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서 쩔쩔매던 '23년차 신인 1루수' 강민호, 유쾌한 외도가 깨운 베테랑의 품격 [유진형의 현장 1mm]

마이데일리
프로 데뷔 23년 만에 처음 1루수로 출전한 강민호가 어색해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마이데일리 = 유진형 기자] 2004년 프로 무대를 밟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며 산전수전 다 겪은 포수 강민호(41)가 그라운드 안에서 이렇게 어색해하고 긴장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지난달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삼성이 11-3으로 크게 앞서고 있던 8회말 수비를 앞두고 프로 데뷔 23년 차를 맞이한 강민호가 포수 마스크를 벗고 내야 글러브만 낀 채 데뷔 후 첫 1루수로 그라운드에 나선 것이다.

류지혁과 전병두가 강민호에게 1루 수비 조언을 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강민호가 LG 김용의 코치와 구본혁에게 수비 조언을 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사연은 이랬다. 8회초 공격 과정에서 3루수 김영웅이 파울 타구에 맞는 부상이 발생했다. 이에 박진만 감독은 경기 후반 선수 보호 차원에서 1루수를 보던 전병두를 3루수로 이동시켰고,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던 강민호를 1루수로 기용했다.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때 가끔 1루 수비 연습을 했다고는 하지만, 정식 경기에서 1루 베이스를 밟은 강민호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그라운드 위에서 재미있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왔다.

내야수 류지혁과 전병두가 강민호에게 다가가 위치를 잡아주며 특급 과외를 진행했고, 이제 만족하지 못한 강민호는 1루에 서 있던 상대 팀 LG 김용의 코치에게 다가가 베이스를 밟는 발 모양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김용의 코치는 현역 시절 1루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인 데다 강민호와는 1985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적과 아군을 떠나 다급해진 친구의 질문에 김 코치 역시 친절하게 발 위치를 설명해 주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1루심 역시 데뷔 23년 차 신인 1루수의 발 위치를 유심히 지켜보며 슬쩍 도움을 줬고, 안절부절못하는 베테랑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늘 홈플레이트 뒤에서 경기 전체를 조율하던 포수가 1루 베이스 위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야구팬들에게 그 어떤 홈런보다 짜릿한 새로운 볼거리였다.

1루심이 강민호의 1루 수비를 유심히 지켜보며 미소 짓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전병두가 신인 1루수 강민호에게 기념구를 챙겨주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두근거렸던 강민호의 1루수 외도는 8회와 9회, 두 이닝 동안 이어졌다. 다행히 그에게 까다로운 타구는 가지 않았고, 단 하나의 실책이나 실수 없이 신인 1루수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삼성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고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순간, 전병두의 센스도 빛났다. 전병두는 강민호의 프로 데뷔 첫 1루수 출전을 기념하는 기념구를 살뜰히 챙겨 선배에게 건넸고, 그제야 강민호의 얼굴에는 특유의 미소가 돌아왔다.

사실 올 시즌 초반 강민호는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으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이 유쾌했던 1루수 외도가 반전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을까. 최근 그의 타격 페이스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지난 5일 SSG전에서는 무려 1,388일 만에 연타석 3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에이징 커브 우려를 단숨에 씻어내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의 가장 최근 연타석 홈런 기록은 2022년 9월 16일 대구 두산전이었다.

포수 마스크를 잠시 벗고 1루에서 보여준 긴장감과 열정, 그리고 다시 타석에서 뿜어낸 베테랑의 품격. 23년 차에도 여전히 야구를 즐기고 도전하는 강민호가 있기에, 삼성의 2026시즌은 더욱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다.

[삼성 강민호가 데뷔 23년 만에 첫 1루수로 출전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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