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물범①] 가로림만이 품은 영원한 이웃

시사위크
한국의 대표 해양포유류이자 멸종위기종인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의 생태학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이들을 지키는 것은 곧 가로림만 자연보전과 직결된 일이다. 사진은 지난 14일 충남 서산 가로림만에서 촬영한 점박이물범의 모습.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한국의 대표 해양포유류이자 멸종위기종인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의 생태학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이들을 지키는 것은 곧 가로림만 자연보전과 직결된 일이다. 사진은 지난 14일 충남 서산 가로림만에서 촬영한 점박이물범의 모습.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시사위크|서산=김두완·박설민 기자  서해에는 생명창고가 있다. 충남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에 자리한 가로림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다로 통하는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갯벌과 풍부한 어장,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점박이물범을 비롯한 해양생물에게는 먹고 쉬며 살아가는 보금자리다. 그러나 이 바다는 한때 조력발전소 건설 계획으로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개발과 보전이 맞섰던 그 시간, 가로림만의 생태적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점박이물범’이다.

◇ 점박이물범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난달 14일 찾은 충남 서산 가로림만에서는 한국WWF(세계자연기금) 지원으로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가 진행하는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을 찾는 점박이물범의 출현 개체와 행동을 기록하기 위한 조사다. 개체 수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로림만의 생태환경 변화를 살피는 작업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만난 박정섭 전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 반대투쟁위원장은 점박이물범이 가로림만의 생태적 가치를 보여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지금은 다시 어민으로 돌아가 가로림만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한 달에 두 차례 진행되는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이 있는 날이면 권경숙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 센터장이 이끄는 조사팀을 태우고 바다로 나서는 선장이 된다. 수십 년 동안 같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그는 조력발전소 건설 반대운동 당시에는 가로림만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고, 지금은 점박이물범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현장의 안내자가 됐다.

박정섭 선장은 “우리가 선조들에게 물려받았으니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며 점박이물범이 살아가는 가로림만의 보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박정섭 선장은 “우리가 선조들에게 물려받았으니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며 점박이물범이 살아가는 가로림만의 보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박 선장은 점박이물범을 가리켜 “가로림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가 처음 물범을 본 것은 어린 시절이다. 당시 주민들은 점박이물범이라는 이름보다 ‘물개’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썰물이 빠지면 풀등이라 불리는 모래톱 위에 올라와 쉬는 모습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가로림만의 풍경이다.

“예전에는 물범이 있으면 그냥 ‘물개가 나왔네’ 하고 지나갔다.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동물이더라.” 박 선장이 어린 시절부터 봐온 풍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점박이물범을 확인하는 방식은 예전과 달라졌다.

이날 현장조사는 시작부터 변수가 생겼다. 웅도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점박이물범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해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강한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로 출항이 무산됐다. 조사팀은 곧바로 통포염전으로 이동해 갯벌을 따라 수㎞를 걸어 점박이물범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해안으로 향했다.

