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AI 컨텍스터 선언 18] 텍스터는 정밀하게 고르고, 컨텍스터는 여백을 남긴다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넷플릭스를 켠다. 콘텐츠는 수만개인데 정작 손가락이 갈 곳을 잃는다. "볼 게 없다"는 그 익숙한 느낌, 혹시 겪어본 적 없는가.

캐나다 토론토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의 한 연구자가 지난 4월에 발표한 논문이 이 궁금증을 정면으로 다뤘다.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 넷플릭스의 추천 메뉴처럼 알고리즘이 우리 취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다.

논문이 든 사례가 인상적이다. 1990년대 초 EDM(전자 댄스 뮤직, Electronic Dance Music)은 클럽 문화에서 시작된 낯선 음악이었다. 반복적인 비트와 단순한 신시사이저 소리는 그때까지의 대중음악과 달랐다. 그런데 반복해서 듣다 보니 사람들이 서서히 좋아하게 됐고, 2010년대 초에는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업계에서는 2016년 무렵 EDM이 "끝났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려버린 것이다.

연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이 현상은 알고리즘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반응만 볼 뿐, 그 반응이 콘텐츠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해서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낯선 음악에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알고리즘은 그 음악의 추천을 줄인다. 

문제는 사람이 낯선 것을 좋아하게 되기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알고리즘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곡이 인기를 얻으면, 알고리즘은 그 곡과 비슷한 것만 계속 밀어준다. 그러다 보면 사용자는 금세 물린다. 알고리즘은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밀어줬는지가 지금의 반응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 반응을 그대로 "이게 진짜 취향"이라고 믿어버린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추천이 정밀해질수록 알고리즘은 오히려 더 좁은 목록에 갇혔다. 반대로 추천이 어느 정도 부정확해서 가끔 엉뚱한 곡을 들이밀 때, 사람들은 더 다양한 취향을 갖게 됐고 오래 만족했다. 라디오 진행자의 즉흥적인 선곡이나 레코드 가게 점원의 변덕스러운 추천처럼, 정확도는 낮아도 예측할 수 없는 큐레이션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정밀함이 취향을 가두고, 어긋남이 취향을 넓힌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해 보인다. 정밀한 알고리즘이 문제라면, 알고리즘 없이 선택지를 그냥 잔뜩 늘어놓으면 되지 않을까. 홍콩중문대학교(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심리학과 연구팀이 2025년 12월에 발표한 연구는 바로 이 물음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정신건강 자가돌봄 앱을 이용하는 652명을 세 집단으로 나눠 첫 번째 집단에게는 실천할 활동을 딱 1개만 보여주고, 두 번째 집단에게는 4개, 세 번째 집단에게는 16개를 보여준 뒤 그중 하나를 골라 직접 해보게 하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선택지가 1개뿐이었던 집단은 넷 중 한 명 꼴로만 활동을 실천했다. 반면 4개를 받은 집단은 절반가량이, 16개를 받은 집단도 절반 이상이 실천했다. 만족도 역시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높았다. 특히 마음이 힘들거나 불안한 사람일수록 16개처럼 넓은 선택지 앞에서 더 큰 만족을 느꼈다. "힘든 사람에게는 선택지를 줄여줘야 한다"는 그동안의 통념과는 정반대되는 결과였다.

다만 여기에 결정적인 단서가 붙는다. 4개와 16개를 놓고 비교했을 때는 만족도에 별 차이가 없었다. 1개에서 4개로 늘릴 때는 확실히 좋아졌지만, 거기서 16개까지 더 늘려도 얻는 게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즉 선택지가 없는 것은 분명한 손해지만, 무작정 많이 벌여놓는다고 계속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두 연구를 이어보면 하나의 결론이 보인다. 정밀한 알고리즘도 답이 아니고, 선택지를 무조건 많이 늘리는 것도 답이 아니다. 정밀한 알고리즘은 과거의 반응만 보고 낯선 것을 지워버리고, 잔뜩 늘어놓은 목록은 몇 개를 보여주든 어차피 그중 일부만 눈에 들어온다. 두 경우 모두 결국 익숙한 것만 반복해서 만나게 된다는 점은 같다.

이 지점에서 이 연재가 계속 짚어온 텍스터와 컨텍스터의 차이가 다시 드러난다. 텍스터는 AI가 골라준 목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추천이 정밀하면 정밀한 대로, 선택지가 많으면 많은 대로 그 안에서만 고른다. 

반면 컨텍스터는 그 목록 자체를 의심한다. 지금 추천되지 않은 것 중에, 몇 번 더 접하면 좋아질 만한 것은 없는지를 직접 찾아본다. 알고리즘이 좋다고 확신하는 것만 반복해서 듣는 대신, 낯설어서 아직 순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일부러 시간을 내준다.

취향은 완벽하게 맞춰진 목록 위에서 자라지 않는다. AI는 정밀하게 무언가를 골라줄 수 있어도, 나를 위해 여백을 남겨주지는 않는다. 지금 당장은 낯설게 들리는 한 곡, 순위에 없는 한 편의 영화, 그 여백을 스스로 지켜내는 사람만이 자기 취향의 다음 페이지를 쓴다. 오늘 당신의 추천 목록에는, 그 여백이 남아 있는가.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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