어디까지 AI에게 맡기고 어디에서 사람이 개입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반복적이고 복구 가능한 업무에는 AI의 자율성을 높이되 채용, 평가, 보상, 보안처럼 잘못된 판단의 영향이 큰 영역에서는 인간의 검토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관리자의 역할도 사람의 업무를 확인하는 것에서 AI와 사람이 함께 내리는 결정의 품질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다.
대학 교육에도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AI가 몇 초 만에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시대에 답을 만드는 방법만 가르쳐서는 부족하다. AI가 제시한 답이 왜 맞는지, 무엇이 빠졌는지, 다른 해석은 가능한지를 묻게 해야 한다.
읽고 질문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다시 중요해지는 이유다. AI가 답을 만드는 비용을 낮출수록 좋은 질문과 판단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진다.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 가운데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미래 조직은 인간과 AI 가운데 누가 승자가 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에 가까울 것이다. AI는 실행하고, 인간은 판단하며, 조직은 그 결과에 책임지는 새로운 분업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AI가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많이 판단해야 한다. 이제 기업은 AI에게 무엇을 맡길 것인가와 동시에 인간에게 어떤 판단을 남길 것인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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