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 수위를 높이며 사측을 향한 압박 강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규직 노조의 파업 장기화로 이미 1조8000억원이 넘는 매출 손실과 신차 출시 차질이 현실화한 가운데, 하청·판매 노동자들의 원청 교섭 요구와 기아 노조의 파업 가시화까지 겹치며 복합 노사 리스크에 직면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이날부터 18일까지 나흘간 부분파업에 돌입한다. 기존 2~4시간이던 근무조별 파업 시간을 12~13일 4시간, 14일과 18일에는 6시간으로 확대했다. 연장·특근 거부도 계속 이어간다. 예정된 일정이 모두 진행될 경우 기존 7월 부분파업으로 발생한 생산라인 기준 최대 60시간의 가동 차질에 추가 40시간이 더해져, 누적 생산라인 가동 차질은 최대 100시간까지 불어날 수 있다.
노사 간 교섭은 지난달 8일 15차 본교섭 이후 한 달 넘게 중단됐다. 노조는 호봉승급분을 제외한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 전년도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정년 연장, 주 4.5일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기본급 8만9000원 인상과 성과금 350%+1000만원, 주식 15주 등을 제시하며, 노조가 수용 불가한 요구안을 철회해야 추가안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섭이 가로막힌 것은 이른바 3대 쟁점 때문이다. 해고자 복직, 정년 연장 법제화 전 사전 합의, 상여금 50%포인트 인상(750%→800%) 등 3개 요구안을 두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측은 해고자는 이미 법원 판결로 결론이 난 사안이라 교섭 대상이 될 수 없고, 정년 연장 역시 개별 기업이 법 개정 전 단독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측은 이 3개 요구안을 임금협상과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노조가 이를 철회하지 않는 한 본교섭 자체가 공전할 가능성이 크다.
파업 국면이 길어지면서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지난달까지 집계된 생산 차질은 약 4만2000대, 매출 손실 규모는 1조1200억원에 달한다. 파업 시간 자체는 총 30시간이었지만 오전·오후 출근조가 각각 참여하면서 실제 생산라인은 총 60시간 멈췄고, 4차례 토요일 특근 거부까지 겹쳐 누적 생산 차질은 4만2510대로 집계됐다. 업계가 추정하는 파업 시간당 매출 손실액이 187억원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실 규모는 최소 1조80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지난달 국내 생산량은 13만7449대로 전월 대비 22% 급감했다.
직원들의 체감 손실도 가시화하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직원 1인당 임금 손실은 192만원, 퇴직금 손실은 1401만원으로 추산됐다. 이 여파는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현대차의 2분기 매출은 49조21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8509억원으로 20.8% 감소했다.
당장 지난달 말 울산공장 라인에 투입될 예정이던 투싼 신형 시험(파일럿) 모델 생산이 멈췄으며, 이달 예정이던 투싼 풀체인지와 연내 출시가 거론되던 싼타페 페이스리프트 등 신차 일정 전체가 불확실해졌다. 여기에 아산공장 노후 설비 교체 공사와 하계휴가, 울산공장 라인 전환 일정까지 겹치며 하반기 생산 정상화 부담이 커진 상태다.
사측도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영일 현대차 사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파업 끝에 남는 것은 생산 손실과 임금 피해, 외부 비난뿐”이라며 조속한 교섭 타결을 호소했다. 영업이익 감소와 대규모 미래 투자 부담을 강조하며 추가 파업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정당한 보상 요구를 외면한 채 경영진은 자사주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는 현대차 노조 40년 역사에 비춰봐도 이례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40년 동안 30년을 파업으로 보냈고, 공장 가동이 멈춘 날을 모두 합치면 463일로 근무일 기준 1년이 넘는 기간 생산이 중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업이 없었던 해는 10개년에 그쳤다. 파업 양상은 1980년대 강경 전면파업에서 2000년대 대규모·장기 파업을 거쳐 2010년대 이후 부분파업·특근 거부 형태로 바뀌었고, 이렇게 누적된 손실은 20조원 안팎으로 커졌다. 특히 2016년에는 연간 생산 차질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나 한 해에만 약 3조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되며, 2017~2018년에도 약 2조원의 생산·매출 차질이 발생했다.

여기에 외부 노무 이슈까지 터져 나왔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달 21일 중앙노동위원회에 현대차 원청교섭 사건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차가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점은 인정하면서도, 판매대리점 및 생산·구내식당·보안 부문 등 상당수 의제에 대해 현대차의 사용자성을 부인했다.
금속노조는 이 결정이 실질적 지배력을 갖춘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도록 한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취지에 반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노위 판단에 따라 현대차가 직접 교섭해야 할 하청·판매 노동자의 범위가 확정되는 만큼, 향후 중장기 노무 관리의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기아의 노사 관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기아 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82% 찬성)와 중노위 조정중지 결정을 거쳐 이미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했다. 지난 7월 24일 실시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2만4695명 가운데 사고자를 제외한 2만1909명이 참여해 92.5%의 찬성률로 파업안을 가결했다.
기아 노조 역시 기본급 인상은 물론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조합원 1인당 자사주 246주 지급을 요구하는 한편, 주 4.5일제, 정년 65세 연장, 자녀 1명당 출산장려금 1억원 등 비임금 관련도 요구하며 사측과 배수진을 치고 있다. 사측의 인공지능(AI)·로봇 도입에 대응해 미래차 및 후속 차종의 국내 공장 우선 배치와 고용 대책 마련도 요구 목록에 포함시켰다.
기아 노사는 2021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마무리해왔지만, 올해는 이 기록이 이어질지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이날부터 13일까지 2일간 진행되는 본교섭에서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5년 연속 이어온 무파업 기록이 깨질 위기다. 업계에서는 기아가 잠정합의안 도출에 성공할 경우 현대차와 르노코리아의 교섭에도 힘이 실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정규직 노조의 파업에 따른 신차 생산 차질이 경영에 치명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원청교섭 인정 범위에 따라 교섭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며 “현대차그룹 전체가 당분간 노사 전선의 다변화로 중대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