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케어 대전환③] 규제 완화보다 예측 가능성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규제 완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산업계 역시 규제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의료기기와 의료 AI 분야에서 오랫동안 인허가와 규제 업무를 경험하고, 현재 의료 AI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필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에 정말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가 아니다. '예측 가능한 규제'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다. 따라서 의료기기와 의료 AI에 엄격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규제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혁신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스타트업은 제한된 자금과 인력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개발 초기부터 어떤 임상시험이 필요한지, 어떤 성능평가를 수행해야 하는지, 어떤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지, 인허가 이후 보험급여와 시장 진입은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개발 과정 중 요구사항이 변경되거나, 심사 기준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사례를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 전략을 수립하기 어려워지고, 투자 일정과 사업화 계획 역시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규제가 있다는 사실보다 규제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적용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정과 비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규제의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 유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시장을 살펴보면 미국 FDA는 디지털헬스와 AI 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공개하며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사항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유럽 역시 MDR 체계를 통해 요구사항은 엄격하지만, 기업이 개발 초기부터 준비해야 할 기준을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업이 규제기관과 대립하기보다 규제를 제품 개발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장기적인 사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AI 의료기기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혁신의료기기 지정제도와 다양한 지원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다만 앞으로는 규제기관과 산업계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며 기업이 개발 초기부터 예측 가능한 로드맵을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AI 의료기기는 학습데이터 관리, 알고리즘 변경, 지속적인 성능 개선 등 기존 의료기기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인 규제 체계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기업도 안정적으로 혁신을 이어갈 수 있다.

필자는 규제와 혁신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좋은 규제는 혁신을 촉진한다.

기업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투자자가 사업 일정을 예측할 수 있으며, 의료진이 제품의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을 때 산업은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인프라와 ICT 기술을 갖춘 나라다. 이제 여기에 필요한 것은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규제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의 경쟁력은 규제의 숫자가 아니라 규제의 신뢰성에서 나온다.

예측 가능한 규제는 기업에게는 혁신의 나침반이 되고, 투자자에게는 신뢰의 기준이 되며, 국민에게는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송민영 SHMD 대표/서울대보건대학원 보건정책최고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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