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SK하이닉스가 분기 영업이익 60조원을 넘기는 전례 없는 실적을 냈다.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확보한 주도권에 D램과 낸드 가격 급등까지 겹치면서 영업이익률은 76%까지 치솟았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의 영업이익률도 웃돈다.
하지만 주가는 이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이 반도체 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보였지만 경쟁사 증설과 AI 투자 속도가 바뀌는 순간 높은 수익성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감인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29일 올해 2분기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각각 257%, 557% 늘어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영업이익률은 76%로 1분기 72%에서 4%p(포인트) 더 높아졌다.
숫자만 놓고 보면 압도적이다. 지난해 2분기 9조2129억원이던 영업이익이 불과 1년 만에 6배 이상 불었다. 상반기 매출도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실적의 주축은 HBM이다.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SK하이닉스는 시장 선두 지위를 활용해 고부가 제품 판매를 늘렸다. HBM3E에서 쌓은 기술력과 고객 기반을 HBM4로 연결하면서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제품 전환도 이어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했으며 하반기 생산량을 본격 확대한다.
하지만 이번 실적을 HBM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영업이익률을 70% 중반까지 끌어올린 힘은 AI 수요가 범용 메모리까지 번지면서 D램과 낸드 가격이 동시에 크게 오른 데서 찾을 수 있다.
AI 서버가 HBM뿐 아니라 일반 서버용 D램과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를 대량으로 소비하면서 전체 메모리 공급이 빠듯해졌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 D램과 낸드 평균판매가격(ASP)이 전분기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는 고가의 HBM 판매 증가와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이 동시에 나타난 ‘이중 호황’이 현재의 이익률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전형적인 경기민감 산업에 속했던 점을 고려하면 영업이익률 76%는 이례적인 수준이다. AI가 메모리 수요의 성격을 바꿨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SK하이닉스도 AI가 단순한 학습용 모델을 넘어 에이전트와 각종 서비스로 확산하면서 HBM뿐 아니라 일반 D램과 낸드까지 수요 기반을 넓히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2027년 메모리 공급 부족이 사상 가장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으며, 2030년 이후까지 수요가 공급을 웃돌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10여개 주요 고객과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한 것도 과거 메모리 사이클과 달라진 부분이다. 고객이 필요한 물량을 수년 단위로 미리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는 생산계획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가격 급락 위험을 일부 줄일 수 있다.
반면 장기계약이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가격이 계속 오르는 국면에서는 장기간 정해진 조건으로 공급하는 계약이 오히려 추가적인 가격 상승분을 모두 누리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다년 계약이 메모리 산업의 변동성을 낮추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충분한 기간과 판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기 하강을 완전히 방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실적에서 구분해서 볼 대목은 또 한 가지 대목은 93조9226억원에 달한 순이익이다. 순이익률이 118%로 매출액보다 순이익이 더 많다.
이는 본업에서 벌어들인 이익만으로 만들어진 숫자가 아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2018년 투자한 일본 키옥시아 관련 특수목적법인(SPC) 지분 매각과 평가이익 등이 2분기에 대규모 영업외이익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실적 발표 전 키옥시아 투자 회수 등을 통해 40조원 이상의 영업외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었다.
따라서 93조원이라는 순이익을 SK하이닉스의 반복 가능한 분기 수익력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키옥시아 투자가 상당한 재무적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하지만 일회성이 강한 영업외 요인과 본업의 수익성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본업에서도 경계할 지점은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절대적인 성과와 달리 이번 매출과 영업이익은 시장의 높아진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실적 발표 전 일부 증권사는 2분기 영업이익을 64조원 이상으로 예상했다. 시장의 눈높이가 실적 개선 속도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앞으로 단순히 ‘좋은 실적’을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는 의미"라며 "이미 시장이 장기간의 AI 메모리 부족과 높은 가격, HBM 시장 지배력을 상당 부분 전제로 깔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경쟁도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3E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했지만 HBM4부터는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의 추격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HBM 세대가 바뀔수록 고객사가 요구하는 성능과 전력 효율, 패키징 기술의 난도가 높아지는 만큼 현재의 시장점유율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특히 HBM4부터는 메모리 제조 능력뿐 아니라 로직 공정과 첨단 패키징, 고객 맞춤 설계 등 시스템 차원의 경쟁력이 중요해진다. SK하이닉스가 HBM4E와 고객 공동개발, TSMC 등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생산능력 확대는 기회인 동시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SK하이닉스는 M15X 가동을 앞당기는 동시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M17, 첨단 패키징 공장 P&T7 등 대규모 투자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최근 청주 M17에 80조원, P&T7 등에 20조원 등 충청권에 총 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현재처럼 고객 수요가 공급 능력을 웃도는 상황에서는 증설이 곧 매출 확대 기회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은 건설부터 본격 생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결정한 생산능력이 시장에 나오는 2027~2028년에도 AI 투자가 현재 속도를 유지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메모리 산업이 과거 수차례 호황 뒤 과잉투자와 공급과잉으로 급격한 가격 하락을 겪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이번 실적 발표에서 ‘설비투자 원칙(CapEx Discipline)’을 거듭 강조한 배경 역시 무작정 생산능력을 늘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추격도 장기적으로 무시하기 어렵다. 당장 최첨단 HBM에서는 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가 존재하지만 창신메모리(CXMT), 양쯔메모리(YMTC) 등이 범용 D램과 낸드 생산을 확대하면 중장기적으로 일반 메모리 가격에 압력을 줄 수 있다. HBM에서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더라도 범용 제품 가격이 꺾이면 현재와 같은 전사 영업이익률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실적을 통해 단순히 HBM 하나를 잘 파는 회사에서 벗어나 AI 인프라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종합 메모리 업체로 올라섰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HBM과 서버 D램, eSSD가 동시에 성장하고 장기계약까지 늘어난 것은 과거 메모리 사이클보다 실적의 지속성을 높이는 요소다.
그러나 영업이익률 76%가 새로운 기준이 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지금은 AI 투자가 폭증하고 메모리 공급이 부족하며 가격까지 급등하는 여러 조건이 동시에 SK하이닉스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의 진짜 시험대는 사상 최대 실적을 또 경신하느냐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HBM4 이후에도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대규모 증설을 과잉공급 없이 소화하면서,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둔화된 뒤에도 높은 수익성을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60조원의 영업이익은 지금이 메모리 산업에서 가장 좋은 시기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좋은 시기가 오래가는 것과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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