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준호 칼럼니스트] 폭염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8월 들어 경남 양산은 낮 최고 42.5도를 찍으며 122년 기상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새로 썼다. 올여름 기상청은 18년 만에 폭염 경보 체계를 3단계로 손질했고, 급기야 '폭염 중대경보'라는 낯선 단어까지 등장했다. 이 살인적인 더위에도 골프장은 돌아가고, 그 안에서 골퍼들은 저마다의 여름을 겪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몸은 힘든 계절인데, 스코어카드를 보면 드라이버 비거리는 오히려 늘어 있다. "여름 들어 몸이 풀렸나?" 반가운 착각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당신의 실력이 아니라, 뜨거워진 공기의 장난이다.
더운 공기는 팽창해 밀도가 낮아진다. 밀도가 낮으면 공기 저항이 줄고, 공은 더 멀리 난다. 탄도 측정 데이터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로 약 5.5도(화씨 10도) 오를 때마다 클럽당 최대 2야드(1.8미터)가량 비거리가 늘어난다. 드라이버라면 한여름과 한겨울 사이에 10야드(약 9미터) 안팎이 왔다 갔다 하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습도다. 흔히 "습한 날은 공기가 무거워 공이 안 나간다"고들 하는데, 과학은 정반대를 말한다. 물 분자는 공기의 주성분인 질소나 산소보다 가볍다. 그래서 습할수록 공기는 오히려 가벼워지고, 공은 아주 조금 더 난다. 다만 그 효과는 1야드(약 0.9미터) 남짓으로 미미하니, 여름 장타의 진짜 원인은 습도가 아니라 기온에 있다. 요컨대 여름에 늘어난 비거리는 훈장이 아니다. 겨울이 오면 고스란히 반납해야 할, 잠시 빌린 거리일 뿐이다.
공이 조금 멀리 나가는 건 즐거운 보너스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 몸이다. 18홀을 걸으면 7~10킬로미터를 이동하고 1,000킬로칼로리 안팎을 태운다. 심박수는 네다섯 시간 내내 중강도로 유지되고, 몸속 체온은 후반으로 갈수록 야금야금 오른다. 여기에 폭염이 끼얹어지면 땀으로 빠져나가는 수분이 급격히 늘어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스코어가 조용히 무너진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체중의 2%가 넘는 수분만 빠져나가도 집중력과 판단력, 그리고 미세한 손 감각이 함께 떨어진다. 70킬로그램 골퍼라면 고작 1.4리터, 여름 라운드 후반이면 어렵지 않게 도달하는 양이다. 후반 9홀에서 유독 퍼팅이 짧아지고 쉬운 어프로치를 놓친다면, 흔들린 건 당신의 스윙이 아니라 탈수로 무뎌진 뇌와 손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전반을 마치고 그늘집에서 시원하게 들이켠 맥주 한 잔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알코올은 이뇨작용을 일으켜 몸의 수분을 오히려 더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그 한 잔의 청량감이, 후반 9홀의 집중력을 담보로 잡는 셈이다. 지난 1회에서 애먼 퍼터가 억울했다면, 여름엔 애먼 스윙이 억울하다.
여기까지가 스코어 이야기라면, 이제부터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다. 질병관리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온열질환자는 4,460명으로 한 해 전보다 20% 넘게 늘었고, 그중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온열질환은 대개 실외에서, 그것도 한여름 낮 시간대에 집중된다. 문제는 올해가 더 이르고 더 독하다는 점이다. 예년보다 이른 5월 중순부터 사망자가 나왔고, 7월 하순까지 온열질환자가 이미 1,400명에 육박했다. 급기야 정부는 폭염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더위는 나이를 가려 오지 않는다. 네다섯 시간을 뙤약볕 아래 머무는 골프는, 우리가 즐거워서 잊고 있을 뿐 체력적으로는 결코 만만한 실외 활동이 아니다.
한 가지 짚고 갈 것이 있다. 폭염의 위험은 기온계 숫자만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스포츠 의학에서 쓰는 열스트레스 지표 WBGT(습구흑구온도)는 기온에 습도와 바람, 그리고 내리쬐는 복사열까지 함께 셈한다. 그늘 한 점 없는 골프장은 같은 기온이라도 몸이 실제로 받는 열부하가 도심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다. 그러니 '오늘 몇 도'가 아니라 '햇볕 아래 네 시간'을 기준으로 몸을 지켜야 한다.


다행히 시장은 이미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한낮을 피해 새벽과 야간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뚜렷해서, 올여름 오후 늦게 시작하는 야간 라운드 예약은 지난해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상대적으로 시원한 고지대 골프장으로 '피서 라운드'를 떠나는 이들도 많아졌다. 개인 차원의 대응도 이제는 조금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첫째, 선크림은 미용이 아니라 안전장비다. 4시간 라운드 한 번이 하루 권장 자외선량의 십수 배에 이르고, 땀에 씻겨 나가니 두 시간마다, 즉 라운드 중 최소 한 번은 덧발라야 한다. 둘째, 우산은 사치가 아니라 복사열 차단 장치다. 그늘 한 점 없는 골프장에서 내리쬐는 직사광은 무시할 수 없는 열원인데, 양산 하나면 그 복사열을 직접 막아 몸이 받는 열부하를 덜어낸다. 셋째, 수분은 '무엇을, 언제'가 중요하다. 목이 마르기 전에 미리, 얼음처럼 차가운 음료로 홀마다 한 모금씩 채우자. 여기에 손바닥이나 목덜미를 차갑게 식히는 것도 의외로 강력하다. 털 없는 손바닥 피부는 몸의 '라디에이터'라, 차가운 캔 하나만 쥐고 있어도 온몸의 열이 효율적으로 빠져나간다.
여름 스코어가 좋아졌다면 그 절반은 공기 덕이고, 무너졌다면 그 절반은 더위 탓이다. 폭염은 공을 늘리고 몸을 줄이는, 실력과는 무관한 변수다. 그러니 올여름만큼은 스코어보다 몸을 먼저 챙기시길 바란다. 좋은 기록은 내년에도 세울 수 있지만, 건강은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오늘의 결론은 짧다. 잘 치는 것보다, 무사히 걸어 나오는 것이 먼저다.

이준호 스윙다인 아카데미 대표/KPGA PRO(Class A)
※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참고: 기온·습도가 비거리에 미치는 영향(트랙맨 등 탄도 데이터), 탈수와 인지·운동 수행 저하에 관한 메타분석(Medicine & Science in Sports & Exercise, 2018 외), 골퍼의 자외선 노출과 피부 건강 연구, 열스트레스 지표 WBGT, 손바닥 쿨링 연구(Grahn 등, 스탠퍼드),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2025~2026년), 여름철 골프장 야간·고지대 이용 예약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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