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이 완벽함을 만들고, 완벽함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Details make perfection, and perfection is not a detail.)”
-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시사위크|사천=박설민·김두완 기자 전투기는 모든 과학연구성과가 집약된 ‘첨단기술’의 집약체다. 소재부터 엔진, 기어, 조종장치, 더 나아가 작은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설계된다. 때문에 전투기 기술력의 확보는 곧 해당 국가의 과학 발전과 국방력 수준을 가늠케 한다.
그러나 첨단기술로만 점철될 것 같은 항공기와 전투기 개발은 모두 ‘인간의 수작업’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현재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력 발전이 눈부시게 이뤄진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미세한 조정, 부품의 불량은 단순 AI의 데이터로 찾아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투기 산업의 상징 한국형 전투기 ‘KF-21’도 마찬가지였다. 경남 사천에 위치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본사 개발 현장에서는 연구원부터 엔지니어까지 항공기 장인들의 땀방울로 한땀 한땀 전투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단 한마디, ‘예스(Yes)’가 갖는 의미
5월 22일 경남 사천의 KAI 고정익 생산 현장, 기계음으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KF-21의 제작이 한창이었다. 국가 주요기반시설(Important National Facilities) 최고 등급인 ‘가’급에 해당 되는 장소인 만큼 사진 촬영도 불가능했다. 가급은 기능 마비 시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다.
내부로 들어서자 녹색빛이 도는 KF-21의 몸체가 눈에 띄었다. 각 기체는 첨단탄소복합소재로 이뤄졌다. 전투기 동체는 아직 페인트 작업과 조립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KF-21 특유의 쭉 뻗은 날개와 뾰족한 머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대형 냉방장치가 실시간 가동되고 있었지만 내부 엔지니어들의 머리엔 땀방울이 가득했다. 볼트와 전선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조립하고 있었다. KF-21 전투기 한 대에 들어가는 전선 길이만 해도 42km에 육박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단 0.1mm의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마하 1.81(시속 약 2,200km)로 비행하는 초음속 전투기인 KF-21에겐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기술보고서에서도 실제로 확인 가능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투기용 ‘2024-T3 알루미늄’ 합금 피로시험 결과, 표면의 0.1mm의 균열만 발생해도 전체 기체의 피로수명이 약 40%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익 생산동에서 KF-21과 FA-50을 비롯한 전투기 제작의 베테랑인 윤창호 항공기시스템기술2팀 차장에게도 전투기 제작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는 “원래 조선소에서 일을 했을 때는 0.5mm의 오차 정도면 양호했다”며 “반면 0.1mm도 안되는 오차만 발생해도 전체 부품 점검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한 부품의 불량이 발생했을 경우는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부품 하나가 불량이면 교체하면 된다. 하지만 KF-21 등 전투기는 해당 부품의 불량 원인을 밝혀내고 정부 부처에 문제를 보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시 처음부터 부품을 새롭게 발주·생산·승인하는 단계까지 거쳐야 하는 것이다.
윤창호 차장은 “실제 작업을 하다 보면 100개의 작업 중 1개가 불량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조립했던 모든 부품을 전부 풀고 교체를 해야 한다”며 “문제는 조건상 안 맞게 되면 무조건 면제 처리를 받아야 하고 품질상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 승인을 받아 새로운 부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KAI의 직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전투기가 처음 창공을 향해 날아갔을 때, 그 기쁨과 벅참은 잊을 수 없었다고 모든 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윤창호 차장은 “KF-21이 날아오르는 그 순간, 머릿속에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단 한 글자, ‘예스(Yes)!’만이 맴돌았다”며 “수년에 걸친 개발 과정과 고통, 희노애락이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 장인의 손을 돕는 ‘협동로봇’
