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물범④] 돌아오는 물범을 지키는 힘, 기록과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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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을 방문한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또 어떤 개체가 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충분치 않다. 한국WWF(세계자연기금)과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 모니터링 팀이 가로리만 지역에서 시민 참여형 점박이물범 모니터링과 인식 제고 활동을 추진하는 이유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매년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을 방문한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또 어떤 개체가 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충분치 않다. 한국WWF(세계자연기금)과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 모니터링 팀이 가로리만 지역에서 시민 참여형 점박이물범 모니터링과 인식 제고 활동을 추진하는 이유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시사위크|서산=김두완·박설민 기자  봄이 오면 점박이물범은 수천㎞를 헤엄쳐 다시 가로림만을 찾는다. 해마다 같은 바다를 찾아오지만, 같은 개체가 다시 돌아왔는지, 서식 환경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기 기록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세계유산이 된 가로림만에서 이제 필요한 것은 보호구역의 이름이 아니라 점박이물범을 꾸준히 기록하고 지킬 수 있는 체계다. 이를 위해 시민의 관찰과 연구기관의 조사,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시민의 기록, 장기 조사로 이어져야

 

한국WWF(세계자연기금)와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는 지난해 8월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가로림만 해양보호구역을 중심으로 시민 참여형 점박이물범 모니터링과 인식 제고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조사 목적은 점박이물범의 출현 현황과 서식지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이 직접 조사에 참여해 현장 기록을 축적하고 이를 점박이물범 보전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활동이다.

현장 조사에는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와 지역 주민, 활동가들이 참여한다. 점박이물범이 가로림만을 찾는 시기에 선박과 드론, 카메라 등을 활용해 출현 위치와 개체 수를 관찰하고 사진을 남긴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은 같은 개체가 다시 나타났는지를 확인하는 자료가 된다.

점박이물범은 얼굴과 몸에 저마다 다른 점무늬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무늬를 대조하면 개체별로 식별할 수 있다. 사진식별 자료가 여러 해 축적되면 단순히 몇 마리가 관찰됐는지를 넘어 같은 개체의 재방문 여부와 서식지 이용, 이동, 생존 여부를 추적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해양포유류 사진식별은 개체 수와 분포, 서식지 이용, 번식과 건강 상태를 연구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조사기법이다.

점박이물범은 얼굴과 몸에 저마다 다른 점무늬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무늬를 대조하면 개체별로 식별할 수 있다.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점박이물범은 얼굴과 몸에 저마다 다른 점무늬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무늬를 대조하면 개체별로 식별할 수 있다.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국내에서도 사진식별을 활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진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백령도에서 촬영한 사진 3,640장을 AI 기반 개체식별 프로그램인 IBEIS(Integrated Biodiversity Information System·통합 생물다양성 정보시스템)로 분석해 1,234개체를 구분했다. 연구진은 점박이물범의 왼쪽 뺨 점무늬를 이용해 개체를 식별하고, 상당수 개체가 처음 관찰된 휴식지를 다시 이용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사진 자료가 장기간 축적될 경우 개체군 규모와 서식지 이용 변화를 분석하는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와 별도로 국립수산과학원이 2023년 실시한 점박이물범 서식 현황 조사에서는 백령도 연안에서 최소 279개체, 가로림만에서는 7개체가 확인됐다. 다만 한 해의 조사 결과만으로 개체군의 증가나 감소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조사 시기와 방법을 일관되게 유지한 채 자료를 여러 해 축적해야 개체군 변화와 서식지 이용 양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경숙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장은 점박이물범 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기록이라고 말한다. 한두 차례 조사로는 개체군의 변화를 알기 어렵고, 매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관찰해야 변화가 보인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과 민간단체가 현장을 꾸준히 기록할 수는 있지만 장기 조사를 개인의 노력과 단년도 사업에만 의존해서는 자료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센터장은 점박이물범을 ‘스타 종’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상징적인 생물이 있어야 그 생물이 살아가는 갯벌과 바다 전체에도 관심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점박이물범 보전은 한 종만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라 먹이터와 휴식지, 주변 해양생태계를 함께 살피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점박이물범에 대한 시민 인식 제고는 정부와 지자체의 종 보호로 연결된다. 실제로 인천광역시에서는 시의 자연 친화적인 의미를 담은 백령도 점박이물범 캐릭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 인천광역시
점박이물범에 대한 시민 인식 제고는 정부와 지자체의 종 보호로 연결된다. 실제로 인천광역시에서는 시의 자연 친화적인 의미를 담은 백령도 점박이물범 캐릭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 인천광역시

