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레인지로버가 다섯 번째 모델로 '레인지로버 GT'를 꺼냈다. 기존 패밀리는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레인지로버 벨라, 레인지로버 이보크로 구성됐다. 크기와 성격은 달랐지만 모두 럭셔리 SUV 안에서 역할을 나눠왔다.
새 모델은 GT다. SUV의 체급을 더 세분화하는 대신, 장거리 주행에 초점을 맞춘 그랜드 투어러를 새로운 구성원으로 택했다. 레인지로버가 구축해 온 SUV의 영역을 다른 차종으로 넓히려는 시도다.
◆EMA 첫 적용…레인지로버식 GT의 출발
기존 레인지로버 패밀리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했다. 레인지로버는 최상위 플래그십,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역동적인 주행, 벨라는 디자인과 세련된 비율, 이보크는 도심형 엔트리 모델을 담당해 왔다.

레인지로버 GT는 어느 한 모델을 직접 대체하지 않는다. 낮고 매끄러운 실루엣과 쿠페형 비율, 장거리 주행의 안락함을 앞세운다. 역대 레인지로버 가운데 가장 정교한 온로드 주행 감각을 지향하면서도 전지형 주행 역량은 유지한다.
전통적인 GT가 낮은 차체와 빠른 속도, 운전자 중심의 장거리 이동에 무게를 뒀다면 레인지로버는 여기에 넓은 2열 공간과 전천후 주행성능을 더했다. 운전자만을 위한 고성능 모델보다 여러 명이 장거리를 편안하게 이동하는 레인지로버식 그랜드 투어러에 가깝다.
마틴 림퍼트(Martin Limpert) 레인지로버 매니징 디렉터는 "레인지로버 GT는 GT 특유의 아름다운 균형과 비율, 정제된 장거리 주행 감각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량을 더해 그랜드 투어링 세그먼트를 재정의하는 모델이다"라며 "지난 몇 년간 GT의 본질을 집요하게 연구했고, 이를 정교하면서도 독창적인 레인지로버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유로운 전기차 퍼포먼스와 퍼스트 클래스 수준의 장거리 주행 품질, 전지형 주행 역량이 조화를 이룬다"며 "평온함을 선사하는 인테리어에는 모던 그랜드 투어러에 대한 레인지로버의 비전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레인지로버 GT는 JLR의 차세대 전동화 플랫폼 EMA를 적용한 첫 레인지로버다. 기존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가 MLA 플랫폼을 기반으로 내연기관과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순수 전기차(BEV)까지 아우르도록 설계된 것과 구분된다.
EMA는 차세대 중형 럭셔리 전동화 모델을 위해 개발됐다. 레인지로버 GT가 기존 모델의 전기차 파생형이 아니라 별도의 차체와 성격을 지닌 신차로 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다.

생산은 영국 헤일우드 공장이 맡는다. JLR은 이곳에 5억파운드를 투자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내연기관 차량을 함께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레인지로버 GT는 EMA 플랫폼과 생산시설에 투입한 투자를 제품으로 보여주는 첫 모델이다.
향후 EMA 기반 디펜더 신차도 예정돼 있다. 레인지로버 GT의 완성도와 시장 반응은 한 차종의 성패를 넘어 후속 전동화 모델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안라함 강조…기존 패밀리와 차별화 관건
레인지로버 GT는 순수 전기차로 먼저 출시되지만, 향후 하이브리드를 추가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전기차 수요와 충전 환경이 시장마다 다르게 형성되면서 JLR도 파워트레인 전략에 유연성을 더했다.

JLR이 지난 2023년 내놓은 계획에서 EMA는 순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었다. 헤일우드 공장도 장기적으로 전기차 전용 생산기지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올해 6월에는 EMA 기반 모델에 완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정했다.
전동화 계획을 접었다기보다 전환 속도를 조절하는 선택이다.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마일드 하이브리드에 완전 하이브리드까지 더해 지역별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판단이다.
레인지로버 GT 역시 전기차의 정숙성과 즉각적인 가속성능을 앞세우되, 순수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느린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로 판매 기회를 넓힐 수 있다. 브랜드를 상징할 새 모델의 성패를 하나의 파워트레인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실내는 최고출력이나 가속성능보다 장거리 이동의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다. 새로운 싱글 스크린과 운전자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고, 실내 너비 전체를 가로지르는 에어벤트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치했다. 대시보드를 감싼 우븐 텍스타일 안에는 스피커까지 숨겼다.
눈에 보이는 장치를 줄이는 대신 음성 인식의 역할을 확대했다. 실내 소음뿐 아니라 시각적인 복잡성까지 낮춰 레인지로버가 강조해 온 '평온한 안식처'를 장거리 주행 환경에 맞게 발전시켰다.
기존 패밀리와의 차별화는 과제다. 역동성을 담당하는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매끄러운 디자인을 앞세운 벨라는 GT와 일부 영역이 겹친다. 쿠페형 비율과 온로드 주행 감각만으로는 두 모델과 충분한 거리를 만들기 어렵다. 장거리 승차감과 2열 공간, 전기차 성능, 전지형 주행능력을 하나의 상품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묶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프로토타입 차량은 위장 래핑을 두른 채 최종 도로 주행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차체 크기와 배터리 용량, 주행거리, 충전성능, 최고출력, 판매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동급 최고 수준의 2열 레그룸'이 어떤 경쟁 모델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레인지로버 GT가 SUV 특유의 공간과 주행 역량을 유지하면서 기존 GT의 우아한 비율과 장거리 주행 감각까지 구현한다면 새로운 영역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차체를 낮춘 또 하나의 레인지로버에 머문다면 스포츠와 벨라 사이에서 존재감이 흐려질 가능성도 있다.
올해 중 공개될 세부 제원과 외관 디자인은 레인지로버 GT의 상품성뿐 아니라 브랜드가 SUV의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를 가늠할 기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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