가로림만은 육안으로 점박이물범을 관찰할 수 있는 드문 지역이다. 다행히 이날 확인된 개체들은 대부분 먼 거리에 있어 자세한 관찰이 쉽지 않았다. 이에 조사팀은 고배율 망원경으로 풀등을 살피고 드론을 띄워 개체의 위치와 개체 수, 행동을 하나씩 기록하며 생태조사를 이어갔다.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을 준비하는 한국WWF 모니터링팀과 권경숙(사진 좌측 첫 번째)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 센터장.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을 준비하는 한국WWF 모니터링팀과 권경숙(사진 좌측 첫 번째)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 센터장.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은 단순히 몇 마리가 나타났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 모습을 드러내는지, 어떤 장소에서 쉬고 먹이활동을 하는지 등을 일정 기간 간격을 두고 기록해 가로림만 생태계의 변화를 추적하는 조사다. 점박이물범이 꾸준히 가로림만을 찾는다는 사실은 이곳이 여전히 먹이와 휴식처를 제공하는 건강한 서식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로림만이 점박이물범에게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다와 갯벌이 맞닿은 넓은 공간에는 숭어와 망둥어, 낙지 등 다양한 먹이가 풍부하고, 썰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풀등은 천적으로부터 몸을 쉬게 하는 안전한 휴식처가 된다. 먹이터와 쉼터를 동시에 갖춘 이러한 환경은 국내에서도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조사팀은 점박이물범을 단순한 멸종위기종이 아니라 가로림만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종’으로 평가한다. 점박이물범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 먹이가 되는 어류와 저서생물, 넓은 갯벌과 조간대까지 생태계 전체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점박이물범 시민 모니터링 활동에 매년 참여하고 있는 김영주 작가는 가로림만을 찾는 점박이물범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또 다른 방식의 관찰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점박이물범 시민 모니터링 활동에 매년 참여하고 있는 김영주 작가는 가로림만을 찾는 점박이물범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또 다른 방식의 관찰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 점박이물범이 바꾼 가로림만의 운명

가로림만은 한때 국내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 건설 예정지였다. 정부는 2007년부터 조력발전 사업을 추진했고 방조제를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주민과 환경단체는 거세게 반대했다. 조수의 흐름이 바뀌면 광활한 갯벌과 어장이 훼손되고 점박이물범을 비롯한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점박이물범은 개발과 보전 논쟁의 상징이 됐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자 해양보호생물인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종이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점박이물범이 안정적으로 서식하는 사실 자체가 가로림만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력발전소 계획은 2014년 백지화됐다. 이후 가로림만은 2016년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2021년에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 다섯 번째 해양보호구역으로 인정받으며 보전의 길을 걸었다. 올해 7월에는 서산갯벌이 포함된 ‘한국의 갯벌’ 2단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확대 등재됐다. 오늘도 점박이물범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개발보다 보전이 선택된 이 바다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14일 점박이물범 시민 모니터링 현장을 기록한 김영주 작가의 그림. 시사위크(SSWK) 취재팀도 이 한폭의 그림에 기록으로 남게 됐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14일 점박이물범 시민 모니터링 현장을 기록한 김영주 작가의 그림. 시사위크(SSWK) 취재팀도 이 한폭의 그림에 기록으로 남게 됐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조사팀이 현장 조사를 준비하는 한편에서는 김영주 작가가 조용히 스케치북을 펼쳤다. 망원경 너머 풀등 위에서 쉬고 있는 점박이물범을 한 마리씩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다른 조사자가 망원경과 드론으로 개체 수와 위치, 행동을 기록한다면 그는 그림으로 그날의 모습을 남긴다. 점박이물범의 자세와 움직임, 풀등 위에서 서로 기대어 쉬는 모습처럼 오래 바라봐야 비로소 보이는 순간들이다.

지난해부터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는 김 작가는 처음에는 가로림만 풍경을 주로 그렸다. 하지만 조사에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시선이 바뀌었다. 김 작가는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니까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예전에는 가로림만 풍경을 위주로 그렸는데 지금은 한 마리 한 마리의 표정을 보면서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시간 점박이물범을 바라보다 보면 서로 몸을 붙이고 쉬거나 함께 움직이는 모습에서 가족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가로림만을 찾는 점박이물범의 삶을 기록하는 또 다른 관찰일지다.

점박이물범은 해마다 같은 계절이면 가로림만을 찾는다. 조사팀은 그 모습을 숫자로 기록하고, 주민들은 오랫동안 이어진 기억으로 전하며 김 작가는 그림으로 남긴다. 기록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바다와 같은 생명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가로림만은 점박이물범에게는 먹이터이자 쉼터이고,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개발의 위기를 지나 오늘까지 이 바다가 원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점박이물범이라는 존재가 가로림만의 생태적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에게 점박이물범은 매년 찾아오는 손님을 넘어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온 이웃 같은 존재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점박이물범①] 가로림만이 품은 영원한 이웃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