◇ 미국·스코틀랜드는 정부 조사와 시민 기록 연결

해외에서는 정부와 연구기관이 장기 조사 체계를 운영하고, 시민이 수집한 관찰 자료를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산하 국립해양수산청(NMFS)은 하와이몽크물범의 개체별 사진과 생존·번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한다. 주요 번식지에서 매년 실시하는 현장 조사와 개체별 사진을 바탕으로 생존율과 번식, 성장, 이동 등을 연구하며, 자료는 정부 연구자와 협력 연구진의 개체군 평가에 활용된다.

시민이 제공한 관찰 기록도 공식 연구를 보완한다. 하와이 전역의 해안선을 연구진이 상시 조사하기 어려운 만큼 주민과 방문객이 신고한 목격 정보를 연구 자료로 활용한다. 다만 시민이 제출한 사진과 기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기존 개체 자료와 대조·검증한 뒤 데이터베이스에 반영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정부 산하 자연보전기관인 네이처스코트(NatureScot)가 장기 모니터링을 지원하고, 세인트앤드루스대 해양포유류연구소(SMRU)가 5년 주기로 항구물범 항공조사를 실시한다. 조사 결과는 지역별 개체 수와 분포, 감소 추세를 파악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정부가 조사 체계를 유지하고 연구기관이 정기적으로 자료를 축적하는 역할을 맡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 사례는 시민 참여가 정부 조사와 연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부와 연구기관이 조사 기준과 자료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시민이 현장에서 수집한 기록을 검증해 연구에 활용하는 구조다.

가로림만에서 점박이물범을 지키는 일은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관찰과 조사, 기록이 쌓여야 서식지의 변화도 읽을 수 있고 보전 정책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 사진=WWF제공
가로림만에서 점박이물범을 지키는 일은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관찰과 조사, 기록이 쌓여야 서식지의 변화도 읽을 수 있고 보전 정책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 사진=WWF제공

우리나라에도 점박이물범 조사와 민간 연구를 지원할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다.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양포유동물 등의 서식지와 회유 경로를 보호하고 관련 기관이나 단체가 수행하는 연구·조사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16조의2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해양보호생물과 해양포유동물 등의 서식 실태를 정밀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제3조는 국민의 해양생태계 보전 참여를 확대하도록 기본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안지애 한국WWF 생물다양성 오피서도 “시민 참여 조사는 모니터링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시민들이 자연의 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을 직접 체감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시민 참여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의 존재보다 이를 현장에서 어떻게 실행하느냐다. 정부가 장기 조사 계획과 예산을 마련하고 연구기관이 개체 식별과 자료 검증을 맡으며 지역 주민과 시민이 꾸준히 현장을 기록하는 역할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때 장기적인 모니터링도 가능해진다. 해외 사례 역시 정부와 연구기관, 시민이 각자의 역할을 나눠 협력할 때 장기 조사 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유산이 된 가로림만에서 점박이물범을 지키는 일은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관찰과 조사, 기록이 쌓여야 서식지의 변화도 읽을 수 있고 보전 정책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점박이물범이 앞으로도 가로림만을 찾게 할 수 있을지는 결국 그 기록을 얼마나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출발점은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연구기관, 지역사회 등의 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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