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장기 공급계약 잔량을 공개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메모리 업계를 지배해온 ‘공급과잉→가격폭락’의 반복 사이클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
마이크론은 25일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16건의 전략적 고객협약(SCA)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이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현재 협의 중인 계약까지 마무리되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이 계약 체계 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SCA에 따른 수주잔량(RPO)은 약 1000억달러, 한화로 155조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7건은 주요 계약으로 분류됐다. 고객사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고정된 다년 계약을 통해 물량과 수요 가시성을 확보한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라는 게 마이크론 측 설명이다.
SCA는 기존 연 단위 장기공급계약(LTA)보다 한층 강한 구조다. 5년간, 자동차 부문은 3년간 물량과 가격을 사전에 정하는 방식으로, 공급사와 고객사 모두 중장기 사업 계획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
이번 발표가 주목되는 이유는 단순히 마이크론 실적이 좋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메모리 업계는 공급이 늘면 가격이 급락하고, 불황이 오면 감산으로 버티는 사이클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메모리가 단순 범용 부품이 아니라 전략 자산으로 재평가되면서, 수급 구조 자체가 장기계약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메로트라 CEO는 메모리와 스토리지 공급 부족이 2028년에야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규 팹 가동 시점 등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 공급 부족 해소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 변화는 메모리 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을 높이고 실적 변동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수급 인식은 마이크론의 4분기 가이던스 상향에도 반영됐다. 마이크론은 4분기 매출 전망치를 500억달러로 제시해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고, 영업이익률 전망도 3분기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같은 흐름에 올라탔다고 보고 있다. 주요 글로벌 빅테크와의 3~5년 장기 공급계약 전환이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AI 시대 메모리 시장이 과거와는 다른 장기 호황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의 장기공급계약 공개는 메모리 산업이 더 이상 단기 시황에만 흔들리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이어지는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런 구조 변화의 직접적인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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