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유럽 방산 시장에서 수주를 휩쓸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제동이 걸렸다. 핵심 생산기지인 대전사업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주요 수출 물량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K-방산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혀온 ‘빠른 납기’에 대한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전자공시시스템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일 대전사업장 56동 세척공실에서 발생한 폭발로 직원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이후 생산 재개 시점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공시를 통해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생산중단 기간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럽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핵심 배경 중 하나는 빠른 납기였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이 무기 도입 속도를 중시하면서 신속한 생산·인도 능력이 K방산의 강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에 천무(수출명 호마르-K) 126대를 첫 계약 이후 2년 7개월 만에 인도하며 납기 경쟁력을 입증했고, 이는 지난 2월 노르웨이 천무 계약으로 이어졌다.
해당 계약은 가장 빠른 인도 일정을 제시해 미국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 유럽 KNDS의 유로-펄스와 경쟁한 끝에 따낸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 규모는 약 9억2200만달러(약 1조3000억원)다. 지난해 12월 에스토니아와 맺은 약 5200억원 규모 계약까지 합치면 두 건만으로도 계약 규모는 약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에스토니아는 최초 도입 5개월 만에 추가 발주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 수주를 쌓아가는 사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생산 거점 확장에도 속도를 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서유럽 방산 시장 공략을 위해 올해 2월에만 독일법인 신설(94억원)과 미국법인 유상증자(2020억원)에 총 2100억원을 투입했다. 2023년 통합법인 출범 이후 매 분기 해외 거점을 늘려온 전략적 행보다.

이같은 상황 속에 글로벌 공급망의 출발점인 대전사업장이 멈췄다는 점은 뼈아프다. 대전사업장은 천무 다연장로켓과 유도무기 추진기관 등을 생산하는 방산 수출의 핵심 거점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3189억원으로 전체 연결 매출의 4.94% 수준이지만 대체가 어려운 고위험 핵심 공정이 집중돼 있어 이곳이 멈추면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연쇄 타격을 입는다. 단순 계산으로 3개월 가동 중단 시 3000억원 이상의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거점을 아무리 늘려도 여기서 핵심 부품이 나오지 않으면 공급망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인 셈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유럽 시장은 지금 속도가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며 “납기 신뢰가 흔들리면 향후 추가 수주 경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전례도 불안 요인이다. 대전사업장에서는 최근 8년 사이 세 차례 폭발 사고로 총 13명이 숨졌다. 2018년 추진제 충전공실 폭발 당시 작업중지는 최장 15개월간 이어졌고, 2019년 이형공실 사고 때도 6개월이 걸렸다.
문제는 이번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발생했다는 점이다. 앞선 두 차례 사고에서 관계자들은 집행유예, 회사는 벌금형에 그쳤지만 이번엔 경영책임자 처벌 수위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시설 복구 비용, 전국 사업장 안전투자 확대, 납기 지연 대응 비용까지 더해지면 실질 부담은 훨씬 커질 가능성이 있다.
수사도 본격화됐다. 검찰과 노동당국은 지난 4일 서울 본사와 대전사업장, 대전 연구개발(R&D)캠퍼스 등 3곳을 압수수색해 임직원 휴대전화와 문서·전자정보 5400점을 확보했으며, 현재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로서는 사고가 재무상태 및 사업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합리적으로 산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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