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기차 시장은 한동안 숫자를 사랑했다. 한 번 충전으로 몇 ㎞를 가는지, 충전 속도는 몇 ㎾인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몇 초가 걸리는지. 자동차의 매력이 스펙표 위에서 결정되는 듯한 시간이 이어졌다. 빠르고 조용하고 멀리 가는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브랜드의 색깔은 오히려 희미해졌다.
BMW도 이번에 숫자를 들고 나왔다. 더 뉴 BMW iX3는 국내 인증 기준 최대 611㎞, WLTP 기준 최대 805㎞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800V 고전압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350~400㎾급 초급속 충전도 지원한다. 여기에 BMW는 한 번 충전으로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에서 독일 뮌헨 BMW 벨트까지 1007.7㎞를 달렸다는 기록까지 꺼냈다.
강한 숫자다.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만들던 주행거리 불안에 직접적으로 꽂히는 숫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 뉴 iX3의 재미는 그 숫자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기차가 모두 비슷하게 빠르고 조용해지는 시대에, BMW는 무엇으로 BMW다움을 증명할 것인가.

BMW 코리아가 국내에 공식 출시한 더 뉴 BMW iX3는 '노이어 클라쎄(Neue Klasse)'의 첫 번째 양산형 모델이다. 노이어 클라쎄는 과거 BMW를 위기에서 끌어올렸던 이름이자, 지금의 3시리즈와 5시리즈로 이어지는 브랜드 뼈대를 만든 상징이다. 그 이름을 전기차 시대에 다시 꺼냈다는 건 꽤 무거운 선택이다.
◆'1007.7㎞'가 보여준 숫자의 설득력
전기차 시장에서 긴 주행거리는 여전히 강력한 설득력이다. 더 뉴 iX3 50 xDrive는 113.4㎾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WLTP 기준 최대 805㎞, 국내 인증 기준 최대 611㎞를 달린다. 최고출력은 469마력, 최대토크는 65.8㎏·m이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9초 만에 도달한다. 프리미엄 전기 SAV(Sports Activity Vehicle)라는 체급을 감안해도 부족함을 찾기 어려운 수치다.
핵심은 6세대 BMW eDrive 시스템이다. 새로 도입된 원통형 셀 고전압 배터리는 기존보다 부피당 에너지 밀도를 20% 높였고, 충전 속도와 주행거리도 각각 30%씩 끌어올렸다. 배터리 셀을 모듈 단계를 거치지 않고 팩에 직접 배치하는 셀 투 팩(Cell to Pack) 구조, 배터리 팩 자체를 차체 구조의 일부로 활용하는 팩 투 오픈 바디(Pack to Open Body) 구조도 적용됐다.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에너지 저장 장치이면서 동시에 차체 강성, 공간 활용, 주행 감각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충전 성능도 전기차 소비자가 체감하기 쉬운 변화다. 더 뉴 iX3는 800V 고전압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최대 400㎾급 충전을 지원한다. 초급속 충전 환경에서는 10분 충전으로 국내 인증 기준 약 250㎞, WLTP 기준 약 372㎞를 달릴 수 있다.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1분이다. 장거리 이동에서 충전 시간이 '기다림'이 아니라 '잠깐의 정차'에 가까워지는 구간이다.
BMW가 내세운 1007.7㎞ 주행 기록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이 기록은 더 뉴 iX3 50 xDrive가 헝가리 BMW 그룹 데브레첸 공장에서 독일 뮌헨 BMW 벨트까지 한 번 충전으로 이동한 결과다. 도착 당시 배터리가 완전히 고갈되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더해지면, BMW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해진다. 전기차도 장거리 이동의 불안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까지는 전기차 시장의 익숙한 문법이다. 더 멀리 가고, 더 빨리 충전하고, 더 강하게 가속한다. BMW가 iX3로 정말 말하고 싶은 대목은 그 다음이다. 숫자로 소비자를 안심시킨 뒤, 운전석에서 브랜드의 감각을 다시 설득하겠다는 것. 더 뉴 iX3의 진짜 승부처는 배터리 잔량 표시보다 스티어링 휠 너머에 있다.
◆제로백보다 어려운 운전 재미 증명
전기차는 구조적으로 빠르다. 모터가 만드는 즉각적인 토크 덕분에 가속감은 쉽게 강해진다. 그래서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는 제로백과 출력이 고성능을 설명하는 대표 언어가 됐다. 문제는 빠르다고 다 재밌는 차가 되는 건 아니다. 직선에서 강한 차와 코너에서 운전자의 감각을 살리는 차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BMW가 더 뉴 iX3에서 '하트 오브 조이(Heart of Joy)'를 강조하는 이유다. 이름은 조금 낯간지럽지만 역할은 선명하다. 하트 오브 조이는 주행 역동성을 담당하는 고성능 컴퓨터로, 토크 제어와 조향, 제동, 차체 안정화 등 달리고 돌고 서는 움직임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통합 관리한다. BMW가 말하는 운전의 즐거움을 전기차 구조 안에서 다시 만들기 위한 장치다.
더 뉴 iX3에는 총 4개의 고성능 슈퍼컴퓨터, 이른바 '슈퍼브레인(Superbrains)'이 적용됐다. 과거 차량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제어장치가 각자 기능을 수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주행 역동성 △주행 보조 △인포테인먼트 △차량 기본 기능을 네 개의 핵심 컴퓨팅 영역으로 묶었다. 연산 능력은 기존보다 20배 향상됐고, 하트 오브 조이는 기존보다 10배 빠른 데이터 처리 속도를 바탕으로 0.001초 단위의 차체 제어를 수행한다.
이 숫자들은 주행거리 숫자와 성격이 다르다. 소비자가 카탈로그에서 바로 체감하기 쉬운 숫자는 아니다. 대신 운전자가 페달을 밟고, 차가 무게를 옮기고, 코너에서 자세를 잡고, 브레이크를 놓는 순간에 드러나는 숫자다. BMW가 전기차 시대의 운전 재미를 스펙표 바깥에서 다시 만들려는 이유다.

