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는 원포인트 개헌론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관위 개혁 과제 상당수는 헌법이 아니라 법률 개정만으로도 추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위원장 상임화와 법관 겸직 금지 등은 입법으로 우선 추진하고 대법원장의 선관위원 지명권과 감사체계 개편 등 헌법 사항만 최소 범위에서 개헌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선관위 개혁의 핵심은 개헌 자체보다 법률 개정으로 가능한 과제를 먼저 추진하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 위원장 상임화·법관 겸직 금지는 입법… 지명권·감사체계는 개헌 검토
15일 국회에서 열린 ‘선관위 개혁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입법공청회에서는 선관위 개혁의 핵심은 개헌보다 입법에 있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진보당 손솔 의원과 진보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날 공청회에서는 신석진 진보정책연구원장이 좌장을 맡고 홍선기 동국대 법학과 교수가 발제를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의철 국민입법센터 변호사 △김민아 전국대학생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정재하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김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조사과장이 토론에 참여해 선관위 개혁의 우선순위를 두고 의견을 제시했다.
손솔 진보당 의원은 “국정조사가 끝난 뒤에도 선관위 개혁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개헌이라는 정치적 구호를 넘어 실제 어떤 제도 개선이 가능한지 점검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청회는 원포인트 개헌의 방향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첫 출발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선관위 개혁의 방향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크게 엇갈리지 않았다. 논의의 초점은 개헌 필요성 자체보다 ‘무엇을 법으로 먼저 고칠 수 있는가’에 맞춰졌다. 위원장 상임화와 현직 법관의 선관위원 겸직 금지 등은 법률 개정만으로도 추진할 수 있는 과제인 반면 대법원장의 선관위원 지명권과 감사원의 직무감찰 허용 등은 헌법 개정이 필요한 영역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가장 먼저 제기된 과제는 위원장 상임화다. 홍선기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현재 중앙선관위가 9명의 위원 가운데 1명만 상임위원으로 운영되는 구조를 문제로 지적했다. 위원장 역시 대법관이 비상임으로 겸직하면서 조직 관리와 의사결정이 사실상 사무처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투표용지 인쇄 기준 변경 역시 위원회 의결이 아닌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된 사례를 들며 “헌법이 예정한 합의제 기관이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토론자들도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는 공감했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립성은 4·19 혁명 이후 헌법이 선택한 가치인 만큼 유지돼야 한다”면서도 “비상임 중심 운영은 책임성을 떨어뜨리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신의철 국민입법센터 변호사 역시 “위원장 상임화와 법관 겸직 금지는 개헌 없이도 추진 가능한 사안”이라며 “정치적 중립성과 행정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쟁점은 현직 법관의 선관위원 겸직이다. 현행 헌법은 중앙선관위원 9명 가운데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는 관행이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선거관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선거소송을 심리하는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과 이해충돌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대법관은 선거소송을 심리하는 재판부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다”며 “자신이 피고가 되는 사건을 다시 재판하는 구조는 제도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법관 중심 운영은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재의 선거관리 환경에서는 행정 전문성과 조직 운영 역량을 함께 갖춘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토론자들은 모든 문제를 개헌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대법원장의 선관위원 지명권 조정이나 감사원의 직무감찰 허용처럼 헌법 규정과 직접 연결되는 사안은 개헌 논의가 불가피하지만 선관위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조직관리와 의사결정 구조, 내부 통제 문제는 법률 개정만으로도 상당 부분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위원장 상임화와 법관 겸직 금지는 헌법 개정 없이도 추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과제로 꼽혔다.
감사체계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은 헌법재판소가 선관위의 헌법상 독립성을 이유로 제동을 건 만큼 개헌 없이는 제도 변경이 어렵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다만 감사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식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거나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내부 감사기구를 확대하는 등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조사과장은 감사체계 개편 논의와 관련해 “선관위의 독립성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가치인 만큼 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책임성 강화에는 공감한다”며 “독립성과 책임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개혁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재하 입법조사관은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 가운데 특혜 채용과 조직 운영, 선거관리 실패 등은 헌법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운영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개헌 논의가 장기화될 경우 법률 개정만으로 가능한 개선 과제까지 지연될 수 있는 만큼, 개헌과 입법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공청회는 선관위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정치적 찬반보다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유지하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를 위한 해법은 ‘개헌 우선’이 아닌 ‘입법 우선’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결국 위원장 상임화와 법관 겸직 금지 등 당장 추진 가능한 과제는 국회 입법으로 해결하고, 대법원장 지명권과 감사체계 개편 등 헌법 사항만 최소 범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개헌을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인 개혁 방향이라는 데 무게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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