전투기 생산은 숙련된 베테랑 엔지니어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때문에 한 대를 제작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KF-21은 월 약 3대 정도라고 한다.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KF-21과 T-50 등 방산 및 완제기 수출이 KAI의 매출 실적에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때문에 엔지니어들의 피로감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KAI 고정익 생산장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에 최근 도입된 것이 바로 ‘협동로봇’이다. 로봇 팔을 이용, KF-21 등 전투기 기판과 부품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 것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방문한 생산 현장에서는 KAI 엔지니어들이 협동로봇을 활용해 드릴링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작업에 사용되는 협동로봇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24년 공시한 바에 따르면 레인보우로보틱스는 KAI와 KF-21 내부 및 외부 홀가공 라인에 협동로봇 드릴링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 41억5,000만원 규모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동로봇 드릴링 시스템을 전투기 제조 현장에 적용한 것은 KAI가 세계 최초다. 실제로 KAI는 이와 관련한 기술 특허를 지난 2024년 3월 출원하기도 했다. 기술명은 ‘협동로봇을 이용한 항공기 부품의 드릴링 방법’이다. 비전 장치를 이용, 가공 구멍을 인식하고 로봇이 정밀 드릴링을 수행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작업자의 숙련에만 의존하던 공정을 로봇 기반 정밀 제조로 확장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아울러 KAI는 지난해 ‘K‑휴머노이드 연합’에도 참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고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운영하는 이 연합은 203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 제조 기술 확보를 목표로 지난 4월 출범한 산학연 협력체다. 이 중 KAI는 항공우주산업 생산 현장에 필요한 휴머노이드 개발과 상용화 핵심 기술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윤창호 차장은 “항공기의 몸체는 가볍지만 동시에 매우 단단한 소재로 이뤄져 사람이 직접 드릴 작업으로 구멍을 뚫게 되면 작업자들의 업무 부하가 가중된다”며 “이를 로봇들이 대신해 주게 되면 전투기 생산성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드릴링 작업 등에 로봇들이 사용될 가능성은 많지만 일반 자동차처럼 대량 생산 체계도 아니고 부품, 전선도 많다보니 로봇으로 인력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모든 작업이 결국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어 완전 자율화는 어렵다”고 말했다.
◇ 완벽한 KF-21의 마지막 조각, ‘조종사들의 훈련’
이처럼 고된 과정을 거쳐 완벽하게 제작된 KF-21이라도 결국 비행은 조종사의 손에 달렸다. 이때 중요한 것은 훈련의 양이다. ‘미 공군 항공안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30일간 비행시간이 10시간 이하인 운용 전투기 조종사는 16시간 이상 비행한 조종사보다 ‘항공 준사고 및 불안전 사건(Unsafe flight incident)’ 가능성이 3~4배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종사들이 매일 같이 전투기 훈련을 하는 것은 시간과 건강, 자원 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에 KAI에서 고안한 것이 바로 ‘KF-21 시뮬레이터’다. 가상 훈련장에서 실제 전투기의 운행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조종 훈련을 진행하는 장치다. KAI측 설명에 따르면 거의 실제 전투기 조종 환경과 99% 일치한다고 한다.
KAI측 안내를 받아 우주센터 내부로 들어가자 둥근 돔 형태의 훈련장이 보였다. KAI 전투기 훈련 전문가의 안내를 받고 조종석에 착석했다. 마치 영화 ‘탑건’의 주인공 매버릭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수십 개가 넘는 장치들과 버튼을 보자 ‘대체 이걸로 어떻게 비행을 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 마침내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나온 속도는 순식간에 시속 200km를 돌파했다. 엔진추력조절장치를 밀고 조종간을 뒤로 당기자 순식간에 가상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분명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고소공포증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조종간은 지금까지 해본 비행기 시뮬레이션 게임들과는 아예 느낌이 달랐다. 굉장히 뻑뻑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비행기의 위치와 각도가 순식간에 변화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얼마나 어렵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체감이 됐다.
탑건 주인공처럼 완전히 기체를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는 등 비행을 즐기고 착륙할 시간이 됐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비행도 이 정도 했는데 착륙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활주로가 다가올수록 조종간은 말을 듣지 않았다. 손을 덜덜 떨며 간신히 활주로에 방향을 맞춰 착륙하는 순간 ‘추락’이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등장했다.
취재 당시엔 그저 놀라운 경험으로 생각됐지만 이 화면 속 ‘추락’이란 글자는 전투기 제작과 운용이 왜 끝없는 정밀함을 요구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답이었다. 0.1mm의 오차를 줄이려는 엔지니어의 손끝, 반복 훈련으로 위험을 낮추려는 조종사의 시간, 그리고 이 과정을 보조하는 첨단기술이 쌓여 완성된 하늘 위의 작품, 그것이 바로 KF-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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