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46] 고용의 재구성下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사내에 만든 인재 시장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인공지능이 인간의 업무를 대신할 거라는 불안은 요즘 직장인 대부분이 안고 사는 감정이다. 매일 같은 업무만 반복하다 보면 역량이 그 자리에 멈춰 있다는 느낌도 든다.

회사는 좋은 인재를 뽑았다고 말하지만 그 인재를 부서라는 벽 안에 가두는 경우가 많다. 한 부서에 오래 머물면 그 업무 하나만 능숙해지고 다른 업무 경험은 쌓이지 않는다. 일례로 영업 부서에서 5년을 일한 직원은 영업 실무는 훤히 꿰지만, 회사가 데이터 분석이나 신사업 기획 인력을 뽑을 때 정작 사내 후보로 떠오르지 못한다. 회사 안에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서로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부서 이동 절차가 있어도 대부분 소속 팀장 승인부터 거쳐야 하고, 팀장은 당장 자기 팀 인력이 줄어드는 걸 반길 이유가 없다. 직원은 이동을 신청했다가 팀장과 관계가 껄끄러워질 걸 감수해야 하니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내에서 새 기회를 찾는 대신 이직 공고를 먼저 열어보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 이런 구조는 구체적인 손실로 이어진다. 채용 사이트에 공고를 올리고 면접을 거쳐 새 직원을 뽑는 데는 통상 수개월이 걸리고, 헤드헌팅 회사를 쓰면 연봉의 15~20%에 달하는 수수료도 나간다. 이미 회사 문화와 시스템을 알고 있는 내부 직원을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면 들지 않았을 비용과 시간이다.

프랑스의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은 이러한 내부 인력의 부서이동이 유연하게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공장이나 빌딩,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전기 설비를 만들고 그 설비를 원격으로 제어하는 소프트웨어까지 함께 판매하고 있다. 창업한 지 130년이 넘었고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15만 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기업이다.

조직 규모가 이 정도로 커지면 부서 간 벽도 그만큼 두꺼워지기 마련이다. 유럽 본사 직원과 아시아 지사 직원이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일이 흔했고, 특정 기술을 가진 직원을 찾으려면 인사팀에 개별 요청을 넣어야 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도 한때 이런 조직내 정보 단절 때문에 우수 인재의 이탈을 지켜봐야 했다.

이 회사가 내놓은 해법은 ‘오픈 탤런트 마켓(Open Talent Market)이라는 사내 인공지능 플랫폼이다. 직원이 자신의 경력과 관심 분야를 시스템에 입력해두면, 인공지능이 회사 전체에서 맞는 프로젝트나 멘토링 기회를 찾아 추천한다. 채용 공고를 올리듯 사내에도 기회를 올려두고, 관심 있는 직원이 지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부서 직원이 데이터 분석에 관심 있다고 입력해 두면 인공지능은 사내에서 진행 중인 관련 프로젝트를 찾아 연결해 준다. 정식 부서 이동이 아니라 원래 업무와 병행하는 단기 프로젝트 참여도 가능하다. 팀장에게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시스템을 통해 기회가 열리는 구조라, 직원 입장에서 심리적 부담이 훨씬 적다.

2000년대 국내 기업은 '지식경영'을 추구하며 사내 인트라넷에 매뉴얼과 보고서를 쌓아두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직원이 필요한 문서를 검색해서 찾아보는 수준에 머물렀고, 그 지식을 실제 업무에 적용해 볼 기회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지금 필요한 건 자료를 쌓아두는 인프라가 아니라 직원이 새로운 업무에 직접 뛰어들고 실패도 해 볼 수 있는 경험의 통로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이 플랫폼 도입 이후 직원의 사내 프로젝트 참여 건수가 크게 늘었다. 개인은 이직하지 않고도 관심 분야를 넓혀가며 경력을 다각화할 수 있게 됐다. 회사는 이직률을 낮추는 동시에 필요한 곳에 인재를 재배치하는 효과까지 함께 얻었다.

기존 방식에서는 부서장이 자기 팀 인력을 다른 프로젝트에 내주는 걸 꺼릴 수밖에 없다. 사람을 빌려줘 봐야 자기 팀 실적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인재를 빌려준 부서에도 그만큼 성과로 반영하는 평가 체계를 함께 갖춰서 이 갈등을 풀었다.

국내 기업 사정은 다르다. 부서 간 인력 이동은 인사팀을 거치는 공식 절차로만 가능하고, 그 절차마저 복잡하고 소속부서 상사 눈치가 보여 직원이 먼저 나서기를 꺼린다. 무엇보다 옆 부서에 어떤 프로젝트가 돌아가는지조차 알 방법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앞서 업워크가 회사 밖 프리랜서를 대등한 협력자로 대우하는 방법을 보여줬다면, 슈나이더 일렉트릭 사례는 회사 안 직원에게 이동과 성장의 기회를 열어주는 방법을 보여준다. 대상은 다르지만 두 접근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비슷하다. 실력과 관심에 따라 움직일 여지를 줘야 좋은 인재가 조직에 남는다.

인재를 대하는 방식이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시대가 됐다. 국내 기업도 두 방향을 함께 챙겨야 한다. 회사 밖 프리랜서와는 대금과 신뢰를 지키는 계약 구조를 갖추고, 회사 안 직원에게는 부서를 넘나들며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정년까지 한 회사에 다니는 방식을 당연하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은 지나갔다. 기업이 고민할 지점도 사람을 어떻게 붙잡아 두느냐에서, 사람이 스스로 남고 싶어지는 조직을 어떻게 만드느냐로 옮겨갔다. 업워크와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 답을 찾아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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