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은 다른 존재로 채워질 수 있을까. 영화 ‘그림자 아이’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유은정 감독은 도플갱어와 판타지라는 장르적 장치를 빌려 상실과 애도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림자 아이’는 3년 만에 코마에서 깨어난 수안(박소이 분)이 변해버린 엄마 금옥(임수정 분)과 죽은 언니 수련의 얼굴을 한 소녀 재인(유나 분)을 만나며 ‘그림자 동화’의 비밀에 빠져드는 기묘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밤의 문이 열린다’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인 유은정 감독의 신작이자 임수정이 주연은 물론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섹션에 초청되며 첫선을 보인 바 있다.
임수정은 수안과 수련의 엄마 금옥으로 분해 소중한 존재를 잃은 뒤 찾아온 상실감과 두려움, 불안 등 위태로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여기에 박소이가 언니를 잃은 동생 수안 역으로 섬세하면서도 깊은 감정 연기를 펼치고 유나가 수안의 언니인 수련과 꼭 닮은 얼굴을 한 소녀 재인 역으로 분해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유은정 감독은 25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그림자 아이’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다면 그 상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영화의 출발을 떠올렸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난다면 그 상실이 채워질까라는 생각까지 이어졌다”며 “하지만 상실을 채우려는 마음은 애도와는 다른 결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떠난 사람을 대신할 존재를 찾으려는 마음에는 어쩌면 이기적인 면도 있다고 봤다”며 “이번 작품에서는 진짜와 가짜라는 도플갱어의 개념을 비틀어 ‘존재에는 진짜와 가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아이와 어른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선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유은정 감독은 “어른들은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다른 존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수안은 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존재를 해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행동하는 인물”이라고 짚었다. 그는 “어른들은 생각은 할 수 있어도 행동까지 이어가기 쉽지 않다. 겁이 많고 불안도 높아지는 것 같다”며 “그런 차이가 영화에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꾸준히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은정 감독은 “어릴 때부터 전래동화와 설화, 민담을 좋아했고 현실에서 구현되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에 끌렸다”며 “어릴 적 악몽을 많이 꾸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들도 지금의 작업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돌아봤다.
프로듀서 임수정과의 작업 과정도 떠올렸다. 유은정 감독은 “제작사 대표가 프로듀서를 제안했고 흔쾌히 받아들여 줬다”며 “좋은 영화를 세상에 나오게 하는 데 관심이 많았고, 작품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수정이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특히 박소이와 유나가 제작 과정을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누구보다 많이 챙겨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박소이는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장르였고 몽환적인 세계관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작품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보며 연기하는 게 처음이라 막막하기도 했다”며 “감독님과 수안의 감정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눴고, 혼자 계속 상상하면서 연습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촬영을 돌아봤다. 임수정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미숙한 부분을 많이 알려주시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며 “정말 금옥 엄마처럼 느껴져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유나 역시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본을 읽으면 보통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읽는 편인데, 유독 궁금증이 많이 생기는 작품이었다”며 “재인이라는 인물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수련과 재인을 비롯해 여러 얼굴을 표현해야 했던 연기에 대해서는 “억지로 차이점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각 인물의 환경과 삶에 집중하려고 했다”며 “감독님께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드렸고, 그 답을 들으며 인물을 이해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유은정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네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떠난 사람 역시 하나의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그런 경계가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며 극장을 나서줬으면 감사하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오는 7월 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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