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얼마 전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 세 명 중 한 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오랜 기간 공부하고 스펙을 쌓은 사람도 갈 곳을 찾지 못한다면, 평범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 사정은 더 어렵지 않을까. 뉴스 한 줄이었지만 지금 고용 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 곳의 직장에 입사해서 정년까지 다니는 삶의 방식은 이미 조용히 저물고 있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회사 한 곳에 모든 걸 걸기보다, 퇴근 후 부업을 병행하거나 아예 소속 없이 프로젝트 단위로 일감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늘었다. 디자인이나 번역, 마케팅, 개발처럼 결과물로 실력을 증명하는 직종에서 이 흐름이 두드러진다.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감당해야 할 몫이 따로 있다. 어렵게 일감을 따내도 작업을 끝내고 나면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고, 실력을 키우고 싶어도 도움받을 곳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소속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한 대가를 혼자서 떠안는 구조다.
프리랜서와 발주 기업 간 관계는 애초에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단기 계약으로 맺어진다. 물론 계약 기간이 끝나면 관계가 정리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짧은 관계 안에서도 대금을 제때 받고, 부당한 요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프리랜서가 느끼는 신뢰는 완전히 달라진다.
기업이 그런 안전장치 없이 외부 인력을 값싸게 쓰고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또 다른 사람을 찾는 방식을 반복하면, 정작 실력 있는 사람일수록 그 기업을 피하게 된다. 반대로 프리랜서와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신뢰 기반을 마련해 둔 기업에는 매번 좋은 인재가 다시 모여든다. 짧은 계약이라도 그 계약이 지켜지는 방식이 다음 계약을 부르는 셈이다.
미국 업워크(Upwork)는 프리랜서와 발주 기업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이다. 국내에는 아직 낯설지만 해외에서는 프리랜서를 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15년 두 개의 프리랜서 중개 서비스가 합쳐지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출범했다.
기업이나 개인이 필요한 업무를 플랫폼에 올리면 프리랜서가 지원하고 협상해서 일을 맡는 구조다. 겉으로 보면 흔한 프리랜서 연결 서비스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구조 안에 프리랜서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를 막는 장치가 들어 있다.
작업을 마쳤는데 발주자가 대금을 주지 않고 잠적하는 사고는 프리랜서 시장에서 오래된 골칫거리였다. 업워크는 발주자가 작업을 맡기기 전에 대금을 먼저 예치하도록 하는 안전결제 방식을 의무화했다. 작업이 끝나면 예치금이 자동으로 프리랜서에게 지급되는 구조다.
이 장치 하나가 만들어낸 변화는 작지 않다. 대금을 떼일 위험이 사라지자 실력 있는 프리랜서가 더 적극적으로 일감에 지원하기 시작했고, 발주자 쪽도 검증되지 않은 상대와 거래하는 불안감이 줄었다. 결제 안전성 하나로 양쪽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다.
프리랜서를 검색 결과에 노출하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광고비를 많이 낸 사람이 상단을 차지하는 구조가 아니라, 그동안 완료한 프로젝트 성과와 고객이 남긴 평가를 바탕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돈이 아니라 실력과 평판으로 경쟁하는 환경을 플랫폼이 규칙으로 뒷받침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처럼 수요가 빠르게 변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무료 강의와 인증 과정도 제공한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도 스스로 경쟁력을 키울 통로를 마련해준 셈이다. 배우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기 힘든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이런 안전장치를 갖춘 이유는 업워크 수익 구조를 보면 이해가 간다. 프리랜서가 실제로 계약을 따내고 대금을 받았을 때만 수수료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돈을 벌지 못하면 플랫폼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 개개인의 성공과 전체 생태계의 성공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처리하는 방식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작업물을 두고 이견이 생기면 별도의 중재 절차를 거치고,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발주자나 프리랜서에게는 계정 제재 같은 불이익이 따른다. 신뢰를 깨는 행동에 비용이 따른다는 원칙이 시장 전체 질서를 지탱한다.
국내에도 ‘숨고’, ‘크몽’ 등 프리랜서와 발주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이 여럿 있다. 대부분 연결과 견적 비교 기능에 집중되어 있어서, 여러 업체 견적서를 받아보고 그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계약이 성사된 다음 대금 지급이나 프리랜서의 성장까지 신경 쓰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업워크는 연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금 지급의 안전성과 프리랜서의 성장 기회까지 플랫폼의 역할로 끌어안았다. 국내 서비스가 연결을 주선하는 데 그친다면, 업워크는 그 이후의 과정까지 설계해 둔 셈이다. 이 차이가 프리랜서들이 어느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무는지를 가른다.
기업 쪽 사정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외부 인력을 필요할 때만 불러다 쓰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관계를 완전히 정리해 버리는 관행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짧은 관계 안에서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조차 없이 매번 새로운 사람을 찾아 처음부터 신뢰를 쌓아야 하는 비효율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외부 인재를 다시 찾게 만드는 방법은 수수료를 낮추는 데 있지 않다. 대금이 확실히 보장되고, 실력으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부당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할 통로가 열려 있을 때 좋은 인재들이 그 기업 주변으로 모여든다. 국내 기업이 프리랜서나 단기 인력을 활용할 때 계약서 한 장으로 관계를 끝내기보다, 대금 지급 시점과 분쟁 처리 절차를 미리 정해두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문제는 결국 사람과 사람, 조직과 개인 사이의 신뢰다. 업워크는 그 신뢰를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설계해서 시장 전체를 키운 사례다. 회사 밖에서 일하는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대우하느냐가 앞으로 인재 확보 경쟁의 결과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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