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정부가 발표한 4,700조원 규모의 ‘AI 3대 메가 프로젝트’가 계약 단계로 넘어가는 첫 성과가 공개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계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메모리 장기 공급계약, 글로벌 빅테크의 국내 AI 데이터센터 투자협약이 발표될 예정이다. 투자 총액을 제시한 장기 구상에 실제 수요기업과 공급계약이 붙는다는 점에서 사업의 실행 가능성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빅테크가 국내 AI 데이터센터 수요처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3일 로이터·블룸버그·AP·파이낸셜타임스(FT)·뉴욕타임스(NYT) 등 외신과의 간담회에서 “메모리 칩의 새로운 장기 계약이 곧 나오고, AI 데이터센터(AIDC) 분야에서도 글로벌 빅테크와 구체적인 투자계약이 나온다”고 밝혔다.
가장 큰 변화는 국내에 건설할 AI 데이터센터의 수요처와 투자 주체가 구체화됐다는 점이다. 정부는 앞서 2035년까지 국내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데이터센터를 이용하거나 투자할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협약을 내놓는다.
김 실장은 “지난번에는 2035년까지 한국 내에 AIDC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면, 이번에는 AIDC 수요기업이나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과의 확정적인 협약 내용이 있다는 것”이라며 “몇 달 안에 AIDC 추진도 구체화되고 부지만 잡으면 되는 단계로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AI 데이터센터는 건설 계획과 투자액만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대규모 전력과 부지, 통신망이 필요한 만큼 시설을 장기간 이용할 기업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빅테크가 수요처나 투자자로 참여하면 부지 선정과 전력 공급 등 후속 절차에 착수할 근거가 마련된다. 이번 협약이 정부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할 기준이 되는 이유다.
◇ 데이터센터 수요가 삼성·SK 장기계약으로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함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규 메모리 장기 공급계약도 발표될 예정이다. 두 회사가 각각 특정 반도체 제품을 글로벌 기업에 장기간 공급하는 내용이다. 계약 상대와 제품, 공급 물량, 계약 금액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김 실장은 “아주 큰 숫자들, 의미 있는 숫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그동안 이야기가 오갔던 장기 계약이 이번 계기에 한꺼번에 발표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계약이나 전략적 투자협약은 이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체결될 가능성도 있다.
장기 공급계약은 AI 반도체 수요가 전망치에 머물지 않고 실제 주문으로 연결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확보된 물량을 토대로 생산시설의 투자 시기와 규모를 판단할 수 있고, 빅테크는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데이터센터 투자와 메모리 계약이 함께 추진되는 것도 시설 건설부터 반도체 공급까지 하나의 수요망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메모리 생산시설 확대가 미국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 정책과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미국 내 생산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 증설 역시 미국 빅테크의 주문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라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주문의 80∼90%는 미국에서 온 것”이라며 “그 주문에 부응하기 위한 한국 내 팹 확장 계획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폭발하는 수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빅테크 입장에서는 팹이 어디에 있느냐보다 필요한 시기에 적정한 물량의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는 빅테크의 수요를 설명한 견해일 뿐 국내 생산을 우선한다는 정부의 공식 방침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 반도체 공급국 넘어 AI 시험시장으로
이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빅테크 4개사 최고경영자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네이버 경영진이 참여하는 AI 서밋도 연다. 이 대통령의 기조연설에 이어 참석자들이 약 1시간 동안 AI 산업의 미래와 각사의 전략을 논의한다.
이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한다. 한국이 AI 산업에 필요한 메모리를 차질 없이 공급하는 한편, 글로벌 AI 서비스를 먼저 도입하고 검증하는 시험시장과 수요처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수도권에 이어 호남에 제2 클러스터를 조성해 메모리 공급 기반을 넓히는 방안도 제시한다.
정부는 전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AI 서비스와 범용 에이전트 플랫폼을 구축하고 의료·공공 분야의 AI 활용도 확대할 계획이다. 자체 AI 체계를 구축하려는 국가에는 공적개발원조(ODA)나 국제기구 협력을 통해 기술과 운영 경험을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메모리 공급, 데이터센터 유치, AI 서비스 도입을 연결해 한국을 AI 생산기지이자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김 실장은 “미국 빅테크와 한국 메모리 1·2위 기업의 파트너십은 한미 기술·경제 협력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일”이라며 “이번에 기업들이 발표하는 숫자를 보면 4,700조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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