제동도 흥미롭다. 더 뉴 iX3는 일상주행에서 발생하는 제동의 약 98%를 마찰 브레이크 없이 회생제동으로 처리한다. 전기차 특유의 회생제동은 에너지 효율에는 유리하지만, 감각이 거칠면 운전자에게 이질감을 남긴다. BMW는 감속 후 완전히 정차하는 순간의 울컥거림을 줄이는 소프트 스톱(Soft Stop) 기능을 더해 제동 감각을 다듬었다. 전기차의 효율을 챙기면서도 승차감과 운전 리듬을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이런 장치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엔진 회전수도, 변속 충격도, 배기음도 희미해진 시대에 BMW는 어디서 운전 재미를 만들 것인가. 답은 소프트웨어와 제어, 차체 반응 속도에 있다. 내연기관 시절의 감각을 흉내 내는 방식보다, 전기차에 맞는 새로운 감각을 설계하는 쪽에 무게를 둔 셈이다.
◆큰 화면보다 중요한 운전자의 시선
실내에서도 BMW의 고민은 이어진다. 요즘 전기차 실내는 대형 디스플레이 경쟁으로 흐르기 쉽다. 화면이 클수록 미래적이고, 물리 버튼이 적을수록 진보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화면이 많아질수록 시선이 분산되고, 조작을 위해 손이 바빠지는 순간도 생긴다.

더 뉴 iX3에 처음 적용된 BMW 파노라믹 iDrive는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푼다. 기존 계기판을 없애고, 앞 유리 하단 전체를 가로지르는 BMW 파노라믹 비전을 통해 주행 정보를 표시한다. 운전자는 시선을 크게 옮기지 않고 속도와 주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3D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내비게이션 경로와 주요 주행 정보를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중앙 디스플레이는 운전석 방향으로 17.5도 기울어진 프리-컷 디자인을 채택했다. 손이 닿는 거리와 시선 흐름을 고려한 배치다. 멀티펑션 스티어링 휠에는 필요한 기능의 버튼에만 조명이 들어오는 샤이 테크(shy-tech)가 적용됐다. 화려한 기능을 앞세우기보다 운전자가 도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최대한 지키려는 구성이다.
BMW의 iDrive는 2001년 7시리즈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수많은 버튼을 하나의 컨트롤러로 묶는 방식 자체가 낯설었다. 이후 헤드업 디스플레이, 인터넷 연결, 애플리케이션 생태계, 원격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발전해왔다.

