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연상호 감독은 좀비 장르를 통해 인간과 괴물 사이의 간극을 고뇌하는 철학자다. 그는 좀비라는 괴물의 갑작스러운 등장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는 '인간성의 한계'를 실험해왔다. <부산행>에서 안전한 객실의 사람들은 감염자들과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주인공 일행을 문을 걸어 잠그며 거부했고, <반도>의 631부대원들은 고립된 지 4년 만에 야만적 시스템을 구축해 생존자들을 철창에 밀어 넣고 좀비들과 '숨바꼭질'을 시켰다.
<부산행>의 수평적인 기차와 <반도>의 사각 철창에서 알 수 있듯, 연상호 감독은 '공간의 탈출'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외부와 차단된 고립 공간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압박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빠른 스피드로 달려드는 좀비와 벗어날 곳 없는 밀폐 공간에 갇힌 인간의 사투는 그 자체로 스릴의 묘미를 극대화한다. 신작 <군체>에서 그는 수직의 빌딩에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몰아넣고 점차 좀비로 변해가는 이들이 어떻게 '집단'이라는 이름의 괴물로 변하는지를 골똘히 관찰한다.
서울 시내의 초고층 빌딩에서 생화학 테러가 발생하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꼼짝없이 고립된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기어 다니던 감염자들은 점점 진화해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사람을 식별하며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한다.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 분)과 생존자들은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고 주장하는 서영철(구교환 분)을 찾아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상황은 예측 불가능하게 변하고, 감염자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진다.

<군체>는 집단의 폭력에 맞서는 개인의 저항을 그리는 작품이다. 천재 생물학자인 빌런 서영철은 인간 사회의 오해, 왜곡, 단절, 배신이 결국 갈등을 낳고 사람을 해친다고 믿는다. 이에 그는 인간의 뇌와 의식을 하나로 연결해 텔레파시처럼 정보를 공유하는 감염체를 퍼뜨리고, 감염된 존재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 캐릭터를 배우 구교환이 연기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는 <반도>에서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폭력 자체를 즐기던 '서 대위'를 연기한 바 있다. 두 캐릭터 모두 '서' 씨 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연상호 감독은 '냉혹한 괴물'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변주한 것으로 보인다.
감염자들은 물리는 순간 흰색 점액질을 토해낸다. 자가 증식하며 온 벽을 뒤덮는 이 점액질은 서영철의 통신망으로 활용된다. 주목할 것은 이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이다. 점액질은 외부의 다양한 신호를 차단한 채 서영철의 명령만을 증폭·반복하여 전달한다. 사건이 벌어지는 빌딩의 이름이 '둥우리'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새들이 모여드는 그 공간처럼, 이 네트워크는 단일한 목소리만을 확성하는 에코 챔버의 구조를 그대로 닮았다. 알고리즘이 선별한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편향이 강화되는 에코 챔버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사고한다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누군가가 설계한 신호 체계 안에서 움직인다. 숲이 아니라 나무만 보는 편협한 시각은 종종 나와 의견이 다른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군체>의 좀비들 역시 빌런이 퍼뜨린 알고리즘에 포섭되어 그의 명령만 인지하고 수행한다. 서영철은 집단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인간의 개별성을 무차별적으로 제거하며, 쓸모없는 개별성이 오히려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믿는다. 이 영화의 좀비 떼는 AI와 SNS 시대에 점점 비대해지는 집단의 목소리가 편협한 시각에 갇혀 광기로 치닫는 우리 사회를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영화 속 '군체'는 과연 누구인가. 단일한 신호에 포섭된 채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춘 존재들, 그 거대한 집단은 당신 주변에서, 어쩌면 당신 안에서도 이미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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