파노라믹 iDrive는 그 흐름의 최신 결과물이다. 디지털을 더 많이 넣는 경쟁보다, 디지털을 어디에 놓아야 운전자가 덜 흔들리는지에 집중한 쪽이다.
이 대목은 BMW답다. 전기차가 점점 움직이는 스마트기기처럼 바뀌는 시대에도 BMW는 운전석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거대한 화면이 차 안의 주인공이 되는 대신, 운전자가 여전히 중심에 있는 구조를 고집한다. 더 뉴 iX3의 실내가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노이어 클라쎄'라는 이름의 무게
더 뉴 iX3의 디자인은 과거와 미래를 함께 끌어온다. 전면부의 세로형 키드니 그릴은 과거 노이어 클라쎄의 수직 배열 라디에이터 그릴을 떠올리게 한다. 크롬 장식이 있던 자리는 조명 시그니처가 대신한다. 사선형 주간주행등과 더블 헤드라이트는 낯설지만, BMW라는 정체성을 한눈에 알아보게 만든다.
측면은 복잡한 장식을 줄이고 면과 선을 정리했다. 평소 차체와 평평하게 맞닿아 있다가 운전자가 접근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매립형 도어 핸들, 창문 주변 몰딩을 덜어낸 구성, SUV 특유의 휠 아치 클래딩을 대신하는 정밀한 선 처리가 더해졌다. 전기차 디자인의 미래감을 보여주면서도 BMW X 시리즈 특유의 단단한 비례를 유지하려는 선택이다.

노이어 클라쎄라는 이름은 여기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1960년대 노이어 클라쎄는 어려운 시기의 BMW를 다시 일으킨 모델이었다. BMW 1500을 시작으로 1600, 1800, 2000 등으로 이어지며 중형 스포츠 세단이라는 영역을 열었고, 지금의 3시리즈와 5시리즈로 이어지는 기반이 됐다. BMW가 그 이름을 전기차 시대 첫 장에 다시 새긴 건 우연이 아니다.
현재의 노이어 클라쎄는 특정 차종 이름보다 넓은 개념이다. 디자인, 디지털화, 순환성, 운전 즐거움을 아우르는 BMW의 다음 제품 철학이다. BMW는 이 개념을 더 뉴 iX3에서 시작해 2027년까지 가솔린과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를 포함한 40여 종의 신차와 부분변경 모델에 순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iX3의 성패가 한 모델의 흥행을 넘어 BMW 전체 전환의 신뢰도와 연결되는 이유다.
국내에는 50 xDrive 단일 파워트레인으로 출시된다. SE, M 스포츠, M 스포츠 프로 세 가지 트림으로 운영되며 판매가격은 7990만원부터 9190만원까지다. 사전예약 고객을 대상으로 30대 한정 퍼스트 에디션도 마련됐다. 전용 외장 컬러와 22인치 M 알로이 휠, BMW 인디비주얼 스티어링 휠을 적용해 초반 상징성을 키우는 모델이다.

결국 더 뉴 iX3는 BMW에게 꽤 까다로운 시험지다.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에서는 전기차 시장의 기대치를 맞춰야 한다. 디자인에서는 새로운 얼굴을 설득해야 한다. 실내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운전석에서는 전기차가 된 BMW도 여전히 BMW처럼 느껴진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전기차 시대의 BMW다움은 과거의 엔진음을 붙잡는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배터리와 모터, 소프트웨어와 디스플레이, 제어 시스템과 차체 구조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더 뉴 iX3가 보여주려는 BMW다움도 그 지점에 있다. 숫자로 안심시키고, 감각으로 기억되겠다는 전략.
1007.7㎞라는 기록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이 차가 오래 남기 위해 필요한 건 더 긴 주행거리만이 아니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고 페달을 밟는 순간, 전기차가 된 BMW 안에서도 익숙한 긴장감과 리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BMW가 iX3로 내놓은 답은 꽤 선명하다. 전기차도 결국 BMW여야 한다는 것. 노이어 클라쎄의 첫 양산형 모델인 더 뉴 iX3는 그 고집을 가장 최신의 기술로 다시 쓴 첫 문장이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